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쾌한 막장드라마
이제는 1년에 책 한 권 읽는 것조차 꽤 버거운 일이 되었다.
학생 때는 자의 반 타의 반 책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살았는데, 이것도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당시를 회상해 보자면 나는 문학 교육 방침에 대해 유감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굳은 뇌로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고보니, 학생 때 좁은 식견으로 어설프게 평가원의 방식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시간에 행간의 의미를 읽는 연습을 조금이라도 더 해둘걸 하는 후회와 문득 드는 씁쓸한 감상에 젖어 하는 말이다. 강의실 안에서 읽고 배울 때는 참 좁고 꽉 막힌 세상이었는데, 스스로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여보려니 자기 확신이 서지 않아 혹시나 오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드는 때가 많다.
이제는 한 권의 책을 통해서도 많은 파생 매체가 생긴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 작성하는 블로그 후기 글부터, 유튜브 영상 해석 글까지도.
이러한 것들을 통해 내가 읽은 감상과 그들이 이야기 해주는 책의 비하인드를 비교해 볼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그러한 재미를 잠시 미루어두고 먼저 이 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앞서 짧게 언급한 것과 같이 나는 책을 읽은 지 한참 되었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완독(完讀)을 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맞다.
서문을 지나, 본론 몇 페이지를 읽다 접어두고 잊은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컨텐츠 범람의 시대에 접어들다 보니 이젠 글도 영상도 지겨운 집중력 부족인, 그런 사람이 되어가나보다.
지금부터라도 정말 책도 읽고 나다운 취미를 다시 가지고 싶어서, 며칠 전 앞 뒤 재지 않고 인근 도서관에 갔다. 장르나 시대 그 어떤것도 정하지 않았으되, 몇 가지 조건만 둔 채로.
그 조건은 가볍게 읽기 좋은 단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읽다가 지겨워서 덮어도, 다시 읽는 새 공백이 어색하지 않으며 문맥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한다. 또 글귀 자체가 산만하지 않고 가벼워야 중간에 덮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펼치기 쉽다.
목표의 일 순위는 완독이기 그 때문에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싶은 욕구는 접어두기로 한다.
딱히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더라도 장서의 무게가 가볍고, 또 보기에 표지등이 보기 좋으면 좋다.
(아무래도 외관이 보기 좋으면 손이 자주 가게 된다)
한마디로, '이거다!' 싶으면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정말 한참을 골랐는데, 그렇게 돌고 돌다 찾아낸 책이 바로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셰익스피어 연구회 著/아름다운 날≫이었다.
개인적으로 희곡 자체는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5대 희극 중 십이야에 대한 흥미는 최근에 생긴 참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웹 소설의 주요 장면에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가 제법 중요한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십이야가 위에 나열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고, 읽기에도 제법 만족스러웠느냐 하면
나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할 것이다.
나는 책이나 드라마 등에서 킬링타임용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영화나 뮤지컬 등의 모든 장르를 규합하여 로코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제 할 일을 아주 우수하게 해내었다고 평하고 싶다.
본격적인 서평으로 들어가 좋게 읽었던 점을 나열해 보자면, 다양한 인물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데 종반에 그 인물 간 관계를 제법 잘 풀어내었다는 점이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앤드류나 토비, 안토니오 등의 등장은 그저 극의 감초와 같은 역할로서만 소명을 다하는 것인가하고 제법 아쉬울 뻔 했지만, 종반 절정으로 치달을 수록 보니 오누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초석쯤으로 해석하면 인물의 방향성이 이해가 되고 작가가 제법 재치 있게 풀어냈구나 하고 웃게 된다.
극 중의 광대에 대한 묘사와 대사도 일품이다.
가장 낮은 인물이지만, 모든 이를 꿰뚫는 혜안을 가진 인물로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바이올라의 독백에서 비롯된다.
'저 친구는 영리하니까 바보 노릇을 할 수 있는거야.
바보 노릇을 잘 하자면 갖가지 잔꾀가 필요한 법이지
… (중략) …
저 친구는 마침 바보짓을 해 보이지만, 영리한 사람이 바보짓을 하게 되면 지혜의 타락이라고 해야겠지'
- 바이올라
작가가 이야기하고픈 바를 광대라는 직업의 특성에 맞게 말장난 형식으로 담담하면서 재치 있게 풀어내는 점이 재미있었다.
오시노 : 자네를 잘 알고 있지. 친구, 요즘 어떻게 지내나?
광대 : 솔직히 말씀드리면 원수 덕분에 잘 나가고, 친구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오시노 : 그 반대겠지. 친구 덕에 잘 되는 것 아닌가?
광대 : 아니에요, 나빠진다니까요. 그게 말입니다. 친구들은 저를 추켜세우고 나서 바보로 만드는데,
적이야 처음부터 저를 대놓고 바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적 때문에 저 자신을 알게 되니 덕을 보는 것이고,
친구 놈들 덕으로는 속는 것밖에 없는 것이죠.
결론은 마치 입맞춤 같은 거지요.
네 번의 부정은 두 번의 긍정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친구들 덕에 손해를 보고, 적들 때문에 잘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이 가려질 만한 단점을 가진 작품임은 확실하다.
짧은 희곡이다 보니, 주연들의 감정선이 공감되지 않는 점이 가장 크다.
바이올라가 스스로를 남성으로 분한 채(세자리오), 오시노 공작의 시종이 되어 맡은 중책은 바로
그의 사랑의 전령이 되어 올리비아에게 오시노 공작의 부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
즉, 극의 시작부터 끝나기 직전까지 오시노 공작의 마음은 올리비아에게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바이올라의 성별이 여성이란 것이 밝혀지자마자 어떻게, 갑자기, 오시노 공작은 바이올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
이외에도 올리비아가 세바스찬을 세자리오라고 착각한 상태에서 결혼한 뒤 밝혀진 진실을 전개하는 단계에서, 과연 작가가 성의를 다해 두 인물의 감정을 묘사해내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의 감정선 말고도 세바스찬과 바이올라가 오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았을 때 성격이 너무나도 판이한 점 또한 신기하게 다가왔다.
극 내내 묘사되는 바이올라는 제법 현명하고 당찬 느낌인데, 세바스찬은 숲을 안 보고 나무만 보는 사람처럼 당장에 닥친 위기만 해결하기에 급급해 보인다.
이러한 세바스찬을 위대한 사람이 될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물심양면 목숨까지 내놓아가며
도와주는 안토니오에 대한 존경심 또한 억누를 수 없다는 말 또한 적어야겠다.
이러한 부분들은 극의 절정으로 갈수록 두드러진다.
초-중반부 인물 간에 엮인 인연의 실을 종극에 푸는 과정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전개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려다 보니 범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그러려니 이해해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결론은 생각 없이(뇌 빼고), 가볍게 읽을 해피엔드 막장 드라마를 찾고 있다면 십이야도 나쁘지 않다 정도가 될 듯 하다. 특히 희곡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인물들끼리 티키타카 하는 모양새가 그려질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