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사람들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모멸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단적인 표현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끼면서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와 ”정부의 지원이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는 말로 분해될 수 있다.
앞엣것이 경제학의 효용성을 대표한다면, 뒤엣것은 경제학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힘든 시대의 좋은 경제학’이란 효용성과 좋은 생각이 잘 버무려진 경제학을 말한다. 빈곤한 사람들의 존엄이 유지될 수 있는 체제, 돈과 존엄이 모두 무시되지 않는 정책, 이것이 저자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다.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폴로는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이들은 우리가 흔히 중산층이라 일컫는 보편적 가정보다는 경제적 하층, 즉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학에 집중해 왔다.
저자들은 가난이란 경제적 문제이지만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경제학이란 결국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 시대를 장악한 사상은 좋은 사상일 수도, 아니면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트럼프와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로 대표되는 나쁜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나쁜 사상의 영향을 막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신중하게 살피고,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고,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복잡성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 매우 중요하기에 이를 학자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변하는데, 따지고 보면 경제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법을 법조인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되며, 과학을 과학자들에게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전문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저자들은 직접 화법으로 언급하는데, 그들이 밝힌 이유는 경제적 통찰을 인간의 보편적이고 충만한 삶으로 연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진보와 보수라는 고정된 관점을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경제 사안을 다루지만,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더 큰 개념이 언제나 우리 작업의 지침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경제 학자들은 인간의 후생을 소득이나 물질적인 소비로만 협소하게 정의하곤 하지만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들이 필요하다.”
책의 들목에서 저자들은 충만한 삶보다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대한 꼼꼼한 비판을 이어간다. 그러나 장을 거듭할수록 저자들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보수적 정책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대다수의 충만함 삶’이다. 저자들은 총 8장에 걸쳐 충만한 삶을 위한 경제학 이론과 풍성한 연구 사례들을 차곡차곡 올려놓는다.
충만한 삶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주제는 이주자들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가 이주자들로 인해 망가진다는 트럼프식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며, 이주민 현상이 결코 경제적인 문제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이주민의 유입으로 인해 현지인이 경제적인 비용과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 역시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호무역 정책이 이 책의 두 번째 주제다. 중국과의 자유무역이 미국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트럼프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런 주장에는 미국이 무역으로 얻은 혜택이 너무나 간과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역은 특정 분야의 타격을 피할 수 없지만 이러한 타격은 더 큰 이익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신들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개념을 동원한다. 아이디어가 우세한 국가가 노동력이 우세한 국가와 교역을 한다고 해서 전자의 국가가 손해 보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종합하면 국가 간에 재화, 사람, 아이디어, 문화를 교환하면 세계는 매우 부유해질 수 있다. 실제로 딱 맞는 곳에서 딱 맞는 시점에 딱 맞는 기술과 딱 맞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던 운 좋은 사람들은 부유해졌고, 때로는 아주 많이 부유해졌으며, 자신의 역량을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발휘할 수 있었다.”
이 말은 무역 관세를 높여 국제 교역의 길에 장벽을 설치하는 대신, 무역 조정 지원이나, 고용 확대 등을 통해 교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즉 무역으로 잃게 되는 손실을 무역으로 만회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말한다.
“핵심은 변화해야만 하는 것, 이동해야만 하는 것, 좋은 삶과 좋은 일자리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 일으키는 고통에 눈감지 말고 그것을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세 번째 주제다. ‘선호’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자들에 따르면 제대로 된 경제 학자들은 선호와 믿음을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선호는 케이크를 좋아하느냐, 과자를 좋아하느냐, 해변을 좋아하느냐 산을 좋아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선호는 각각의 장단점을 모르는 채로 휩쓸려서 내리는 판단이 아니라, 알아야 할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이다. 누군가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지만 잘못된 ‘선호’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주장은 오늘날 한국 사회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혐오의 문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정치 사회적 문제를 선호의 잣대가 아닌 믿음의 문제로 볼 수 있다면 오늘날 좌파와 우파로 갈라진 한국사회의 극단성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일종의 종교적 믿음과 같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재앙’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살고 있다. 헝가리에서 인도까지, 필리핀에서 미국까지, 영국에서 브라질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이탈리아까지, 어디랄 것도 없이 모든 곳에서 좌·우파 사이에 오가는 담론은 누가 더 큰 소리로 욕을 하는가를 겨루는 시합이 되었고, 그 바람에 타협이나 철회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거친 언사만 나무하게 되었다.”
저자들은 충고한다. 편견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편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정작 중요한 것은 좀 더 가치 있는 공공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가치 있는 공공 담론은 무엇일까? 저자들이 제안한 것은 경제 성장과 불평등, 그리고 기후변화 등에 대한 담론이다.
이 제안을 한국 사회에 가져와 정치적 번역을 시도한다면, 부동산 정책, 청년 실업, 양극화의 해소와 친환경 등의 주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들은 인류나 한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성장할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진심으로 관심을 두는 것은 복지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 성장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라일수록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생각해 보면 중국의 시진핑이나 미국의 트럼프 같은 사람들, 그리고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이 목을 거는 것이 바로 경제 성장률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아이디어는 명확하다.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지표가 아니라 자본 분배의 불균형이다. 따라서 성장이 절실하다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주제는 환경에 관한 것인데, 이 주제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다소 역설적이지만, 환경의 문제에 있어서 철저히 신자유주의 논리를 따르라고 권고한다.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친환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공짜 점심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은 기술을 통해 탄소배출을 저감 하는 것으로 공짜 점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사람들의 소비가 줄어야 한다. 단지 더 청정한 자동차를 타는 것만이 아니라, 더 작은 자동차를 타거나 자동차 없이 사는 삶으로 만족해야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전기 자동차와 수소 자동차, 그리고 여러 가지 친환경 발전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저자들의 이런 주장은 현재의 친환경 정책과 기술에 대한 반성의 각성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보면 저자들의 신자유주의적(?) 환경 정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환경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저자들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변화와 세계화에 의한 불평등의 심화를 지적한다. 경제학적으로 이는 멈출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연유로 인해 성장 정책에 대해 더욱더 세심히 돌아보고, 극심한 불평등의 시대에 사람들이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들은 시장이 늘 공정하고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런 연유로 좋은 삶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비정부 기구는 성장의 그늘을 제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자원은 부족하지 않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불화와 불신과 분열의 벽을 뛰어넘게 해 줄 아이디어다”
이 책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주제는 “돈과 존엄”이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저자들이 제출한 답안지에는 바로 ‘기본 소득 제도’가 쓰여있다. 책의 서두에서 선제적으로 던져 놓은 과제, 즉 “돈과 존엄”,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 그것이 바로 기본 소득 제도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자산과 노동, 그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 이를 두고 앞으로 한국 사회는 많은 토론을 이어갈 것이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에서 출마한 12명 중 거의 2/3에 해당하는 후보자들이 기본 소득 제도를 공약으로 제시한 사실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기본 소득과 신 복지 정책이 대결 구도를 이어가고 있고,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제1 보수 야당인 ‘국민의 힘’ 조차도 강령 1조 1항에 다음과 같은 기본 소득 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 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
단지, ‘국민의 힘’ 당의 강령 속에 명시한 기본 소득의 개념 속에는 미래 산업에 대비하는 정책 외 ‘존엄’이라는 개념이 생략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효용적 대안을 넘어, 이념적 대안으로서의 기본 소득 제도가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실현될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