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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Nov 14. 2018

‘무기화된 거짓말’ 확신하는 사람들

책 속의 사람들

무기화된 거짓말

수년 전, 회사의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강연에서 한 강사는 자신은 입사 이후, 현재까지 약 만 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다고 말했다. 기록과 글쓰기가 직장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매일 쓰는 글쓰기는 자신의 신념이라고도 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글쓰기가 성공의 열쇠인 듯한 신념도 엿보였다. 강연을 듣던 중, 갑자기 “만 페이지를 쓸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우선 하루에 한 페이지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쓴다면 일 년에 365페이지를 쓸 수 있다. 간단한 산수이다. 그렇게 10년을 쓰면 3,650페이지, 삼십 년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 페이지씩 쓰면 대략 만 페이지를 쓸 수 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는 25년에 걸쳐 무려 원고지 4만 여장에 해당하는 대하소설이다. 원고지로 4만여 장을 썼다고 하니 일반 노트로는 대략 만여 장을 쓴 셈이다.      


작가 박경리가 ‘토지’를 쓰는 과정은 거의 살인적인 작업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소설과 일기는 다르다. 그렇지만 전문 작가가 25년간에 걸쳐 쓴 대하소설의 분량만큼을 50대 초반의 강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썼다고 하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러한 정도의 거짓말 또는 과장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에 하나의 유모로서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무기화된 거짓말‘은 남을 공격하거나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거짓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유모로서 넘길 수 있는 거짓말이 아닌 무기가 될 수 있는 거짓말에 대해서 말이다. 저자는 가장 가벼운 숫자의 왜곡, 즉 한 최우수 텔레마케터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우리 최우수 텔레마케터는 하루에 1천 건의 판매를 성사시켰다'라는 주장에 대한 신빙성 문제다. 한 군데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데 걸리는 시간과 전화벨이 울리는 시간, 전화가 연결돼 구매를 권유하고 설득하는 시간, 구매를 위한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알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계산해보면, 모든 전화통화가 구매 성사로 이어진다고 가정해도 물리적으로 한 시간에 가능한 판매는 60건, 8시간 동안 가능한 판매는 480건 정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말을 유포한 배경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최우수 텔레마케터’라는 작위는 직원들을 독려하거나 자극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을 것이다.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현실적인 것처럼 설정해놓고 직원들을 몰아붙인 것이다, 저자는 부동산 가격의 예측, 상품 매출액 통계, 설문 조사와 야구 선수의 타율, 암의 발병 원인 분석 등, 숫자 속에 숨어 있는 거짓말들과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숫자로 나타내는 개연성과 여러 가지 목적으로 활용되는 그래프, 보고서의 작법, 수치 자료의 수집과 분석에 있어서 어떤 왜곡이 있었는지 촘촘한 사례를 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인용’으로 대표되는 말의 신뢰성에 대해 비판하며 소위 근거와 증거의 허위성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사 곳곳에 숨어 있는 거짓과 그것을 식별할 수 있는 인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거짓말이 무기화되어 있다는 것과 무기라는 것은 파괴와 살상을 목적으로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거짓말이 사기꾼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살상 능력이 뛰어난 무기일수록 전문가의 손에 의해서 탄생하듯이 정말로 위험한 거짓말은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된다.      

대니얼 J. 레비틴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며 내세운 명분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불법으로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테러를 지원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위협하며 이라크 국민을 억압하기 때문에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라크는 1991년 4월 걸프전(1차 이라크 전쟁)이 종결된 이후 국제사회에서 불법적인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 개발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을 받아왔다.      


이웃 쿠웨이트를 침공해 아랍세계로부터도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던 이라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여론에 이기지 못하고 급기야 유엔 무기사찰단(UNSCOM)을 수용해 1998년까지 250여 차례의 현장 조사를 받았다. 이라크는 이 기간에 장거리 미사일 48기, 화학무기 원료 690톤 등을 폐기했으나, 1998년 12월 이라크가 사담 후세인 대통령궁 등 정치적 ·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현장 조사하겠다는 유엔 조사단의 요구를 거절하자 유엔 무기사찰단은 이라크에서 철수했다.      


