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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Oct 15. 2018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실패하는 사람

책 속의 사람들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에서 ‘생존자 편향(survivor bias)에 대한 사례를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영국의 엔지니어들은 전투에 투입된 후 무사 귀환한 전투기들을 조사하여 비행기의 방어 능력을 보완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비행기 몸체 특정한 부분에 총알 자국이 집중된 것을 보고, 이 부분들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통계학자였던 아브라함 왈드는 이것이 매우 멍청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전투기에 난 총탄 자국이 그들의 생환 조건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추되어 군 기지로 돌아오지 못한 전투기를 조사해야 생환의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저자는 성공한 자가 이야기하는 성공의 조건을 답습하는 것은 정말로 쓸데없는 짓이라고 주장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과 동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중에 성공한 사람은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라는 이야기다. 특히나 위험을 무릎 쓰고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 중 대다수는 실패하고, 그중에 아주 운이 좋은 사람만 성공하게 되는데, 이렇게 극단적인 위험을 통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축하는 해 주되 절대로 그런 사람에게서 조언을 구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런 사람이 정치인으로 나오면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뉴턴으로부터 라플라스를 거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주장되어 온, 결정론적 세계관을 소개한 저자는 닐스 보어 이후 양자역학적 세계에서 발견된 우연적이고 통계적이며, 자유의지가 인정되는 세계에 대한 논쟁을 이어나간다. 라플라스는 사건에 연결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는 미래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인과론을 주장했었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어설픈 추리 소설 ’라플라스의 마녀‘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300Km 떨어진 화산에서 나온 황화수소의 흐름을 예측하여 ’자연적 살해‘에 이용한다는 내용의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압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능력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앞에 ’어설픈‘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소설 속 살해 스토리 전개의 인과관계가 어설펐기 때문이다.      


게이고의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사건을 구성하는 인자를 찾아내고 그 인자 간의 인과관계를 스토리 라인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힘든 작업이다. 솔직한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완벽할 수 없는 작업이다. 소설이 이러할진대 실제 세계 속에서 사건의 모든 인자를 확인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양자론의 창시자 닐스 보어나 불확정성 원리로 노벨상을 탄 하이젠베르크 등의 이론으로 나아가면서, 세상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각각의 우연 속에서 자유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한다. 또한, 카오스 이론을 소개하면서 엄청나게 다른 결론에 도달케 하는 초기 조건은 누구도 규정하거나 확정할 수 없기에 그것은 우연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논리도 덧붙인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우리가 그 원인을 모를 뿐이라고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플로리안 아이그너는 이에 대해 ’세계는 동전 던지기와 같다‘고 맞받아친다. 던져진 동전의 앞뒤를 알아맞히기 위해서는 태양계 전체보다 더 큰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이 필요하고, 또 그런 지식은 언제든 예측할 수 없는 초기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결국 우연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물리학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심리학, 천문학, 통계학, 철학 등 학문의 경계와 분야를 넘나들며 역사와 인간을 둘러싼 우연의 문제에 접근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부터 시작하여 파동 함수나 양자 중첩 이론 등의 물리학 이론을 가볍고 재미있게 전달하면서 우연의 문제를 끌어내고, 셀 수 없이 많은 우연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진화의 과정이 그 큰 흐름에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우연과 필연의 관계를 설명한다. 한편 저자는 각종 심리 실험을 통해 우연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도 한다.     


솔직히 이 책 속에서 결정론과 우연론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각종 학문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우연과 필연을 소개하는 논점도 그다지 새롭거나 날카롭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 인생에 던져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수년 전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목적으로 유행했던 소위 ’열정 강연‘이나, 고령화 사회에서 은퇴한 노인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인생 2막 강연‘등, 성공 사례의 허상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안 아이그너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나 60대 후반에 KFC를 창업했던 할랜드 샌더스를 따라 한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를 스쳐 가는 수많은 우연에 충실하고, 또 그만큼 새로운 우연을 만들어갈 때 최소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언젠가 알랭 드 보통이 ’현대인의 불안과 성공‘이란 주제로 한 TED 강연을 떠올리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강연에서 ’커리어의 위기’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우리가 커리어의 위기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로 첫째, 세상에는 속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속물근성이란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속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직업이라고 했다. 우리가 파티에 가거나 새로운 공동체에 참가할 때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질문이 바로 직업이고, 대부분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가? ‘에 따라 그 사람을 향한 관심과 시간의 양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주장한 커리어에 대한 두 번째 위기는 ’커리어 자체에 대한 기대감‘ 이다. 세상은 평등해졌고, 그래서 누구나 노력하고 능력만 있으면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보통은 우리의 고통이 바로 그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우리 고통의 근원인 질투는 평등과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는데, 평등 의식이란 공감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고도 알랭 드 보통은 주장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국 여왕을 질투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과의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며, 동창회가 가장 위험한 것은 그곳이 공감이 가장 큰 곳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언제나 서점은 두 가지 코너가 붐빈다. 하나는 성공하라는 자기 계발 코너이고, 또 하나는 실패했을 때, 자존감을 잃지 말라는 심리학 코너이다. 둘 다 공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자기 계발 코너에서는 빌 게이츠와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시키려는 책들로 넘쳐나고, TV에서 방송되는 소위 골목상권 개선 프로그램에서는 성공한 외식사업가와 시청자 간의 공감대를 끌어내면서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공에 대한 공감을 강요한다.      


