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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l 16. 2022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로 돌아갈 순 없어

우리 처음 만났을 때(When We First Met)

한 여자가 사랑을 고백한다. 그와의 첫 만남을 운명이라 느꼈다며 행복에 젖어있다. 노아(애덤 드바인)는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지만 어쩐지 그녀와 키스하는 건 노아가 아닌 이선(로비 아멜)이다. 여기서 첫 반전이 시작된다. 노아는 에이버리(알렉산드라 다다리오)를 3년간 짝사랑해왔다. 자신과 단 하루 차이로 만난 이선이 에이버리를 차지하자 그의 질투심은 질투를 넘어 오기가 됐다. 시간만 돌린다면 이 모든 거지 같은 상황을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타입 슬랩의 이유다. 타임 슬랩은 90년대건, 2000년대건 여전히 흥미롭다. 포토부스를 통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모든 상황을 좌지우지하려 하지만 다 망해버렸다. 첫 번째는 에이버리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척해서 스토커가 돼버렸다. 두 번째는 에이버리와의 '속궁합'은 잘 맞지만 진실된 사랑은 모르는 날라리가 됐고, 세 번째엔 비싼 집과 차, 에이버리까지 다 가졌지만 친구의 뒤통수를 치고 회사에만 꼬리를 흔들어대는 파렴치한이 되어버렸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노아가 얻은 것이라곤 인연은 어쨌건 이어지고 뒤바뀐 나만 가짜가 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게 원활한 인생은 없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잃을 수도 있고 열 개를 잃어도 가장 중요한 하나를 얻을 수도 있다. 노아는 자신에게 없는 단 하나의 에이버리를 찾아 시간여행을 하지만 그 어떤 결론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본모습만 잃어버린 채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한다. 자신의 처지가 되어버린 이선을 보자 노아는 불편한 감정을 느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시간을 바꿔 쟁취한 거짓 상황에 죄책감이 들고, 되돌려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선과 에이버리의 큐피드가 되어 다리를 놔준 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노아는 몇 번의 시간여행에서도 자신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주며 곁에 있었던 캐리(셸리 헤닉)에게 끌린다. 캐리가 말한 "보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었을까. 노아는 이번엔 캐리가 자신의 운명이라 고집부리지만 왠지 쉽지가 않다. 그제야 노아는 깨달았다. 사랑은 기적 같은 한 순간을 바라는 게 아니라 소소한 추억들을 함께 켜켜이 공유하는 것이란 걸.


이 영화를 보고 나니 KBS 드라마스페셜 <당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가 떠올랐다. 남자 주인공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여자가 사실은 내가 사랑하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 만남 빼곤 소울메이트처럼 모든 대화를 함께 나누던 '이'여자 조차도 내가 사랑한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직접 만나 추억을 쌓은 '그' 여자였는지, 대화며 가치관이며 직접 만난 것 빼고 모든 게 다 완벽히 들어맞은 이상형의 '이'여자였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서스펜스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결론은 '그 '여자가 남자가 사랑하던 여자가 맞았다. 자신의 지식이나 배경에 자신이 없었던 여자가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친구에게 남자와의 대화를 부탁했던 거였다. 그 덕에 세 사람은 모두 각자의 감정에 거대한 혼란을 느끼게 됐지만 남자는 곧이어 확신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여자라고. 자신을 보던 눈빛과 행동에 사랑임을 여지없이 느꼈다고. 그것이 관계 속 '보이지 않는 무언가'였겠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 '놓쳐버린 관계에 대한 후회는 어리석다'라는 지극히 뻔한 교훈을 던다. 그럼에도 나도 저런 포토부스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은 든다. 누구나 그때를 되돌려 다른 결말을 상상하곤 하니까 :)


휴일 저녁 침대에 누워 별생각 없이 '남들 달달~하게 잘된 얘기 보고 싶다'라고 느낄 때 딱 좋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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