미국과 영국은 이를 빌미로 이라크가 유엔의 결의를 무시했다며 그해 12월 16일부터 4일간 바그다드와 대량살상 무기 개발 비축지로 의심을 받던 시설물에 집중 폭격을 가했다. 그 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유엔의 무기사찰 체제를 재건하기 위해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를 발족하고 무기사찰을 재시도했으나 이라크는 자국에 대한 금수 조치가 해제되지 않는 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실제로 사찰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세 가지 명분은 대량살상 무기의 즉각적인 폐지, 테러 지원 중단, 국민 억압 중지 등 5개 항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결과 그 어느 것도 사실로 드러나거나, 목표한 바를 이룬 바가 없었다.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더욱 요원했고, 중동의 정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라크 전쟁은 과히 20세기 최대의 가짜 뉴스이자 최악의 ‘무기화된 거짓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시 정부는 끊임없이 전문가들의 분석을 거론했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은 반드시 그 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첫째 방식에서 그들은 갖가지 사실을 검토, 종합해 증거에 기초한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 그들은 무엇이 증거인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결론 도출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를 당신에게 알려준다. 이는 과학을 올바르게 연구하는 방법이자, 재판을 제대로 진행하는 방식이며, 최선의 사업상 판단, 의료 진단, 군사 전략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두 번째 방식은 그저 자기 의견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이야기에 빠져 자기만의 소견, 가정, 검증되지 않은 생각을 엉성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이런 연상적 사고에서 검증 가능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런 식의 이야기를 증거에 기초한 논리적인 주장과 혼동하면 안 된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증거에 근거한 것이고 또 하나는 소견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견도 증거도 아닌 정치적 의도에 따른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 강 사업에 부역했던 전문가들 같은 경우이다.      


그럼 전문 매체의 경우는 어떠할까? 매체는 다면적 검토가 가능한 전문가 시스템이다. 이들은 한 과학자가 어떤 주장을 내놓으면 그 연구 결과에 이해관계가 전혀 얽혀 있지 않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연락해서 독립적인 의견을 들어본다. 그러고 나서 종합적인 평가와 분석을 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매체 역시도 오보를 내기 일쑤다. 놈 촘스키를 비롯한 학자들은 미국의 ‘타임’지가 일종의 선전 매체로서 미국 정부에 대한 소식을 적당한 비판 없이 보도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반과학적 경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오늘날 사회는 너무나 복잡한 의제들로 쌓여있다. 탈원전이 그렇고, 국가적 태양광 사업이 그렇다. 미세 먼지의 원인 및 대책에 대한 것도, 북핵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생각도 모두 전문적 지식 없이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개발한 라이트 형제는 항공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고등학교 중퇴자들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정규 교육을 받은 전문가 중 상당수는 중 항공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었다. 아마추어가 전문가들을 이긴 사례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사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특수한 경우로서, 보편적 판단의 잣대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CSIS의 북한 내 미사일 기지에 대한 보도가 미국과 한국의 정계를 흔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북한 지역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 현재 북한이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CSIS는 전문가다. 그들은 증거를 내놓았다. 그렇다고 뉴스를 막 접한  시점에서 이것이 100%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반면 이것이 거짓이라는 증거도 없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거짓과 진실을 판단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대개의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줄리언 바지니는 그의 책 ‘진실 사회’에서 ”왜 사람들은 음모론으로 포장된 거짓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거짓 속에는 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며, 소위 음모론이라는 것들이 가끔 사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든 대표적인 사례가 매카시즘이다. 매카시즘의 ‘적색 공포‘는 무고한 많은 이들을 공산주의 등의 적색 활동 분자로 거짓 고발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소련 스파이와 정보원들이 실제로 루스벨트와 트루먼 행정부에서 암약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세상에는 완전한 거짓도, 완전한 진실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 사건이다. 더욱이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제들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행해온 거짓말들 때문이다.      