문제는 이러한 두 가지 코너가 결국 우리를 성과주의 사회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노력하고 능력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평등한 사회가 결국 좋은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 각자가 자초한 결과라고 정의된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그렇다면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불운한 사람일까? 아니면 실패자일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의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에밀 뒤르켐의 연구결과도 이러한 보통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의 자살률은 높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은 성과주의 사회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한 사회의 계층에 그 원인을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세상은 우연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당한 계급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라플라스의 악마처럼 어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예측할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커리어의 위기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소득과 지위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평판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리스의 비극으로부터 배우라고 조언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극장에서부터 시작된 비극은 인간이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햄릿은 비록 실패했지만 실패자는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인생에서 선택하는 부분과 버리는 부분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돈과 지위와 명성을 버리는 대신 무언가가 있다면 누구도 실패자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비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찌질이 장자는 되지 말자

장자의 ‘열어구’에 보면 송나라 ‘조상’이라는 사람과 장자 간의 대화가 나온다. 진나라 사신으로 가서 능력을 인정받아 송나라와 진나라로부터 수레를 상으로 받은 ‘조상’은 장자를 조롱한다. “가난한 동네의 막다른 골목에 살면서 곤궁하여 짚신이나 짜고 누렇게 뜬 얼굴에 깡마른 몸으로 지내는 것은 제가 선생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 승의 천자를 한 번 만나 수레 100채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제가 잘하는 일이지요.”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진나라 왕의 법도를 잘 알지요. 진나라 왕이 병이 나서 의사를 불렀는데 종기를 째고 고름을 짜 주는 자에게는 수레 한 채를 주었지요. 만약 혀로 고름으로 빨면 수레 다섯 채를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치료하는 방법이 천하면 천할수록 더욱 많은 수레를 받게 되겠지요. 선생은 진나라 왕의 치질을 핥아 고쳐 주셨습니까? 어찌 그리 많은 수레를 받았습니까?”      


장자는 아무리 높은 관직이라 해도 죽은 쥐새끼나 다를 바 없으며, 잔꾀와 요령으로 윗사람에게 아부해 높은 벼슬을 얻고 돈을 버는 것은 치질을 핥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장자는 명백히 찌질이다. 그는 의사의 헌신을 잔꾀로 치부했고, 행정가의 유능함을 아부로 폄훼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냥 “참으로 유능하십니다.’라는 한마디로 자리를 비켰어야 옳다. (물론 이는 장자의 정언약반, 즉 역설적 유모다. 따라서 그가  찌질하다는 것 역시 유모다)


자신에 대한 믿음

오래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대변되는 미국의 위기를 예견했던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틀리, 그는 2006년 '미래의 물결', 2008년 '위기 그리고 그 이후'라는 책을 통해서 변동성 높은 미래의 모습을 예견한 바 있다. 그는 2010년 '등대'라는 이름의 책을 발간하면서 그동안의 미래학자로서의 지적 면모를 접고,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명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미래학자로서의 행보를 보여왔던 그가 뜬금없이 '등대'라는 이름으로 은유되는 인생의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쓴 동기에 대해 "23명의 인물들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운명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자기중심주의의 괴물들이다.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비극적 불운을 한 번 이상 겪었다. 모두 설욕하려 애썼다. 우연이 지나쳐버리려고 할 때, 그 우연을 붙잡는 특별한 능력을 보인다. 모두 같은 질문에 응답하려고 전력투구한다. 그 질문은 '당신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하여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자세를 접고, '자기 자신되기'로 지적 방향을 틀었다.      


마침내 아탈리는 2014년에 출간한 그의 책 '언제나 당신이 옳다.' 에서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그가 제안하는 '세상을 대하는 방법'은 의외로 '미래'에 대한 것도, '등대'에 대한 것도 아닌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이 책에서 파스칼의 종교관을 예로 들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날에도 이처럼(파스칼과 같이) 행동하기를 제안한다. 다른 사람들의 불확실한 행동은 상관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쪽에 내기를 걸라고 말이다. 그러면 어떤 가정을 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미래 학자들의 불확실한 조언에 매달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쪽에 내기를 거는 것, 즉 '자기 자신되기'에 승부를 걸라고 그는 조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자신되기'가 결코 직장 생활이나 사회생활 밖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끔찍한 15세기 한가운데서 살던 사람들조차 삶을 재창조했던 사람들은 많이 있다는 사실로 우리를 위로한다.      


자크 아틀리의 이 말은 이 책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에서 저자가 우연성을 대하는 자세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을 제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연성은 우주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카테고리이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을 긍정적이고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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