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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Jul 19. 2021

'방랑자들' 무착륙 여행자들

책 속의 사람들

방랑자들

언젠가! 언젠가 서해안 간척지를 가로지르는 방파제를 달리다가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가창오리 떼를 바라본 적이 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은 여름에 북쪽으로 날아가 바이칼호에 머물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물론 가창오리의 생명이 유지될 때의 이야기다.      


하늘을 나는 가창오리를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반도 서해안으로부터 저 북쪽 바이칼호까지, 2천 킬로가 넘는 멀고 먼 길을 오고 가는 무심한 행군 속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가창오리의 뇌 구조가 인간과는 다르기에 그것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나 역시도 여행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철새들은 생명이 유지되는 한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존재로 살아간다. 국경과 바다와 계절을 넘나들 때 자유와 고난이 교차한다. 철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운명도 자유와 고난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한 방랑의 공간이다. 올가 토르카축이 쓴 ‘방랑자’는 그 교차점에 서 있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추억이 춤을 추었다. 독일의 한 호텔 아침 뷔페에서는 모닝 바게트 냄새가 진동했고, 지중해 도시의 바싹 마른 햇빛에 눈이 부시기도 했다. 몬순 기후에 흠뻑 젖은 인도에서는 축축한 습기가 올라왔고, 일본의 좁디좁은 호텔 방은 생각만 해도 불편했다. 한밤중, 눈 내리는 뒷골목을 순찰하던 덩치 큰 중국 공안의 뒷모습에서 개화기 상하이로 시간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출장지 호텔에서 예외 없이 방송되던 세계의 날씨 프로그램. 어느 나라를 가던 저녁 10시가 되면 호텔 TV에서는 세계의 날씨가 방송되었는데, 도시별 기온을 나타내는 자막이 올라갈 때, 조니 미쉘의 ‘Both sides now’가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왔었다.     


“지금, 난 그렇게 구름의 양면성을 보았어요. 하늘 위에서 그리고 하늘 아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구름은 환상일 뿐 구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요. (I’ve looked at clouds from both sides, now. From up and down and still somehow. It’s cloud illusions I recall I really don’t know clouds at all)”      


방랑이란 어쩌면 세상의 양면성을 깨닫기 위해 떠난 길고 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세월 험난한 세월을 지냈을 법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 또는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풋풋한 신랑 신부를 보았을 때,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의 어린 시절 찍어놓은 비디오 영상을 보았을 때, 세상이라는 양면성이 우리를 울컥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방랑이다. 토르카축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웨이트리스였고, 고급 호텔의 청소부였고 유모였다. 책을 팔기도 했고 표를 팔기도 했다. 작은 극장에서 한 시즌 동안 의상팀에 고용된 적도 있는데, 그때 나는 무대 뒤에서 무거운 의상과 새턴으로 만든 망토, 그리고 가발들에 둘러싸여 추운 겨울을 났다. 학업을 마치고 난 뒤에는 교사로 일하기도 했고 재활 상담사로 근무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도서관에서 일했다. 약간의 돈이 모이면 곧바로 여행길에 올랐다.”     


저자 토르카축은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자신이 만난 방랑자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놓았다. 그리고 그 방랑자들을 때로는 여행자로, 어떤 경우는 순례자로 불렀다. 이 책에서 여행자와 방랑자, 그리고 순례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저자는 모든 여행자를 국적과 출발지와 도착지, 이 세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고 했는데, 저자의 이 구분법에 따르면, 여행자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방랑자는 국적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순례자는 출발지와 목적지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 특별히 흥미롭던 부분은 바로 여행 심리학에 관한 내용이다. 작가는 공항 한편에서 제한된 시간에 이루어진 여행 심리학에 관한 강의를 세 편의 수필에 담아 펼쳐놓았는데, 이 수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인간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향하는 움직임 속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상태의 인간을 놓고 설득력이 부족한 설명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관계성을 배제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 여행 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욕망입니다. 바로 이 욕망이 인간에게 이동성과 방향성을 부여하고 어딘가로 향하려는 성향을 일깨웁니다. 욕망 그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그저 방향만을 가리킬 뿐, 목적지를 드러내진 않으니까요. 목적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고 불확실한 것입니다.”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무착륙 여행 상품을 보며 “여행 심리학의 핵심 개념이 욕망”이란 말이 새삼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국가별로 장벽을 치고 출입을 통제할 때, 공항은 오고 가기 위한 장소에서 가고 오는 것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장소로 변했지만, 여행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여러 가지 현상으로 표출되었다.      


공항이라는 장소에 대한 로망의 실체가 공식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한 지점이다. 확실히 목적지는 신기루 같은 것일 수 있다. 결국, 여행은 움직이는 것이고, 인간은 이동하는 존재다.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 대한 수필을 통해 한 말은 이러한 인간 욕망과 정체성의 근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통 좋은 여행이라고 하면, 그 핵심에는 시간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다는 점이 자리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내 비행기가 늦어지기를 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야 어쩔 수 없는 척하면 조금이라도 더 공황에서 뭉그적거릴 수 있으니까. (...)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터미널을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 공항 터미널은 현대 문학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다소 과장된 듯한 알랭 드 보통의 공항 찬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공항 터미널에서 꽃핀 문학적 상상력이 바로 토르카축이 포착한 여행 심리학의 견고한 토대 일지 모른다. 공항에서, 그리고 때로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여행자의 삼대 지표, 즉 국적과 출발지와 목적지를 정의하게 되는데, 목적지와 출발지가 같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철새들과 많이 닮아있다.     


공항에서 느끼는 냄새와 분위기, 그 들뜬 시스템과 지루하지 않은 기다림, 비행기 좁은 좌석에서 느끼는 자유로운 구속감, 좁은 탁자 위에 배달되는 음식들, 불편한 동작으로 그것을 차곡차곡 먹고 버리는 행동들, 어딘가 움직이는 공간 속에 머문다는 즐거움이 있다. 그 실체는 인간의 본능, 즉 욕망으로만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별자리와 같다. 아무 연관성도 없는 별들을 묶어 그림을 그려내고 이야기를 담고 이야기에 부합하는 작명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운명과 엮는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을 건설하는 힘 역시도 여행이나 방랑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서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소위 ‘몸에 대한 여행’이다. 작가 올가 토카르축은 “내 순례의 목적은 언제나 다른 순례자다”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그가 떠난 첫 번째 순례의 출발과 목적지가 바로 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로서의 몸이다.      


인생이 방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의 방랑은 우리의 몸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이 된다. 내 몸은 온전히 내가 경험하는 것, 나만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여행지다. 인간은 평생을 통해 자신의 몸을 여행한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열두 살에 시작해 87세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신의 몸을 관찰한 느낌과 생각을 평생 일기로 써서 딸 리종에게 남겨주었다. 이 일기는 ‘몸의 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다니엘 페나크가 죽기 일 년 전, 그러니까 86세 되던 해, 그는 이렇게 썼다.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을 여행하게 될 것이다. 심장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호흡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점점 약해지는 뇌파를 따라 모든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어가는 인지의 지평을 방랑하며 곧 사라질 운명을 직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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