세상 모든 컴퓨터에 위기가 닥쳐올 거라고 주장했던 ’ 밀레니엄 버그‘, ’ 세계 금융 시장의 건전성 평가‘, ’ 유로화 도입의 장점과 쟁점’ 등 줄리언 바지니가 제시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4대 강 사업’과 ‘자원외교’라는 거대한 거짓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가 우리를 속여왔다.     


이성을 통해서 우리가 진실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줄리언 바지니는 이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그는 ”순수 이성을 통해 절대 진리에 도달하는 일은 단연코 불가능하다.”라는 하이젠베르크의 말을 인용하여 이성은 단지 설명할 뿐이고 그것마저도 완전하지 못하다고 단언한다.     


"이성은 정념(passion)의 노예이며, 노예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 흄은 위대한 도덕 철학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역시도 자기 시대의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편견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흑인들 그리고 다른 모든 인간종 일반이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라는 그의 말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경험이 진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담배와 폐암의 관계에서는 확실히 그러하다. 폐암의 예방에 있어서 금연이 효과적이라는 경험적 사실은 통계가 의학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추위가 감기의 원인이라던가 천둥이 번개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경험이 곧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준다. 이에 대해 줄리언 바지니는 ‘진실 사회(A short history of truth)’에서 다음과 같이 근사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검증을 받아야 할 상황에 늘 열려 있고, 그렇게 검증을 통과한 진실은 더 믿을 만한 것이 된다. 경험적 진실의 강점은 그것이 꼼꼼한 검토와 교정과 반박에 부단히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경험이 진실을 향한 매개체라는 경험주의 원칙을 ’ 보여야 믿는다 ‘는 설명의 오류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을 둘러싼 사실관계에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해 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2018년 11월 현재 매스컴을 통해 밝혀진 컬링 선수단 ‘팀 킴’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선수들은 감독 단이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감독 단은 선수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누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인가? 그것을 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밝혀보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합리적 조사에 의해 거짓과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짓 속에는 진실이, 진실 속에는 거짓이 어느 정도 섞여 있을 것이다.     


줄리언 바지니는 ‘탈진실’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을 둘러싼 우리의 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겸손, 회의, 다른 관점에 대한 개방성, 집단적 탐구 정신, 권력에 기꺼이 맞서려는 자세, 더 나은 진실을 구축하려는 열망, 사실에 근거한 도덕을 확립하겠다는 의지 등을 ‘인식의 미덕’이라고 했다. 반면 과도한 확신, 냉소주의, 폐쇄적 태도, 끝 모를 개인주의, 권력을 향한 굴종, 더 나은 진실을 구축할 가능성에 대한 불신, 머리와 분리된 직감이 추동하는 도덕 등은 ‘인식의 악덕’이라고 주장했다. 탈진실의 시대에 우리가 ‘인식의 미덕’을 지키기 위해 그가 제시한 다음의 몇 가지 제안은 참고가 될 만하다.


1. 종교적 진실은 세속적 진실과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별개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2. 생각은 ‘혼자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하는 것이다.

3. 필요한 것은 ‘회의적’ 태도이지 냉소가 아니다.

4. 이성은 확신이 아니라 ‘겸손’을 요구한다.

5. 똑똑해지려면 우선적으로 자신의 ‘어리석음’부터 인식해야 한다.

6. 진실은 발견뿐만 아니라 ‘창조’의 대상이기도 하다.

7. 대안적 견해는 대안적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풍성하게’ 해 줄 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8. 권력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진실이 ‘권력을 향해’ 말해야 한다,

9. 더 나은 도덕성에는 더 나은 ‘지식’이 필요하다.

10. 진실의 인식은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인식의 미덕’에 대한 줄리언 바지니의 이 주장에도 ‘악덕’이 보인다. 예를 들어 종교는 세속적 진실과 경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세속과 분리해서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경합하지 않는 것은 미덕이지만 분리하는 것은 악덕이다.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성보다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확실한 것은 거짓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해 확정하는 순간 거짓은 탄생한다. 따라서 탈진실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확정하지 않고 열려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고, 자신과 진리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갖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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