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를 통해 이직했던 나의 이야기
국내 대기업의 경우, 회사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연봉이 낮고, 보너스가 많은 구조가 많다. 나도 대기업 공채로 일을 시작하여, 주변에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입사한 친구들을 비교해보면, 전문직이나 컨설팅이 아닌 이상 대부분 연봉계약서 상의 연봉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중간의 승진이나 이직에 따른 차이일 뿐, 사실상 큰 차이는 보너스에서 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계열사 간의 사업 R&R 조정에 따른 강제 이동이었다. 이 때문에 처우 측면에서 이전 계열사보다 많은 손해를 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보너스가 두둑이 잘 나오던 계열사에서 보너스는 구경하기 힘든 회사로 옮겨진거다.
그 회사는 겨우 분기 적자를 해소하였지만 누적 적자를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질 느낌은 없었다. 영업이익이 낮은 계열사답게 인센티브는 계속 줄어들었고, 결국 나는 연차는 올랐지만 연봉이 줄어드는 기이한 구간에 빠져들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업군 자체가 내가 희망하는 사업군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나의 커리어는 무시당한 채로 강제 발령이 났는데 거기에 연봉까지 줄었다. 오래 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늘 좋은 기회가 오면 옮겨야겠다 생각했고 이에 꾸준히 LinkedIn에 프로필을 관리해두고 있었다. 언제라도 이력서를 보낼 수 있게.
회사 전반적으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으로 옮기긴 했지만, 이전 글에서도 누차 이야기했듯 아무리 똥밭에서 굴러도 건질만한 것이 없는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즉, 좋은 이력이 되어줄 만한 업무를 맡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당시 맡고 있던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내부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지라, 아래 2가지 중 하나를 충족하지 않으면 이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생각은 없었다.
최소 10~20% 정도의 연봉 인상이 가능한 외국계 기업 혹은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
또는, 회사의 규모가 작아지더라도 최소 팀장/부서장급으로 승진하여 새로운 업무 경험 확보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연락이라 생각했다. LinkedIn에서 조금 규모가 있는 서치펌의 담당자 쪽에서 친구 추가 요청이 왔다. 다만, 거기에 적혀 있는 포지션과 회사명이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내가 평소 관심 있어하던 분야, 내가 좋아하는 회사, 하지만 그 회사는 내 포지션을 거의 뽑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채용 규모 자체가 작아서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 기업을 나름 2-3년 차 정도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 포지션이 열리는 날이 있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고, 내 머릿속에 잊힌 기업 중 하나였다.
ㅇㅇㅇ사 PM 포지션을 추천드립니다.
거짓말 하나 섞지 않고, 나는 그날 저녁 퇴근 후에 이력서를 정리하여 보냈다. 이력서를 보내기까지, 1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재직 중이던 회사의 처우나 인사방침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만큼, 이력서는 늘 품속에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평소 정리해둔 이력서에서 그 회사가 관심 있어할 만한 이력들을 추리는 일이었다.
이력서를 보낸 뒤 통화를 하여, 이력서의 내용에 대한 간단한 피드백을 요청했고, 강점이 잘 드러나 있고 읽기 편해 그대로 진행해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도로 수정은 하지 않았다. 더불어 해당 채용공고는,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 내 채용 섹션에 등록되기 전이고, 헤드헌터를 통해 우선 공개된 상태라는 점을 전달받았다.
나중에 별도로 물어보아 알게 되었지만 24시간 이내에 회신한 사람이 나 외에 한 명이 더 있었고, 나와 그 경쟁자 2명이 우선 가장 빠르게 면접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즉, 빠르게 움직인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이다.
서류를 보낸 지 이틀 정도 후에 첫 면접 일정을 잡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서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이때까지는 헤드헌터보다는 회사가 마음에 들어 서류를 먼저 보낸 상태였고,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나도 긴장과 함께 궁금함이 생겼다. 나의 회사 근처로 방문한 헤드헌터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회사에서 어떤 성격,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지, 현재의 포지션에서 원하는 사람은 어떤지 등의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나는 헤드헌터에게 아래의 사항들을 물어보았다.
당신(헤드헌터)은 내가 잘 되면 어떠한 이득이 있는가?
당신이 보기에 나의 어떠한 점을 이 회사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여 추천했는가?
그 회사의 수익구조는 어떤가? 경영 상태는 어떤가? (즉, 월급은 밀리지 않고 잘 줄 것 같은가?)
이 포지션은 왜 열리게 되었는가?
그 회사에 가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나의 현재 연봉은 X천만 원인데, 얼마나 올려서 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 되는가?
특히 첫 번째 질문을 하고 나서, 오히려 개인적으로 매우 편하게 물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부러 내 회사 근처로 와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인데, 이 사람에게 내가 어떤 득이 되길래 나를 도와주는지 매우 궁금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고, 결국 나도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니까. 그게 아니라 나를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으니까. 대략적으로, 헤드헌터는 나의 이직이 성공하면 보수를 받는다는 것 정도는 알 고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이러한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인지가 나는 궁금했다.
결국 나의 이직 성공이 이 사람에게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완전히 내 편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고 공개 가능한 수준에서' 제법 심도 있는 답변을 해주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연락을 받았던 '채용공고만 대충 읽고 아무에게나 뿌리는' 헤드헌터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확실히 받았다.
그 뒤로도 이 헤드헌터는 여러 가지 이직과 관련된 실질적 도움을 주었다. 면접이 있는 날은 반드시 오전에 먼저 나에게 전화를 주어 일정에는 문제가 없는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등을 체크했다. 혹시라도 돌발상황이 생기게 되면 대응을 도와주기 위해 대기해주는 느낌이었다.
외국계 기업의 특징답게, 꽤 여러 번의 면접이 있었고 총 4일에 걸쳐 하루에 3-4개의 면접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사이사이 준비 기간 동안에 나에게 면접을 준비하면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나 정보들을 공유해 주었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이전에 합격한 사람들' 또는 '떨어진 사람들'의 사례를 많이 공유해주었다. 물론 인터뷰 준비는 본인이 하는 것이 맞지만, 이러한 정보들이 준비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아주 좋았던 점 한 가지는, 인터뷰가 끝나면 회사에 연락하여 가능한 빠르게 나에게 진행 경과를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보통 인터뷰 이후 1주 이내로 결과를 들을 수 있었고, 이때 함께 나왔던 피드백들을 나에게 전달해주어 다음 인터뷰를 준비할 때도 어느 정도 참고가 가능했다.
결론적으로, 이직의 과정 전반에서 내가 회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기 어렵거나 곤란한 부분들을 적극 나서서 확인해주면서, '여럿의 합격생을 배출시킨 노하우'까지 나에게 계속 공유를 해준 셈이다.
이 헤드헌터를 만나기 전까지, 정말 많은 헤드헌터들에게 메일과 연락을 받아봤다. 많은 경우 위에 이야기했던 '걸러야 할 헤드헌터'였고, 헤드헌터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만 잘 만난다면 해당 기업 내부에서 나의 이직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의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많이 준비하고, 잘 정리해 두는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 아닐까?
다시 한번, 이력서를 부지런히 정리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