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commedia)

인생에 길을 잃었을 때

by 안인순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는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 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인생에 길을 잃었을 때


“누구나 얼굴은 여전히 삶을 향한 채 뒷걸음으로 죽음에 다가간다.”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 말을 조금 확장하자면, 우리의 얼굴이 향하는 삶 속에는 죽음 후의 삶도 포함되어 있다. 삶과 죽음은 항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은 죽음 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 단테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삶의 문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1320년 이탈리아 라벤나에서 천국 편을 완성한 단테는 1년 후. 그러니까 1321년 가을로 접어드는 9월.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병을 얻고 사망한다.


신곡이 죽음 후의 세계와 그곳에서의 여정을 내러티브의 플랫폼으로 삼아 고대의 시인과 중세의 철학자, 현실의 종교와 정치권력자를 노래에 담아낸 작품이라면, 이를 쓴 단테의 얼굴 역시도 늘 삶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사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하지만, 그런 상상은 늘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알리기에리 단테의 희극(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너무나 선명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모순되게도, 죽음 후의 세계와 여정을 그린 단테의 희극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중세의 세계를 묘사한 듯하다. 신곡(神曲)의 클리셰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영화 식스센스와 같이 단테의 신곡 역시도 삶의 문제로 돌아온다.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이라는 막이 내려지고 다시 올려진 4막은 모두 현실이 된다.


그래서 단테가 직면한 현실적 삶과 그가 상상한 죽음 후의 세계 사이에서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신곡을 읽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역사의 시작에는 이유와 목적이 우연과 필연 위에서 춤을 추는 공간이 있다. 지옥 편 제1곡에서 단테는 죽음에 들어서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단테의 신곡 속에서 삶과 죽음이 연결되는 첫 번째 고리이자 상상이 춤추는 공간이다.


“인생의 중반기에서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컴컴한 숲 속에 있었다.” (지옥 제1곡)

1300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성년(聖年) 선포일이자 봄빛 가득한 성 목요일 밤, 단테의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역사적 시점을 고려한다면, 단테가 스스로 잘못 들어선 길이라고 했던 것은 아마도 1295년 길드에 가입한 시기와 정치활동으로 인해 1303년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시기, 그 사이 어디쯤이 아니었을까? 이어서 단테는 자신이 희극을 써야 하는 이유를 전달한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서 목격한 몇 가지 일을 우선 이야기할까 한다.”


지옥과 연옥을 여행한 단테는 최초의 목적, 즉, ‘비극 속에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출발한 여정을 완성하는 극적인 순간을 마주한다. 바로 두 개의 강이다. 단테는 연옥의 마지막 여행에서 망각의 강 레테와 새로운 기억의 강 에우니에 강 앞에 서게 된다. 베아크리체의 안내에 따라 두 개의 강물을 마시고 부활한 단테는 드디어 연옥을 벗어나 별들 속으로 올라간다.


“나는 실록의 새 잎새를 단 어린나무 같은 청신한 모습이 되어 성스럽고 거룩한 물속에서 돌아와 별들을 향해 올라가려고 한다.” (연옥 33곡)


연옥을 벗어나 빛에 오른 단테는 천국의 단계를 거치면서 평소에 자신의 영혼을 흔들었던 수많은 의문을 내려놓고 베아트리체로부터 합당한 답을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三位一體) 비밀에 대한 의문을 풀어내며 천국을 여는 비밀의 열쇠가 결국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 공상의 힘도 이 높이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은 벌써 내 소망과 내 마음을 한결같이 도는 수레바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태양과 뭇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었다.” (천국 33곡)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컴컴한 숲 속에 던져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둘러싼 숲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 숲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만의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를 찾기도 한다. 또한 모든 불행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 희극의 서사를 쓰기 위해 일종의 망각과 새로운 기억의 강을 건널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드물지만, 운 좋게도 천국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행복의 열쇠가 사랑이었는지, 돈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천국(하늘나라)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


단테의 신곡 중에서 특별히 천국편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것이 단테 상상력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지옥과 연옥에 대해서는 베르길리우스를 비롯한 고대의 시인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교부 시대의 왕과 성직자, 그리고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념과 상상을 참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상세한 설계도와 구체적인 의미는 단테 스스로가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천국편 1곡에서 단테는 이렇게 말한다.


