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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oooz Jul 16. 2022

임신 5개월, 승진을 했다.

워킹맘 초읽기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수많은 생각들을 뚫고 내 입에서 간신히 나온 첫마디는 "나 회사는...?"이었다.


나는 워커홀릭이다. 다른 사람들이 너 워커홀릭이야, 할 때 아니라고 손사래 쳤지만 나는 안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어려운 프로젝트에 맡게 될 때 내심 기쁘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내 몫 이상을 해낼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주 지치지만 곧 다시 일어나고 새롭지만 어려운 일에 또 나를 던진다. 그게 나다.


뜻밖의 임신이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이후의 커리어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막막했다. 회사야 다니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정일을 따져보니 한참 배가 나올 복판에 신규 프로젝트를 위한 일들이 줄줄이 있었다. 당분간은 회사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임신한 직원에 대한 복지와 배려가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임신 사실을 알리면 내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프로젝트 조정을 할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임산부 뱃지를 받지 않는 대신 운동화로 바꿔 신고 출퇴근을 했다. 출장이 많았던 임신 초기, 극강의 입덧이 오면서 사과 같은 새큰한 과일들을 가방에 챙겨 다녔고 마스크 아래로 몰래 밀어 넣으며 속을 달랬다. 임부복 대신 고무줄 스커트에 자켓을 입고 미팅을 했다. 코로나19로 재택 중이라 비대면 미팅이 많아 다행한 일이었다. 입덧이 유난히 심한 날은 여기저기 섞여 나는 음식 냄새가 곤욕스러워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에 혼자 식당에 내려가 홀로 식사를 했다. 임신을 눈치챈 동료는 없었다.


해가 바뀌고 임신 4개월이 되었을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승진 하마평에 내가 올랐다. 그간의  실적을 돌아보면 승진을 해도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승진은 내 일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자 회사와 조직으로부터 받는 인정이었다.  모습이 들떠보였는지 남편이 어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지금이라도 알리지 않으면, 승진 욕심 때문에 임신 한 걸 알리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승진이라는 건 지난 성과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를 기대하는 회사의 의사결정이도 해. 출산 때 너의 공백까지 회사가 양해해 줄지는 회사의 몫이야. 더 늦어지기 전에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임신을 했기 때문에 승진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까지도 감당해야 한다는 남편의 뒤 이은 설명이 나를 서운하게 했다. 순간 유리박스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면서 그간 생각하지 않았던 모든 것이 원망 스러졌다. 임신 후 정작 본인의 몸과 일상에는 변한 것 없는 남편, 남편과 비슷한 의견을 주던 가족들, 찾아온 아이까지도. 


회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릴 일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머리가 아득해지면서 나의 커리어와 아이의 임신과 출산은 정말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인지에 골몰했고 외로웠다. 내가 내 일과 출산을 모두 해낼 수 있다는 것과 별개로 그것에 대한 회사와 동료의 평가와 생각은 결국 다른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동료들의 평가와 승진 이야기가 한창이던 임신 4개월, 부서장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임신 사실을 알렸다. 부서장은 놀란 기색 대신 ‘애국자’라는 말로 축하의 인사부터 건넸다. 그리고 그간 어떻게 일을 해왔냐고, 말을 듣고 보니 배가 좀 나온 것 같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출산예정일과 휴가에 들어갈 시점을 확인했다. 출산은 앞으로 5개월쯤 남았고, 출산휴가 3개월 후 복직을 하겠다, 컨디션이 좋고 일을 계속하길 원하니 프로젝트는 내가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전달하고 면담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 비로소 동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나는 다시 묵묵히 내 일을 했다. 승진에 누락되더라도 객관적인 평가 그 자체를 받고 싶었다. 임신 사실 때문에 업무력이 줄어들었다거나 일을 이전처럼 해 내지 못한다는 평가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렇지만 나의 의지와 다르게 몇몇 프로젝트에서 내 몫이 줄어들었고 스트레스가 동반될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나는 배려받았다(배제됐다). 


그 몇 주, 나는 참을 수 없이 속이 상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배려하는 동료들이 얄미웠다. 퇴근길에 묘한 패배감까지 느껴졌다. 동시에 이 배려를 온전히 감사할 줄 모르는 내가 이상하고 미웠다. 배려해주는 동료와 회사에게 온전히 감사할 수 없는 걸까. 내가 마음이 꼬인 건지, 이상한 자격지심을 부리는 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몇 주간 내 마음은 거의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런 내 마음이 모두 정리되었다. 가끔 SNS의 알고리즘에 내 마음과 생각을 도청당한다고 느끼는데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제 스스로가 혹시 임신을 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능력이 떨어지게 될까 봐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사실 있었어요. 나 자신이 그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사실 그럴 필요 없는 건데…(중략) 병이 심한 거예요. 난 이건 병이 심하다고 봐. 이거는 중병이야. 또 개인적인 특성도 있었겠죠. 그런 소리 듣는 꼴도 싫어 이러니까.”   - 오은영 박사님 인터뷰 중


글을 읽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나 중병이네 진짜. 자격지심 맞네, 맞아.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괜히 내 성격에 내 마음을 못살게 굴고 배려하는 동료들을 미워했네. 배려를 기쁘게 받아들이자, 아가야 일을 즐겁게 하자. 지금은 그럴 때구나.


그날부터 일을 더 기쁘게 했다. 배려를 하면 감사히 받고 내가 다른 쪽에서 할 수 있는 서포트를 더 했다. 그즈음 태동이 활발해진 뱃속 아기는 내가 일을 하거나 미팅을 할 때 더없이 활발했다. 내가 저걸 못한다고 해서 지금 이걸 못하는 건 아니니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에너지도 돌았다. 


옹졸하게 꼬여있던 마음에서 벗어나니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이 배려를 감사할 줄 알아야 나 아닌 다른 여성 동료들이 훗날 이것보다, 혹은 그 보다 더 많이 배려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일하는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보기 중 하나로 남아야 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승진을 했다. 임신 5개월이었다.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고서야 비로소 남편과 조촐하게 축하했던 우리의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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