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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x Sep 15. 2020

왜 깊은 고민은 없는가

왜 그랬어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의 작업을 후드려 까고 싶어서 발행하는 글.



 1960년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놀라운 그러니까 괴랄한 컨셉의 TV를 많이 만들어 선보였던 Teleavia의 TV를 리디자인 해보는 컨셉의 작업이다. 클래식한 컨셉을 가진 TV들은 여러 제조사에서 많이 선보인 바 있다. 그들의 시장 성공 여부를 떠나 이 작업은 터무니없는 구석이 너무 많다.



 비례상 얼추 40인치 대의 TV로 보이는 저 컨셉 레트로 TV가 탑재한 스크린은 뭘까. 모서리가 동그렇게 잘려나간 모습은 OLED나 마이크로 LED가 아니면 구현이 불가능하다. 현재 LG에서 77인치나 65인치 크기의 OLED TV를 생산해 내고 있고 심지어 이미 48인치 OLED TV를 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투리를 잡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서리가 저렇게 둥근 TV가 재생해 낼 콘텐츠의 문제이다. (심지어 모서리 라운드 값이 위아래가 다르다) 당장에 아이폰으로 유튜브에서 영상 재생을 해도 모서리의 R부분에는 콘텐츠가 채워지지 않아, 높이 기준으로 콘텐츠를 스케일 해서 출력하거나 모서리를 채우기 위해 좌우를 채우고 위아래를 포기한다. 둘 중 하나뿐이다. 비교적 가벼운 사용성의 핸드폰에서나 겨우 허락될 문제가 콘텐츠 집중도가 높은 TV에서 허락될 리가 있을까?



 디테일은 더 심하다. 저것이 '레트로'한 벤트홀인가? 둥글둥글한 외형 실루엣을 제외하고는 레트로라고 주장할 요소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컴포넌트 단자로 연결할 주변기기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혹여 사용자가 30년 된 패시브 오디오 마니아라 저 TV에 컴포넌트 선을 줄줄이 꽂아 들을지도 모른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저 TV의 컨셉 중 하나는 portable이다. 가정환경 내에서 TV를 들고 다닐 수 있게 위에 가죽 핸들까지 달려있다. HDMI 단자가 2개냐 3개냐로 소비자의 구매 결정이 갈리는 TV 시장에서 클래식한 컨셉의 제품이 아니라 그냥 옛날 제품을 만든 격이다.



 스탠드는 2012년에 삼성에서 나온 ES8000 스탠드의 못 생긴 버전이다. ES8000이 삼성에서 출시되고 다음 연도에 중국에서 비슷한데 못생긴 스탠드가 줄줄이 출시된 걸 알까. 내가 디자인 한 형상이 시장에 존재하는지 유사한 카피로 혹여 오인받지 않을지에 대한 자기 검열이 없었단 이야기다.

혹여 '컨셉디자인이잖아.'라던가, '모서리가 둥근게 이쁘잖아.' 따위의 이야기를 할 것 같아 벌써부터 뒷골이 저려온다. 컨셉디자인이라는 명목으로 현실성이나 양산성을 외면하려면 '더 컨셉'이어야 된다. 막말로 TV가 날아다녀 내가 화장실에서 큰 일 볼 때 옆에서 영화를 보여준다면 하다못해 컨셉에 공감되어 현실성이 평가의 잣대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생이기 때문에', '컨셉디자인이라서' 같은 말들은 교묘한 자기 방어이고 핑계다. 하나의 디자인을 할 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범주나 방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하지 않으면 나 같은 못난 사람들이 본인이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태클을 거니까. 백번 양보해서 태클이 아니더라도 한 분야의 제품을 디자인하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리서치와 공부는 기본이다.

 

'그냥' 스타일링해서 디자인했다.라고 하는 건 디자인이라고 감히 이름 붙일 수도 없거니와 일종의 기만행위이다.


 양산과 현실성이 디자인의 절대적 잣대로 군림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컨셉'에 동의하게 하려면 그 컨셉이 매력 있어야 한다. 저 컨셉엔 매력이 없으니 나 같은 애들이 투덜거리는 거다.

 

 제품 디자인을 하는 회사에 흔히들 있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의 출발점은 바로 이런데 있다. 그렇게 멋진 그림만 그려서 팔로우업 과정에서 디자인이 망가지면 그때는 그 누구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거나 무능력한 개발 탓이라고 애꿎은 화살을 돌리는 모습을 수백수천 번 봤다. 무책임이다.


 이 작업을 한 당사자가 생각이 얕거나 대충대충 마인드로 디자인을 이렇게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업의 출처와 의도를 너무나 명확히 알기 때문에. 간절했을 거다. 디자인 공부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을 거다. 흘러 흘러 찾은 곳에서 '디자인'이라고 알려준 건 사실 그저 스킬 습득이란 걸 뒤늦게라도 깨달았을까. '교육'과 '수업'의 이름을 함부로 붙이기에 디자인은 그리 가벼운 분야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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