“그 빛이 넘치는 천상에 나는 있었다. 거기서 본 것을 거기서 내려온 나로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운도 재주도 없다. 스스로 소망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지력은 깊숙이 가라앉아 기억도 벌써 그 자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천국편 제1곡)


기억이 따라가지 못하니 그곳에는 상상력만이 존재한다. 단테의 상상력 속에서, 지옥은 빛이 보이지 않는 곳이고, 연옥에서는 빛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천국은 빛 자체다. 기독교 교회의 세계관에서, 선택된 백성에게 반드시 열려야 될 하늘나라에 대한 상상은 낮을 밝히는 태양과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에서 유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테는 별을 물질과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 수성천에 오른 단테는 달의 반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갖가지 짙고 엷은 색이 보이는 것은 물체의 밀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천국편 제2곡)


천국이 물질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단테의 상상은 교부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기독교의 세계관에 기인한다. 단테는 천국에 대한 물질적 기초를 플라톤 시대 이후 이어져 온 천동설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단테의 상상 속 천국은 화염천을 넘어 월광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수성천, 금성천, 태양천, 화성천에 이어 목성천과 토성천, 항성천과 원동천, 그리고 지고천으로 이어진다. 이곳에는 예수, 성모 마리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아담, 이브, 라헬, 사라, 리브가, 유딧, 룻, 베아트리체, 세례자 요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우구스티누스, 가브리엘 천사, 루치아 등이 살고 있다. 모두 단테에 의해 지고선(至高善)으로 선택된 존재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출발점이자 전부인 예수의 천국은 어떤 것인가?. 예수의 제자들은 하늘나라(천국)가 궁금했다. 심지어 하늘나라에서 자신의 위치를 놓고 논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예수는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높은 곳에 선다”라는 말로 높낮이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키며, 하늘나라에 대한 물리적 공간을 해체한다. 예수는 드물게 하늘나라를 공간의 개념으로 발언하기는 하지만, 이는 일종의 메타포다. 예수는 하늘나라를 물질적 기초를 가진 공간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 예수에게 하늘나라는 무엇인가? 예수는 하늘나라가 포도원 주인과 같다고 했다. 예수가 말한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나와 일한 자와 오후 늦은 시간에 나와 일한 자의 삯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다. 시험을 쳐서 들어온 정규직 사원과 그렇지 못한 임시직 인력을 같은 기준으로 대접한다는 이유로 인천국제공항 정규 직원들이 반발한 사건을 돌아볼 때, 포도원 주인의 인격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가. 그런데 그런 비상식적인 인격이 천국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하늘나라를 자기가 일하던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농부라 했다. 평생을 수고하여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팔아서 사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바로 천국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평생을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렇듯, 최소한 예수의 관점에서는 하늘나라는 태양이나 달, 별과 같은 빛을 따라가 발견하는 공간이 아닐뿐더러 고정된 공간도 아니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교부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기독교 전통 속에서 천국의 개념은 예수의 상상을 오역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독교 전통에 기인한 오역을 단테 역시도 피해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은 역사에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테의 정통한 일본의 학자 이마미치 도모노부 역시도 단테의 신곡 강의에서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시대와 자기 역량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시대와 역사의 한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단테에게서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가 천국의 각 층위에 등장인물들을 설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월성천에서는 피카르다 도나티, 수성천에는 유스티아누스 황제를 등장시켰듯이, 지혜, 용기, 열정, 사랑, 정의와 사색과 같은 인격으로 각각의 층위를 설명한 것이다.

예수가 천국에서 공간의 개념을 배격하고 인격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면, 단테는 인격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이런 관점에서 단테의 천국을 다시 재해석하자면 예수, 성모 마리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등등이 지고천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각자의 지고천을 구성하는 인격이다. 단테의 신곡을 죽음 후의 공간이 아닌, 삶의 문제로 읽어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다.


미소 띤 신앙으로


언젠가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저녁이 되자 포도 농사를 짓던 남성들은 동네 가운데 있는 호텔 바에 모여 포도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노래를 부리기도 했다. 즐거운 기분이 흠뻑 묻어나는 목소리, 호탕한 웃음소리, 그리고 나지막한 노랫소리. ‘여흥(餘興)’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일을 마친 뒤의 흥겨움.


