토종 한국인이 외국계 기업에서 영어로 일하기
구글 인터뷰에서 쓴맛을 보았다. 인생 첫 영어 인터뷰에서 탈락을 경험한 나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외국계 기업에서 오는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또 외국계, 구글 못지않은 글로벌 기업이었다. 이력서가 정말 좋다고 했다. 면접 참 잘 봤다고. 결과적으로 최종 채용엔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 지 약 2년이 흘렀다.
외국계 기업에서는 현지 담당자를 왜 채용할까? 물리적으로 그곳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업무가 늘어나는 시대에는 더더욱, 글로벌 기업일수록 특정 지역의 지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요즘 관공서에서도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으로 채택하기 시작하는 줌(Zoom)을 보자. 단숨에 우리 생활로 파고든 서비스인 반면, 한국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사? 없다.
그럼, 현지 담당자를 뽑는 회사들은 '왜' 뽑을까.
개인적으로 스타벅스 코리아의 사례가 이에 대표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e프리퀀시는 한국에 밖에 없는 리워드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사이렌 오더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여전히 다른 나라 스타벅스에는 이 두 가지가 없다. (사이렌 오더는 도입된 지역도 있다고 하던데, 마지막으로 미국을 갔을 때 스타벅스를 안 가서 모르겠다.)
스타벅스의 브랜드를 잘 살리면서도, 다분히 한국스러운 리워드 프로그램. 현지화(Localize)의 교과서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게 다, 50% 지분 가지고 있는 신세계의 인풋과, 현지에서 좋은 담당자를 잘 찾은 덕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본사의 가치를 잘 이해하면서도, 현지의 특성을 잘 아는 담당자, 그게 바로 현지 담당자 채용의 이유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도 현지화를 참 잘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야 IT 직무라 브랜드 쪽 관련 일을 관여하진 않지만, 우리 회사 브랜드 관련 담당자분들이 진짜 일을 잘한다.)
앞선 글에서 외국계 기업에서 영어를 필요로 하는 수준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내 생각에 핵심은 이거다.
영어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Resume에 영어 실력을 적을 때, 우리는 이렇게 적는다. Professional working proficiency level. 말 그대로, 영어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레벨, 이거다. 여기까지 하면 된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고 포지션마다 다르다. 유려한 영어를 필요로 하는 포지션, 회사? 있을 수 있다.
또는 영어 못한다고 당신 안 뽑겠다고 하는 회사? 당연히 있을 수 있다. 면접은 어차피 소개팅이다.
전자와 같은 포지션은 내가 역량이 안 맞는 거고, 후자와 같은 회사라면 영어 잘하는 분들끼리 만수무강 하시라고.
조금은 내 얘기를 해보자. 그래서, 토종 한국인, 외국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업무 하면서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에 dependency on 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거 한국 회사에서 뭐라 할까? 의존성? 디펜던시가 있다는 말, 한국말로도 많이 한다.
이 기능, 아직 쓰는 곳이 있어요. 디펜던시 때문에 deprecate 못해요.
옛날 유행했던 '보그체', 조사만 빼고 모두 영어로 쓰는 나쁜 습관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사실 저게 일 하다 보면 편하다. 왜? 매일 마주하는 문서가 영어고, 영어로 된 정보가 제일 많으니까. 국제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자료도 많고 생산자도 많으니까. 어쩔 수 없다. 영어로 된 자료, 우리는 볼 수밖에.
그리고 덕분에, 이 '비즈니스 영어'는 실력이 늘기 쉽다. 자주 쓰는 말, 자주 본 단어, 그것들 사이에 흔히 이야기하는 '핵심 동사'만 외우면 된다. 이 두 가지만 섞어도, 앵간한 비즈니스 미팅은 다 커버 가능하다.
We should keep that feature until December. We have a system which has dependency on it.
문법 혹시 틀렸어도 뭐라 하지 말자. 중요한 건 12월까지 그 기능 유지해달라 이거다. 저쪽도 알아 들었을 거다.
결국은 현지에서 외국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대부분 화상회의를 하게 된다는 거다. 생각보다 '전화'를 할 일은 잘 없고, 대부분은 Call이다. 보통 본사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Can we have a chat?
난 처음에 메신저로 이야기 하자는 줄 알았다. 이게 잠깐 Call로 이야기 하자는 소리일 줄이야.
어찌 되었던, Call을 한다는 건 PC나 모바일 앞이라는 소리고, 우리는 '화면'을 공유할 수 있다. 한국 대기업들처럼 장표 잘 만드는 게 중요한 회사들이 또 있을까.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자.
주요 사안에 대한 도식, 그래프, 순서도, 핵심 단어 1-2줄 정도로 요약된 장표, 뭐든 좋다. 이 모든 것들이 영어보다 본질, 즉 '문제'와 '해결'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외국계를 다니면서 사실 커뮤니케이션으로 어려웠던 점은 크게 없던 것 같다. 물론 한국말로 일할 때 보다 품은 든다. 아무래도 좀 느리다. 하지만 '이거 때문에 회사를 못 다니겠다.'와 같은 수준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영어를 잘한다. 대기업 다니는 분들? 중소기업 다니는 분들까지, 회사원 하려면 토익 800 넘고, 900 넘고, 만점도 많다. 정규 교과과정에 영어가 들어가 있고, 대충 못해도 6년, 길면 12년, 영어유치원부터 영어 한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말하기 듣기는 그래, 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읽기/쓰기는 의외로 잘한다. '난 지금 잘 못하는데?'라고 생각하는 회사원 분들, 익숙하지 않고 녹슬어서 그렇다. 개발자 분들, Stackoverflow 보는데 아무 문제없지 않나. 자주 보다 보면, 금세 읽기에 대한 감이 돌아온다. 쓰기는? 읽기의 짜깁기다. 좋은 문장이 보이면 저장해 뒀다가 다시 쓰자. 어차피 Business writing, 앞에 이야기 한 '맨날 쓰는 말'만 쓴다.
마지막으로 뻔뻔함이 좀 필요하다. 상대는 원어민이고, 나는 걔 나라 말로 일하는 중이다. 현지 담당자는 현지의 사정을 잘 알면 된다. 영어를 잘하는 건 저쪽에게 맡기자.
오늘 회의 최 부장님 안 들어와? 의사결정, 화요일, 꼭 필요해요. 미팅 끝나 전달해줘.
억지로 문법 표현 틀려봤지만 우린 알아듣는다. 심지어 원어민은 이런 것도 알아듣는다.
걔들 말로 하는데, 쪼잔하게 굴면 들이 받아버리자. 잘 안도와준다고. 그 정도 뻔뻔함이 있는게, 차라리 좋은 것 같다.
결국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였다.
영어 걱정으로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그때, 나의 첫 영어 면접을 망치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같지 않았다면. 물론 지금도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더 많은, 더 빨리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지 않았을까?
외국계 이직을 향해 용기를 내보자. 그리고, 살포시 글쓴이의 강의를 광고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