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실제로 고통이자 엄청난 오류이지만, 그 고통이 일시적으로 유예될 때가 있다. 짧은 즐거움의 순간들.” -쇼펜하우어
매미와 함께 웃고 떠들던 소리가 잦아든다. 마지막 골목에 다다른 아쉬움에 발걸음 보폭은 좁아진다. 약간은 어색한 호흡이 더위에 녹을 즈음, 지그시 잡았던 손을 놓고 작별한다. 아파트 유리 현관을 밀어내자 한여름에 발을 딛지 못한 냉기가 불그레한 홍조를 식힌다. 아, 이거 꿈은 아닌데. 실실 미소가 샌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뒤를 돌면, 그 아이는 늘 가지 않고 나를 보고 있다. 어느 날은 먼저 가래도 그리하지 않는다. 낯간지러운 실랑이 끝에 먼저 뒷모습을 보이고 마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오래된 이야기다. 우리는 보통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 애가 시시껄렁한 장난을 걸어오면 나는 당차게 맞섰다. 도망가고, 잡고, 씩씩대고, 웃어 재끼고...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우리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 건 학교 축제를 며칠 앞둔 어느 초여름 밤이었다. 무심하게 툭 던진 문자 메시지와 함께 그 아이는 열성적인 맨 앞줄 학생이 되어 내 시간을, 내 하루를, 내 마음을 궁금해했다. (아마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전개가 싫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착각을 삼킨 듯 미처 알아채지 못한 첫사랑의 여름.
지겹도록 보고 또 본 동네 골목을 가뿐하게 휘저어 가며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눴다. 우리 집으로부터 딱 여섯 골목을 지나면 그 아이의 집이었다. 돈도, 멋도 없던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한여름의 오랜 오후를 가졌다. 걷다 지치면 살지도 않는 곳 나무 벤치 아래서 느긋하게 그늘을 부려먹었다. 열지 않은 듯 어두컴컴한 세탁소, 반지르르한 최신 편의점, 만년 오토바이 대기 중인 통닭집, 아이들의 쟁쟁한 웃음소리가 잦아든 어린이집... 서로의 바운더리에 있는 간판들을 못 이기는 척 외면하고 다시 끈질기게 왕복해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 골목이었다.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전화를 받을 때면 가쁜 호흡이 턱 위로 차올랐다. 좋다고 했다. 내가, 나와 나누는 이 순간이 정말 좋다고 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짤막한 콧김과 떨림, 그 아이는 진실했다.
무책임하게 상모를 돌리던 선풍기의 미동이 멎고, 교실의 라디에이터는 주책맞게 미지근한 훈풍을 불어 대기 시작했다. 사랑을 모르던 어린 연인은 제대로 이별할 줄도 몰랐다. 짧게 빛난 여름의 섬광을 뒤로하고 이번엔 그 아이가 등을 보였다. “웃으며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다신 뒤돌아보지 않았다. 혼자 남겨진 나는 한참이나 여섯 골목을 더 걸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그 아이의 뒷모습을 따라 숨죽이듯 걷던 적도 더러 있었다. 왜 나를 좋아했는지 몰랐던 것처럼 친구조차 될 수 없음의 이유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늘 소극적이던 내가 사랑받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난파되어 가라앉은 거라고, 멋대로 짐작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