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제 그만 퇴사하자.

처음 커리어를 시작한 회사와 인연을 끊기까지.

by 난나

ㅇㅇ님, 성장 기회가 더 많은 자회사로 가세요.


ㅇㅇ님이 속한 조직에서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은 기존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일과 속성이 너무 달라요. 내부에서 그 사업을 모르는 분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가서 하면 성공하기 더 좋다는거죠.

나는 위 한줄을, 신박한 Dog 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회사를 다니며 저런 소리를 무려 세번을 들었다. 한마디로, 자회사로 강제 이동을 세번이나 당했다는거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 내가 너무 무능력해 보이는데, 회사에서 좋은 평가 받으며 일 잘한단 소리 들으면 다인줄 알았던 시기를 지나치게 오래 겪었다는 측면에서는 일견, 맞는 말이다.


나는 총 8년의 회사 생활에서, 6번의 정기고과 중에 2번을 S를 받았다. 전사 상위 10%라는 의미이다. 신입사원이던 첫 해와, 퇴사하던 마지막 해를 제외하고 3번에 한번 꼴로 전사 상위 10%,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 생각했다. 특히 첫 해에는, 일 잘하는 신입으로 유명해 이듬해 나를 데려가려는 조직장이 세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옮겨간 조직에서는 고과평가 상위 10%에 들어 High-performer가 되었고, 신사업 TF에 스타팅멤버로 합류한다. 그리고 저 지난한 ‘자회사 발령’의 굴레에 빠지기 전까지, 신사업 조직에서도 S를 받았다.


그때는 그게 무척 자랑스러웠고, 이제는 그게 얼마나 내가 회사에 충성스런 무식한 노예일 뿐이었다는 이야기인지 안다. 고과가 좋고 일잘하는 직원으로 인기가 많으면 뭐하나? 허구헌날 신사업 하라고 자회사로 발령내는데. 결국 내 연봉은 동기들보다 늘었지만, 줄어든 보너스 덕분에 연말에 찍힌 원천징수는 20%가량 줄었다. 너무 화가 나고, 늘 이직에 목말라 있었지만, 애매-하게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지라 더 좋은 조건을 가진 회사로 이직할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나의 브런치 내에 있는 다른 글에도 간단하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나는 한 기업을 8년을 다녔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이력서에는 총 4개의 법인명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는 가만히 있는데 회사가 계속 변했다. 서류상 나는 3번이나 이직을 한 사람이 되었고, 옆자리 동료도 윗사람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도 계속해서 간판이 바뀌는, 기묘한 경험을 한 셈이다.


사실 나의 이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에 대해서, 주변에는 웃으며 자조적으로 자주 이야기를 했었지만, 시간을 내어 글로 정리해 본 적은 따로 없었다. 다행히 지금이야 마음에도 들고 손해봤던 연봉도 다 회복해가며 제법 괜찮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정말이지 나의 저 끔찍했던 '강제이동'의 순간들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글로 한번 정도 남겨서, 누군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공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상한 생각을 하며, 글을 시작해본다.


나도 해본 파업의 현장 (일단 글쓴이의 회사는 아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자 마자 내가 겪은 첫 이직은 다름 아닌 회사의 법인 분리였다. 마침 내가 신입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던 시기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맡물려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새로운 아이폰을 소개하고,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스피치를 들을 수 있던 시절, 그 회사는 본래의 업무와 결이 다른 '모바일 인터넷'을 담당하는 부서를 회사에서 내보내기로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로 합격하고, 수습을 거쳐 정직원으로 현업부서에 발령받은지 딱 2개월째 되던 날, 나는 갑작스레 자회사 발령이라는 이상한 소식을 듣게 된다.


사실 그 뒤에 이어질 지랄같은 경험에 대해서, 못해도 3시간 정도는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상실감, 내가 어떻게 그 회사에 들어갔는데? 취업이 잘 되지 않아 졸업을 미루고,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공채 경쟁률 200:1을 뚫고 겨우 '인턴'이 되어, 그 와중에도 무려 2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하계인턴에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다시 1/2로 줄어드는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도착한 자리가 그곳이었다. 그런 회사에서, 6개월 만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자회사를 만들 예정이니 그리 가라고 한다. 아래 한마디와 함께.


