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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x Oct 08. 2020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의 흔한 착각들

너 디자이너 아니라 회사원이야 정신 차려 좀

 디자이너와 작가의 혹은 아티스트의 경계를 명확히 정의할 수 없겠지. 디자인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는 자주 듣는 불만들은 빤하다. 그중 이해할 수 없지만 길고 긴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굳이 입을 열지 않는 논쟁거리들을 몇 가지 나열해 본다.


1. 당신은 작가나 아티스트가 아니다.

- 당신은 '인하우스' 디자이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디자이너 이전에 회사원이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일원으로서 기본적으로 회사의 목표에 부합하는 업무를 하되 담당업무가 디자인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수익창출을 목표로 한다. (수익창출이 최우선의 목표가 아닌 회사라 할 지라도 수익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회사가 이 땅에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 말인즉슨, 내가 맡은 업무의 방향이나 성향이 나에게 조금 맞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회사의 목표에 부합하게 같은 노선을 가야 한단 말이다.


 재료비가 너무 비싸 제품의 판매 마진에 영향을 주는 디자인 요소를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는 자주 목격된다. 뒤늦은 변심으로 형상이나 CMF를 변경하여 개발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개인의 디자인 철학이나 취향을 담아 주장하려면 적어도 다른 부서의 사람들, 그리고 상사를 설득시킬 수 있을만한 주제를 가지고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단순히 '디자인적으로' 이쁘니까. 혹은 보기 좋으니까. 는 회사 내의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단기적으로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여 장기적인 제품 포트폴리오에 경쟁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이라도 하는 게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정상적인 자세다.

 결국 인하우스 디자이너라는 단어는 월급쟁이 회사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회사에서 취미활동하냐'라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2. 개발놈들 어쩌고, 마케팅놈들 저쩌고 하지 마라.

-적어도 내가 만난 개발자들, 마케터들도 당신이 n년동안 학부/석사에서 학문으로서의 디자인을 연구할 때, 그들의 분야에 대해 deep-dive 했었다.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고, 그렇기에 일정한 월급을 받으며 인하우스 OOO으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디자이너들은 '개발자들은 입만 열면 안 된다는 소리밖에 안 한다.' 라거나 '마케팅 놈들은 상품컨셉도 모른다.'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


 개발자가 안된다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레진 칼라로도 비슷한 칼라 낼 수 있는데 굳이 스프레이 사양으로 재료비 높여야 하나요?'

'조립 순서 때문에 공정 상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파팅라인 바꿔야 돼요.'

물리적으로, 비용적으로 효율적으로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 뜻대로 하고 싶다면 그 포인트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하고 개발자와 토론해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이다.


 흔히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이 아닌 '그림'을 그린 주제에 'OO사에서는 이렇게 양산했던데? 해줘요!' 하지 마라. 애플의 코어라인 자국이 없는 역구배 형상엔 어떤 사상 과정이 들어가는지, 그에 따른 비용 증가는 어느 정도인지, 초프리미엄 제품의 수작업 사양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 공부해라 제발.

그게 아니라면 본인의 무식을 타 부서에게 전가하는 일 일뿐이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바이어, 거래선은 수년 동안 물건을 시장에 깔고 팔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물건이 잘 팔리고 어떤 물건이 매대에서 먼지만 쌓여 갈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디자인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이야기들을 그저 '무식한 소리'로 취급할 수가 없는 이유다. 마케터부터 설득시켜야 제품을 바이어에게 가져가 SKU를 받을 수 있는 거다.


 당신의 눈에 이해가 안 된다고 '이게 이쁘다고? 이게 팔린다고?' 하지 마라. 디자이너가 시각적 수준에 있어 우위에 있다고 하는 착각에 기반하는 기만이다. '디자이너들에게만 이쁜 물건'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절대. 현대차 디자인 이쁘다고 난리 치는 거 봐라.


3. 다른 디자인에 대해 함부로 폄하하지 마라.

-경쟁사나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신제품이 나오면 취향에 맞지 않는 디자인이라고 함부로 폄하하지 마라. 회사생활 좀 해봤으면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디자이너의 디자인실력은 회사의 최종 결과물과 상이할 수밖에 없다.

 

 좋은 디자인이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시장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단순 디자이너의 디자인 감각뿐만이 아니라 그 디자인을 가지고 유관부서 담당자들과 충분한 공감대를 이뤘다는 이야기이고, 4050 꼰대 임원 아저씨들을 설득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이건 절대 디자인 언어를 비디자인 언어로 풀어내는 것 또한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능력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경쟁사에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못생긴 제품이 출시되면 사무실 동료들은 한숨을 쉰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대사는 늘 같다. '얘네들도 디자인을 못하는 게 아닐 텐데 힘들었겠네...'

 한 회사의 생태와 정치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에 따라 디자이너 개인의 실력은 꽤 자주 무력해진다. 내가 양산해낸 가장 못생기고 엉망인 제품을 돌이켜 보라. 분명 내 실력은,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디자이너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 어느 분야가 그렇듯 하나의 분야에 대해 반복적으로 수련하고 훈련하고 연구하여 일정치의 전문성이 생긴 것 뿐이다.

 '디자이너의 특권의식'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디자이너 만큼 타 분야의 전문가에 쉽게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건 보통 디자인은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접하다 보니 하는 흔한 착각 일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이 많고 식견이 넓다.'는... 내 자신이 그리 특출난 사람이 아니고 나의 직업은 그저 회사원이라는 사실을 환기 해보면 '디자이너'라서 종종 저지르는 헛웃음 나오는 실언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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