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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xx Sep 02. 2020

메탈이면 다 좋지 뭐.

메탈인지 아닌지 헷갈릴 땐 손등을 가져다 대본다.

 벌써 8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지금 이 회사의 인턴을 하던 시절 이야기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기획파트에 계시는 소위 '브레인'이라고 알려진 어떤 선배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제품이 메탈로 만들어져 있으면 좋은 건가요? 왜 좋은 거죠?"


뭐... 라구요...?


 사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다.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진 제품은 당연히 고급스럽고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당연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 나는 한동안 심란한 고민에 빠졌었다. 이어진 '브레인'의 이야기는 더욱 나를 혼돈으로 밀어 넣었다.


 "회사의 라인업을 주욱 봤을 때, 프리미엄 제품군은 메탈을 쓰고 엔트리 제품은 플라스틱 파트를 많이 쓰잖아요. 단순히 재료비가 아니라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전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서 잘 몰라서 여쭙는 거에요. 혹시나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그 '브레인'은 말투부터 단어 선택까지 내가 문자로 옮겨 쓰기 벅찰 정도로 고급스럽고 유식한 티가 팍팍 나는 화법으로 대화-일방적인-를 이어 나갔다.


 "음... 예를 들어 주황색 볼펜이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면 그 이유가 뭔지 알면 디자인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주황색 볼펜이 인기가 많은 게 가격 때문인데 색깔 때문이라고 우리가 오해하는 건지, 진짜 가격 때문이라면 색깔은 상관이 없는 건지 그런 걸 알게 되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비싼 재료비를 쓰면서, 그러니까 알루미늄을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메탈은 고급스러움을 살릴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소재라는 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져 그것에 대해 더 이상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놀라운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소재에 대한 이해를 바꿀 사례는 많았다. 삼성 Sherif TV는 형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하고서도, 싸구려 소재라 받아들이는 플라스틱으로도-스프레이는 했지만- 고급스러운 소재감을 낼 수 있다는 것의 증명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부흘렉 후광효과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그 의의가 더 크다 생각한다.)



 비용 문제로 알루미늄 헤어라인을 쓰지 못해 흉내만 낸 사출 헤어라인이 여기저기 쓰일 때, 유리가 주는 소재의 신뢰감 하나로 제품디자인을 끝내 버린 Bose Soundbar 700 같은 물건도 있다. (화이트 버전 진짜 이쁘다.) 메탈 그릴이 헤밍 된 마진의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럽지만  상판의 유리 소재 하나로 저 디자인은 끝난 거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이라는 게  대단해야 끝나는 게 아니라 소재 하나로 끝날 수도 있고 칼라 하나로 끝날 수도 있다고, 디자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그것이 꼭 형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학생 시절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내가 했던 디자인은 형상에 너무 치우쳤었지 않나 싶다. 회사에서 자주 쓰고 많이 쓰는 소재는 정해져 있고, 그 소재의 여러 가공방법 중 비용이 허락하는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기에 형상에 의한 디자인으로 자연스레 무게가 기울었던 것 같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메탈이면 왜 좋은 거지? 좋게 느껴지긴 하는데. 그 이유를 명쾌히 문장화 시키지 못한다. '순수하고 변질되지 않는 소재에 대한 무의식적인 신뢰성'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와 닿지 않고 프로이트한테 '니가 그렇다며' 하고 떠 넘겨버리는 것 같아 차마 하지 못한 지 몇 해가 흘렀다.

그 고민의 해결은 아직도 되지 않았지만 생각을 정리할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해석의 깊이가 동반되지 않을 뿐.

작가의 이전글 '레퍼런스'라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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