ㅇㅇ님이 하던 일이 그대로 새 회사로 옮겨갑니다.

저 말은 아주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1) 당신이 하던 일을 자회사로 가면 그대로 할 수 있다. 커리어를 유지하려면 그리로 가라.

2) 당신이 하던 일은 이제 우리 회사에는 없다. 커리어를 유지하려면 그리로 가라.

3) 하던 일을 똑같이 가져가는데, 대체 무슨 불만이 그리 많냐?


한마디로, 너가 하던 직종 계속 가져가고 싶으면 분사하는 자회사로 가라 이거다. 당연히 연봉도, 복지도 바뀌지만, 회사는 알 바 아니었다. 그저 계약관계일 뿐. 분사에 반대하는 파업도 하고, 회사 앞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불러봤다. 하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강제 이직이 시작되었다.



처음 강제로 이직이 되던 때, 답답한 마음도 많았지만 회사는 한동안 새로운 사람들과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들로 나름 괜찮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그리고 엄밀히는 '하던 일은 그대로' 라는 부분은 맞았던 지라, 나는 명함만 바뀌고 (연봉이 줄어들었을 뿐)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나 일하던 방식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회사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사실, 내가 입사 후 쭉 맡았던 신사업 조직은 '회장님은 굉장히 하고 싶어 하지만, 회사에서는 계륵처럼 여기는' 사업 중 하나였다. 마치 S모 그룹의 자동차처럼, 회장님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뽀대는 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 회사는 관련하여 1도 경험이 없고 인프라도 없어서 죽어라 맨땅에 헤딩하는 그런 일 말이다. 거기다, 신사업이 이익이 나기가 어디 쉬운가. 매년 매출보다 많은 비용에, 회사에서는 계속 '돈 쓰는 조직'으로 여겨졌다. 나야 감사하게도, 회사 돈으로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 많이 해볼 수 있었지만, 평화로운 나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포스트에서도 누차 말했지만, 회사가 그리 행복한 곳이면 돈 주고 다녀야지, 돈 받고 다니는 곳이 될 리가 없다.


두 번째 분사

ㅇㅇ님, 님이 속한 조직에서 하는 사업은 우리 회사의 포트폴리오와 맞지 않아요. 우리 회사에서 그 사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가서 하면...
o0473036314388676868.jpg 잠깐, 어디서 들어봤는데 이거?

회사가 분사하고, 몇년 지나지 않아 이놈의 회사는 또 분사를 한다고 했다. 과연 어디까지 쪼개질 수 있는걸까! 본체가 되던 모회사에서 사업의 결이 다르다고 그 사업은 꼭 이 신생 회사와 함께 가야 한다며 조직원들을 설득하던 그 리더는 애초에 짤리셨다. 이번에도 회사는 같은 멍소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ㅇㅇ님이 하던 일은 그대로 새 회사로 옮겨갑니다. 똑같습니다.


말도 똑같다. 논리도 똑같다. 새로워진 것이라고는 더 작아지는 회사규모, 회사 근처 중국집에 전화하여 예약 잡을 때 '이름이 뭐라구요?' 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된지 얼마 채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또 회사를 쪼개고 사명을 바꾼단다.


적는 나도 참 놀랍지만, 그 놀라운 일을 이 회사는 두번이나 해냈다. 조직원의 경력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심지어 점차 나빠지는 처우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능력있는 선배들은 짐을 싸기 시작했고, 나도 사실 첫번째 분사 이후로 계~속 이직을 알아보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이 '모호~'한 수준의 회사는, 딱히 다른 곳으로 당장 뛰쳐 나가기에도, 이 회사를 계속 다니기에도 참 애매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여가면서, 그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이 회사에서만 할 수 있는 일", 다른 곳에서 얻기 힘든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이직의 때만 노리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중간중간 몇번 이직 제의와 함께 최종 오퍼를 받게 된다. 여러 이유로 (처우가 맞지 않거나, 회사가 불안정하여) 이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장에서 내 가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회사를 향한 짜증과 분노는 조금씩 '이 상황에서도 내가 챙길 수 있는 것'을 챙기는데 집중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더욱 놀라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글이 길어져서, 다음 시간에 계속.



지금 회사가 마음에 안들어 저처럼 이직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는 노하우를 정리해 둔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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