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외로움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박상영 작가-이언희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리뷰

by 한남동

어느 가을 영등포 로터리를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가는 길에 어떤 인파와 마주했다. 이미 상당한 인원이 모여 있는데도, ◯◯교회 이름을 써 붙인 45인승 버스가 끝없이 사람을 실어 날랐다. 여의도공원에 가설한 전광판에는 “차별금지법 온 국민이 반대합니다”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었다. ‘3n년째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난 딱히 반대하지 않는데?’라고 냉소하며 그들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렇게 마포와 충정로를 지나 서울 도심으로 들어서자, 여의도 실황을 중계하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인파를 마주쳤다. 도로의 절반을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 정체가 극에 달했다. ‘난 딱히 반대하지 않는다’며 더 강하게 냉소하며 느릿느릿 지나쳤다.

박상영 작가가 써내려 간 영(映)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니, 나의 냉소는 어쩌면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끄트머리에 있을지언정 ‘정상성’ 범주에 들어와 있는 내가 “차별금지법 온 국민이 반대합니다”라는 카피 앞에 선다 한 들 아무런 타격감도 없다. 법이 미비하다고 해서 받고 있는 불이익도 없다. 반면 영을 비롯한 ‘티아라’ 멤버들은 어땠을까.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웃어넘겼을 수도 있지만, 국민임을 부정당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교육받고 근로하여 납세하고, 국방의 의무까지 수행한다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성적 지향 때문에 국민이 아니라고 말해지거나 이등국민으로 격하된다.

그러기에 이 도시에서 영(映)은 외롭다. 도시에 어둠이 찾아오면 술을 찾아 나서고, 하룻밤 인연일지언정 살을 부벼본다. 연인이 있을 때에도 영(映)의 외로움은 해소되기 어렵다. 나란히 걷지 못하고 몇 발짝 떨어져 있는 커플에게는 첫 월급날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파스타마저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사과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소개하기도 어려운 관계는 서로의 인생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만남이 어느 날 문득 찾아왔듯이, 불현듯 헤어지고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또 다른 만남으로 잊히기도 하겠지만, 영(映)은 여전히 외로움에 몸부림칠 것 같다.

그럼에도 영(映)은 단단한 마음으로 이 도시를 살아낸다. 혐오발언으로 타인에게 부정당할 때조차 “푸하하” 웃어버린다. 분노하고 싸울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여겨 웃고 마는 게 아니다. 구태여 화를 내지 않아도, 영(映)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긍정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다. ‘카일리’마저 독창적이고 예쁜 별명을 붙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스스로를 화려하게 드러내며 멀리 날아가는 풍등은 아닐지라도, 가만히 잠겨 있는 채로 존재를 긍정한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영(映)은 결코 추락하거나 침몰하지 않는다.

20대라는 찰나를 함께한 영(映)의 친구 재희와도 다른 삶이다. 둘은 닮은 점이 많았다. 정조는 어디 박물관에 맡겨둔 채 살았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그리고 태어난 대로 살았다. “우리 왜 이렇게 태어났냐”는 물음에 “모르지 나도”라고 답하면서도, 서로를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았다. 다만 타인의 부정 앞에서 “푸하하” 웃어버리는 영(映)과 달리, 재희는 눈앞의 낡은 자궁 모형이라도 집어 들고 발끈하는 캐릭터였다. 그런 재희가 통쾌하기도 했지만, 언제든 ‘정상성’의 범주로 편입될 수 있기에 마음 놓고 화를 낼 수 있는 재희의 특권이라는 데 생각이 이르자 씁쓸했다. 영(映)처럼 돌아서서 삭히며 스스로를 단단하게 하지 않아도, 재희는 얼마든지 자신을 드러내며 부딪치고 깨질 수 있었다.

‘정상성’의 제도적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을 선택한 재희에게 소설에서 영(映)이 부른 축가는 핑클의 <영원한 사랑>이었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끝내겠다는 명명의 FIN.K.L (Fine Killing Liberty)이 “네 사랑을 감추며 돌아서지 마”라고 노래하는 곡이다. 영(映)은 재희의 영원한 사랑을 축복하면서도, 재희는 그대로 재희이기를 그리고 “누구보다 너를 믿어줄 나”를 기억해 달라고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재희를 향한 축가이자, 재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노래로 들린다. 재희와 달리 영(映)은 어쩌면 영영 ‘정상’의 세계로 분류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

한편 영화에서 영(映)은 재희의 결혼식에서 축무와 함께 miss A의 <Bad Girl Good Girl>을 노래했다.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타인의 위선을 꼬집는 게, 20대를 함께한 영(映)과 재희에게 찰떡이었다. 노래 가사는 위선자에 대한 고발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내가 나일 수 있게 자유롭게 두고 멀리서 바라”봐 달라고도 말한다. 영(映)과 같은 소수자에 대해 ‘일반’이 가져야 할 태도 아닐까.

‘이반’의 권리 쟁취를 위해 ‘일반’이 자신의 미감에도 맞지 않는 일에 팔 걷고 나서 달라고 압박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저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지내면 그뿐이다. 차별을 옹호하고, 거리낌 없이 혐오를 표현하는 게 오히려 선을 넘는 행위다. 선을 넘는 부정 앞에서, 영(映)은 ‘비정상’ 범주에 묶인 채 이 도시에서 오늘도 외롭다.


(2024. 10. 27. 여의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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