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볼

by 희연동나비란



공 하나에 감각이 살아난다. 어렸을 때 아빠랑 캐치볼을 많이 했었다. 이름 모를 공터에 가면, 나는 유격수 자세를 잡는다. 타격 코치가 된 아빠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다이나믹한 땅볼 타구를 생성해낸다. 열 번 중 일곱 번 정도 수비에 성공했다. 야구는 살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된 첫 종목이었다. 동네에서 먹히려면 실력은 둘째치고 야구 폼이 우선이다. 한 가지가 특출나진 않아도 밸런스는 꽤 괜찮은, 한때 참 싫어한 내 특성이 야구 폼에는 최적이었다. 으쓱해지니 실력은 따라왔다. 이름 모를 공터는 참 평화로웠다.


10년 만에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시로 이사 온 후 처음이었다. 이사오기 전엔 학교가 끝나면 테니스공부터 잡아 공터로 뛰어갔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선 피시방 마우스를 잡지 않으면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워서, 게임을 모르면 또래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어서, 공터 대신 PC방을 향하게 됐다. 그렇게 아빠와의 유일한 취미는 창고 속 구석으로 들어갔다. 가끔 공터가 그립긴 했다. 그러나 억지로 공을 꺼내기엔 공부가 바빴다. 아마 바빴을 것이다.


집에 야구공이 있었지만 테니스공을 챙겼다. 공터에선 아빠가 테니스공을 챙겼었다. 야구공은 딱딱했고 나는 무서웠다. 선수들이 쓰는 야구공으로 하는 캐치볼은 내겐 어른이 됨을 의미했다. 지금은 야구공 따위가 무섭진 않다. 그러나 야구공을 집으려다 망설여진다. 얼마전 눈 수술 후 배드민턴을 치다가 헛스윙을 하고 침을 꼴깍 삼키던 아빠와, 그리고 본능적으로 땅을 쳐다봤던 내가 기억에 스친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테니스공을 챙긴다.


와인드업을 하고 1구씩 천천히 공을 던진다. 조금씩 빗나가다가 3구째 공이 가운데 꽂힌다. 어렸을 적 감각을 잡았는지 다시 한 번 더 꽂힌다. 이번엔 테니스공을 커브볼 그립으로 잡는다. 아빠에게 처음 배운 커브볼은 분명 나의 주특기였다. 이제는 실밥이 없는 테니스공에는 전혀 회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때는 분명 공이 잘 휘었다.


상념에 잠겼다가 머리를 재차 흔들곤 와인드업 자세로 취한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높이 들었다가 공을 던진다. 포수로 쪼그려 앉은 아빠의 글러브 속으로 그때처럼, 공터에서처럼, 완전한 포물선의 커브볼이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