‘코미디(commedia)’, 즉 희극이란 말의 어원은 ‘시골 마을(komai)’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시골 마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어감은 무언가 진중하지 못하고 촌스러우며, 수준 낮은 잡담, 무엇보다도 노동이 떠오른다. 코미디, 즉 희극은 신분이 낮은 사람, 그러나 사악하거나 흉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유통됐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불과 수십 년 한국에서는 코미디가 저질이라는 오명으로 유통된 적도 있었다.


엄중한 중세의 귀족 사회에서 단테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알리기에리 단테의 희극(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는데, 이는 일정 부분 자학적이거나 우화적인 뉘앙스가 있다. 훗날 이는 ‘commedia’에서 ‘divina commedia’로 변경되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목을 바꾼 사람은 조반니 보카치오라는 설이 유력하다. 단테가 추방된 피렌체에서 그를 복원시킨 사람이 바로 같은 피렌체 출신의 보카치오였기 때문이다.


이런 자학적 뉘앙스가 가지는 미적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기호학자이자 현대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 불리는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의 미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세 시대에 논의되었던 대부분의 미학적 문제는 고전 고대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역시 미학적 문제들이 특징적인 성격을 띠는 데 한몫했다. 성서와 교부자들에게서 나온 사상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모두가 하나의 새로운 체계를 가진 철학적 세계로 흡수되었다. 그러므로 미학적 문제들에 대한 중세의 사색은 독창적인 것이다.”


만약 중세에 독창적인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단테의 신곡이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수도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 세기에 걸쳐 축적했던 지식을 갉아먹고 있으며, 이로서 신성이 인간의 희문(戲文)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발악적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하는 ‘희극’을 세상에 내보내지 않기 위해 불태우고자 한다. 호르헤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웃음이라고 하는 것은 허약함, 부패, 우리 육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이에 윌리엄 수사가 반박한다.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시편(詩篇)과 신곡(神曲)


단테의 신곡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정치인이고, 성직자이고, 철학자이고, 신학자들이다. 당연히 고대의 시인도 있다. 단테는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볼로냐 대학에 근무한 적이 있고, 아마도 이때 습득한 방대한 지식이 신곡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역시나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변되는 스콜라 철학이다.


예로서 천국 편 10곡에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하여 알베르토 마그누스, 그라치아노, 피에트로 디오니시우스, 파올로 오로시오, 세비니오 보에시오, 이시도로, 비드, 리카르도 산 빅톨, 시지에리 그 브라방 등, 5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스콜라 범주의 학자와 성직자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스콜라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교부신학의 조화이자, 인간의 이성과 하나님의 신성 간의 결합이다. 스콜라 철학은 기독교 역사의 황금기에 세계를 지배하던 사상이자 세계관이자 정치학이었다. 기독교의 전통과는 달리, 무신론자이자 유대인이었던 에이리 프롬은 ‘너희도 신처럼 되리라’라는 신학서적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 신학의 결합을 기독교가 아닌 유대교의 전통에서 찾았다.


에이리 프롬은 고대의 유대인 철학자였던 필론이 이미 기독교 성서의 구약을 플라톤식으로 이해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보다 한 세기 앞서 유대교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마이모니데스가 처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구약 해석에 도입했으며, 결정적으로 동시대의 저명한 주석자 라시가 이미 봉건제도의 보수적 시대정신에 따라 성서를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단테가 그린 코미디의 구조를 유대교 적 성서해석에서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에이리 프롬은 ‘시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일본의 작가 모리 오가이가 단테의 코미디를 신의 노래, 즉 신곡(神曲)으로 번역했듯이 탈무드에서는 시편을 그야말로 ‘찬양의 시(세페르 테힐림, Sefer Tehillim)라 일컫는다. 에이리 프롬은 시편 전체를’ 성전의 찬미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모리 오가이가 이름한 신곡(神曲)이라는 이름과도 일맥상통한다.


