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학 일기 #01 > 일단 뭐라도 해보면 얻는 건 있다
01 일단 뭐라도 써야겠다. 매번 글감이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글감이 떠오르면 시간이 생기길 기다리고 그러다 보니 이도 저도 못하고 시간만 열심히 흘러가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너무도 많고 그 이유들이 내 삶의 목적이기도 한데 왜 자꾸 미루고만 있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도 이렇게 게으르게 하는데 싫어하는 일을 하고 사는 내 모습은 상상도 안된다.
02 중도 휴학을 10월 21일에 했는데 벌써 11월 4일이 되었다. 시간 참 잘 간다. 2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감기 걸려 고생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니 성격도 많이 변했고, 처음 1~2주 정도는 방 구하고 알바 구하느라 어버버버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 열심히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보니, 내 삶이 가리키는 길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휴학을 한 목적은 너무도 많고 그중에 하나는 내 삶을 멀리서 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서서히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이니 느낌이 새롭다.
03 오늘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감기가 나를 조금 놓아주었다. 오랜만에 뻥 뚫린 코 상태로 돌아왔기에 눈이 떠지자마자 운동을 했다. 물론 몸 상태가 안 좋기에 살살하긴 했지만 다시 달릴 힘이 생겼다는 건 좋은 스타트라 생각한다. 샤워하고 따뜻한 차와 함께 책상에 앉아 U2 음악과 함께 글을 쓰고 있으니 너무 평화롭고 휴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분을 매일 느끼고 싶지만 내일이면 내가 귀찮음에 휩사여 퍼질러 자고 있을 거 같다.
04 좋은 노래를 들고 좋은 장소에 가서 그냥 온몸을 맡기니 복잡하게 생각들이 엉켜 마치 소화불량에 걸린듯한 머릿속도 비워지고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도 그 무게가 너무도 가벼워졌다. '들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11월 말이나 12월 초에는 캠핑을 떠날 생각이다. 좋은 음악 리스트를 들고 가만히 풍경을 즐기다 책 한 권 꺼내 읽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는 앞으로 남은 인생에 나를 옭아매 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연구할 생각이다. 그냥 버티며 사는 삶의 결말은 너무도 잘 안다.
05 "너는 밤처럼 아름답다." 나는 밤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 예쁜 자태는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 표현을 좋아한다. 이보다 아름다움을 더 잘 표현하는 단어가 있을까. 그런데 중요한 건 밤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사람일수록 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행도 떠나본 사람이 잘 떠나고 밤도 느껴본 사람이 잘 느끼고. 나는 앞으로도 더 멋진 밤을 느끼고 싶다. 그러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났을땨 이 표현을 꺼내 쓰고 싶다. 그때 내 표정과 말투 나의 모든 것에 내 인생이 담겨있지 않을까. 그 아름다움을 강렬히 느껴봤으니까.
06 휴학하길 너무 잘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풍경을 이 좋은 오후 2~3시경에 차 한잔과 함께 느낄 수 있으니. 날이 추워진다. 새로운 감정들과 기억들이 찾아오고 세상도 새로운 세상을 위해 짐을 빼고 그간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떠나보냄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기. 우리 모두는 언젠간 사라지는 손님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