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조기 교육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 교단에 계셨던 부모님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셨다. 내가 걷고 말을 알아갈 무렵부터 예절, 인성 교육이 최우선이었고 언제나 ‘스스로’를 강조하셨다. 그 어떠한 좋은 교육도 배우려는 사람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걸, 부모님은 일찍이 알려주셨다. 덕분에 부모님의 첫 열매인 맏딸로서,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범생으로서, 교우들의 좋은 친구로서···나는 촘촘하고 어여쁘게 세워져 가는 도미노였다. 물론 그땐 몰랐다. 도미노는 언젠가 넘어진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작고 우연한 계기들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숫자 1부터 10까지 적어 내는 영어 철자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얼굴을 붉힌 적이 있다. 숫자 영어를 여태껏 쓸 줄 모르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즈음 잠시 다니던 미술학원에서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Chris-tmas’라고 적는 바람에 같은 아파트 2층 언니에게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7살 유치원에서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 고백도 하지 않고 거절당한 후 인생 두 번째로 맛본 굴욕감이었다. 동네 작은 학원에서 가볍게 파닉스를 마치고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놀이하듯 배웠던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갈 때마다 영영 단어 테스트를 했고 매달 주제를 정한 스피치와 그간의 성적을 종합해 레벨 당락이 정해졌다. ‘무조건 100점을 맞겠다’라는 욕심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언어적 재능 덕분에 대체로 원하는 점수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매번 칭찬을 듣는 우등생의 이면은 그리 편안하지 못했다. 100점 맞을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험을 보고 싶지 않았고, 늘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이 은연중에 자리했다. 언어 자체의 즐거움보다 성취로 인한 만족감을 높이 산 거였다. 그런 마음가짐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부족함이 예상되면 아예 피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꿀떡이는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던 한낮,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단어들을 애써 집어넣으려던 눈동자의 불안한 굴림, 학원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완벽주의자의 사전적 정의는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결함 없는 이가 어디 있으며 완전하다는 것이 누구의 기준인 걸까. ‘완벽’이란 ‘완벽히’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행동을 방해하는 악성(惡性)이다. 하지만 그걸 깨달은 후에도 완벽을 추구하려는 습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늘 망설이며 걱정했고, 나의 결과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나를 사랑하지 못했음은 자명했다. 뛰어나지 않으면 지속하기를 포기해버리는 그릇된 완벽주의는 ‘부족해도 밀고 나가는’ 용기 있는 자들에게 기회를 내어줄 뿐이었다. ‘하나의 길’을 멋지게 이뤄내는 것,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나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것. 떠들진 않았지만 내면은 그러한 욕심으로 가득했다.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 그릇된 완벽주의의 일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