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이가 생겼다.
자연임신 가능성이 10%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10년 전에 받은 진단이었다. 자궁내막증 수술을 2번이나 받으면서 양쪽 난소 기능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다. 6~8개월에 한 번씩 담당 교수님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현재 상태에 대해서 늘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유쾌했다. 그렇게 10년, 해가 쌓이면서 자궁내막증이 다시 발병하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남편과의 연애시절, 내 상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이 없는 삶과 그리고 아이를 낳으라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한 플랜을 이미 세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결혼을 했다.
주말 부부였기 때문에 퇴근 후 평일 시간은 혼자 만의 시간이었다.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고, 제법 몰입했다. 욕심이 생겨서 여름부터는 식단도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따뜻한 물 한 컵을 마시고 한 시간 씩 공복 유산소를 했고, 일을 시작했다. 다이어트 보조제는 먹지 않았지만 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아르기닌은 매일 챙겨 먹었다. 저녁 퇴근 후에 근력운동과 유산소로 2시간을 꼬박 채우곤 하루를 마쳤고, 식단도 게을리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10월 어느 날, 마침내 감기 몸살이 찾아왔다. 몇 개월간 타이트한 식단과 쉼 없는 운동으로 몸이 지친 탓이었다. 코로나가 극심한 때라 업무 미팅을 모두 취소하고 운동도 쉬었다. 병원에서 코로나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려가 되니 자가격리를 권유했다. 받아놓은 약을 먹으면서 회복에 집중했는데 일주일이 다 되도록 몸살 기운이 좀처럼 낫질 않았다. 재택근무 중에 책상에 엎드려 쉬거나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운 일이 없는데 그 며칠은 견디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도 근손실이 염려돼 소고기를 사다 혼자 구워 먹었다. 그리고 그 주 주말, 남편이 오면 한껏 어리광을 부릴 참이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금요일 밤, 모처럼 치팅을 했다. 치킨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장난치며 서로 스쾃도 하고 나는 새벽 2시까지 사이클을 타고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다짜고짜 눈이 번뜩 떠졌는데 문득 임신테스트기가 생각났다. 임신 가능성이 10%도 안되지만 결혼 후에 재미로 몇 개 사다 두고 남편과 장난처럼 해보던 것이었다. 비척비척 일어나 화장실 변기에 앉아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검사를 마친 테스트기를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 구석에 올려두고 나왔다. 습관대로 물을 마시고, 사이클에 앉아 공복 유산소를 얼마쯤 하다가 테스트기를 확인했을 때 우리 부부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왜 그런 생각이 났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토요일이라 마음이 급했다. 부랴부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부인과를 검색해 방문했다. 내게 몇 가지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피검사 수치로 임신 확인이 가능할 거라고 했다. 피검사를 마치고, 두어 시간 후 나는 임산부가 되었다. 화창한 10월의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