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인간은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프리드리히 니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스물하나부터는 나이 먹는 게 두려웠다. 마감 기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뭔가를 이뤄야 할 것 같았지만, 그 이면에 ‘삶에 정답은 없다’라는 추상적인 결론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이 하고플까,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정오가 채 안 된 어느 날 엄마와 조조 영화를 본 후 쌈밥집에 마주 앉았다. 채소와 약간의 고기, 공깃밥 한상차림과 함께 비싼 명이나물까지 무한 제공되는 곳이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엄마가 방송통신대학교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가 한다고 해서 나도 해야 하는가? 원치 않으면 하지 않는다”라는 철칙으로 또래와 다른 길을 택한 지 2년. 초심은 변함없었고, 서울이나 그즈음에 적을 둔 대학들은 설령 내가 읍소한다 해도 받아줄 수 없는 지경의 거리감이 생긴 후였다. 세상을 향한 기백도 있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도전한 인문고전포럼 10년 과정이 본의 아니게 좌절됐던 터. 뭐라도 허리춤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자꾸만 옷깃을 잡아끌었다.
얼마간의 숙고 끝에 방송통신대학교 홈페이지에서 전공과 학사안내 등을 꼼꼼히 둘러봤다. 문화교양학과가 눈에 들어왔다. ‘문화’와 ‘교양’이라는 방대한 세계의 학문은 대학은 가지 않았어도 배움의 갈급함을 느끼던 내게 돌벽을 타고 흐르는 약수와도 같았다. 1학기 등록은 이미 끝난 후였고, 대신 다가오는 9월부터 입학할 수 있었다. 필요한 건 고등학교 졸업증명서와 (일반 대학에 비해) 약간의 돈, 그리고 의지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보이지 않는 문을 두드리고 방통대 학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