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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Nov 16. 2021

가지 않은 길

[한편보고서 11] 365 : 운명을 거스르는 1년

빨간색은 딸기맛, 보라색은 포도맛, 노란색은 레몬맛, 주황색은 오렌지맛이지만 연두색은 사과맛일 수도 있고 멜론맛일 수도 있다(어쩌면 라임맛). 사과맛은 좋아하지만 멜론맛은 싫어했던 나는 무심코 입에 넣은 연두색 사탕이 원하던 맛이 아니었을 때 약간 실망하면서, '다음엔 제대로 확인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멜론맛은 계속해서 내게로 왔다. 이전의 다짐은 어느새 잊고 '대충' 사과맛이기만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과일 그림이 떡하니 새겨진 사탕도 그럴진대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은 오죽할까.
"1년 전 과거에서 뵙겠습니다." 완벽한 인생을 꿈꾸며 1년 전으로 돌아간 순간, 더 알 수 없는 운명에 갇혀 버린 자들의 미스터리 생존 게임. / ⓒMBC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범죄자 손에 사랑하는 동료 형사를 잃은 지형주(이준혁 분), 한순간의 뺑소니 사고로 걸음도, 웃음도 잃어버린 신가현(남지현 분), 저마다의 이유로 지안원에 모인 배정태(양동근 분), 서연수(이시아 분), 황노섭(윤주상 분), 고재영(안승균 분), 최경만(임하룡 분), 차증석(정민성 분), 박영길(전석호 분), 그리고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이신(김지수 분). 모두 지금이 아닌 1년 전을 택한 사람들이다. 기다랗고 엄숙한 리무진에 오른 10인의 리세터들은 알 수 없는 가로수길과 미지의 황무지를 달려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탈피할 '리셋'에 나선다.

리셋은 생각처럼 환상적지 않았다. 오히려 저주에 가까웠다. '다음엔 누가 죽을까' '이번엔 내 차례 아닐까' 불안함의 연속이었고, 과거의 악몽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반복되기 일쑤였다. 잘못 살아온 것 같은 현재의 자신에게 주는 면죄부로 과거행을 택한 이들은 분명 존재했 1년여의 생조차 잃어버고 말았다.

ⓒMBC

느낌표

알지 못하고 함께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유기적인 존재라는 것. 간절하게 1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정작 1년 전 그날 그 시간 자신이 무얼 했는지는 모른다는 것. 돌리고 싶은 건 1년을 무사히 살아낸 지금의 내가 왠지 놓쳐버린 것 같은 또 하나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 그것이 좋은 인생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것. 지금을 기억한 채 과거로 간다는  전혀 유리한 일이 아니라는 것. 내가 보고 듣고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완벽한 인생은 없다는 것. 우리도 결국 각자의 인생을 실험하며 산다는 것.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간순간의 내 결정이 흩어지지 않고 운명의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것.


어느 쪽을 택하든 길이었더라구요.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12화, 지형주



365 : 운명을 거스르는 1년 / 2020년 3월 MBC 방영

원작 : 이누이 구루미 장편소설 <리피트>

장르 :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

OTT : 왓챠,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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