시편은 유대교에서 AD 70년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가장 인기 있는 기도서가 되었는데, 단테 역시도 신곡에서 ’ 정의의 이름으로 한 복수가 복수를 당한다 ‘라는 표현으로 성전 파괴를 언급하고 있다.


에이리 프롬은 유대교의 시편 해석의 여러 유형을 나열하면서 소위 복잡한 심경을 읊은 시편의 기본 특징을 언급하는데, 이것이 단테의 신곡이 가진 코미디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처음에는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절망하거나 두려워서 시를 읊다가 대개 그 다양한 정서가 뒤섞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시가 끝날 무렵 그의 마음은 이미 희망이나 믿음이나 자신감을 지닌 상태로 바뀐다. 마치 시의 첫 부분과 끝부분의 저자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사실, 그 둘은 다르다. 하지만 그 둘은 동일인이다. 시를 짓는 동안 작가의 내면에 변화가 생긴다. 그의 정서가 이미 바뀌었다. 그는 절망적이고 불안한 상태에서 희망과 믿음을 지닌 상태로 탈바꿈했다.”


물론 단테가 시편을 참고로 하여 플롯을 구성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신곡 속에 기독교적, 특히나 시편에 얹힌 기독교적 감성이 매우 짙게 배어 나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그물과 사다리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단테의 신곡 강의에서 클래식의 의미에 대해 그 어원을 빌어 길게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클래식(classic)이란 단어는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함대를 뜻하는 클라시스(classis)에서 파생되었기에, 클래식(고전)이라는 단어는 궁극적으로 공동체에 함대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 즉,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위대한 선구자가 시대의 억압에 어떻게 대항했는지, 어떻게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보다 잘살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도모노부는 ‘책상 위에 올려진, 오래된 책’이라는 의미로서 번역된 고전(古典)을 우리에게 교훈과 등대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실제 삶의 지팡이가 될 수 있는 문화의 산물이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고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전제는 조금 성급한 측면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단테의 신곡보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중세의 미장센을 담은 해리포터로부터 더 풍성한 교훈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테보다 약 200년 후에 태어난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을 통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칙, 또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의해 다스려진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을 조금 더 비튼다면 “고전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천년 넘게 이어온 인간의 지혜가 실상은 허무한 것이고, 현실 속에서 유효한 교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인데, 이는 고전의 한계이기도 하다.


특히나 오늘날처럼 대부분의 거대 담론이 무너진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변하지 않는 고귀함,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 부정할 수 없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이 가지는 학문적 가치는 위대한 자산임이 틀림없지만, 개별적으로, 역동적으로, 현실적으로 역사를 추동하는 도움으로서의 고전은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는다고도 답하기가 쉽지 않다.


서사시를 구성하는 단어와 문자, 지식의 보존과 전수, 예술 작품으로 남아있는 화가나 조각가의 기법, 음악에 있어서 화성률의 기초와 위대한 유산들 그런 것들이 거인의 어깨가 되어 우리가 미래를 볼 수 있게 도움을 주겠지만, 결국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는 힘과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눈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몫이다.

이것은 비단 책이나 그림, 음악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회적 문제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에 정통한 강남순 교수는 “촛불의 정신은 촛불을 들고 모였던 그 사람들이나 그 광장에 있지 않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이는 촛불 정신은 결코 영구불변하거나, 고정되어 있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2024년 겨울, 광장에 모였던 응원 봉을 든 시민들의 계보를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8년 전 촛불 광장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것이 아주 의미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거인의 어깨 위로 오른 것은 2024년 겨울 광장에 모인 바로 그 사람들이지 과거가 밀어 올린 것은 아니다.


역사의 강은 바라보기에는 매우 가까우나 건너기에는 너무나 멀다. 한세대를 받쳐주는 사다리는 너무 약하고,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을 배양시키기에 고전은 너무나 진부하다. 따라서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제안처럼 우리가 칠백여 년 전 고전을 볼 때,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보라”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자! 그렇다면 고전이란 진부하고 불필요한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우리가 어릴 때는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말이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기를 지나고 나면 오히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말이 더 폭력적인 것이 된다. 어쩔 수 없이 철이 들어버린 우리는 고전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면 된다. 무엇을 할지는, 고전의 그물과 사다리를 버린 후,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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