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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Dec 17. 2021

그런 것이 있던가

[한편보고서 12] No Strings Attached

친구와 연인사이. 그쯤은 어디일까.


아담(애쉬튼 커처)과 엠마(나탈리 포트만)는 15년 전 처음 친구가 됐다. 10년 뒤 둘은 우연히 만났고, 엠마는 데이트하자던 아담을 아버지 장례식에 데려갔다. 그날은 또다시 마지막이 됐고 몇 년 뒤 재회한 두 사람. 몇 번의 사건을 겪은 후 그들은 '섹스 파트너'라는 황당한 사이가 된다.

ⓒ넷플릭스

언제든 보고싶을 때 보고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진다. 아침을 같이 먹어서도, 싸우거나 질투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그들의 규칙이다.

ⓒ넷플릭스

엠마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아담은 당연히 규칙을 어기게 되고 그럴수록 엠마는 아담을 멀리한다. 사실 이게 그들 이야기의 전부다. 병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엠마는 낯간지럽고 심장이 뜨거워지는 상황 자체를 회피한다. 스스로를 포함한 그 누구도 서로를 위로할 수 없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엠마는 거짓 감정 속에 자신을 가두고 아담을 놓칠 짓만 한다.


용기있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지당한 이별의 사유를 가진 사람들은 정작 아무렇지 않게 미친 사랑을 하는데, 멀쩡하게 다가오는 사랑에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거다. 사랑을 사랑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토를 달고, 변명하고, 움츠리고 만다. 그런 엠마가 아담과 섹스 파트를 했다는 사실도 기가 막히다. 감정을 배제한 섹스는 무미건조한 몸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걸까. 엠마를 제외한 모두가 솔직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좋으면 만나고, 사랑하고, 미래를 꿈꿨다. (심지어 아담의 아버지는 아들의 전 여자친구를 사귀기까지 했다)


엠마는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잘라낼 수 있다며 사랑을 기만했다. 그 결과는 다른 여자와 집으로 들어가는 아담을 덤불 숲에 숨어 지켜보면서 좌절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 젖은 미니 도넛을 먹는 것 뿐이었다.

ⓒ넷플릭스

그들의 결말은 어땠을까? 당연히 타이밍 딱 좋게 만나서 사랑을 확인했다. 엠마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했고, 아담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냈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은 서로가 서로를, 그가 그녀를, 내가 너를 거듭 놓치고 만다. 또 다른 아담과 엠마가 되어 한심한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그것이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그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인지 알 순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깨닫지 못한다.

모든 상황들을 상자 속에 넣고 밀어내고 있는 것.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에 알맞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아서. 그 미완에서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나에게도 쏟지 못하는 사랑을 누가 나에게 줄까 하는 부족한 마음도 있었겠지. A에서 B도 가지 않았는데 벌써 Z까지 혼자 뜀박질을 하고 있던 것 말이다.
이게 이건지 저게 저건지 알 수 없는 게 남녀의 마음. 잘 가다가 작은 방지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서기도 하고, 답답하게 막히는 듯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기도 한다.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취하고자 하는 감정만을 편식하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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