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 (The Imitation Game)

참신한 소재, 진부한 전개

by xabil

올해 개인적인 다짐으로 영화를 자주 보기로 결심했었다.

본격적인 평에 앞서 이 다짐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하자면, 나는 대중 영상매체를 잘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시류에 유행하는 드라마나 예능의 내용에 대해 얼떨떨해하며 나중에서야 찾아보고 한 박자 늦게 웃어넘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인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한 결심을 했느냐 하니 첫 번째로는 타인과 대화할 공통의 소재가 잘 없고, 다음으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견문이 없는 빈 수레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쩌면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을 나만의 피해망상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타인에 비해 별난 취미조차 없는 사람이라 소박하게라도 작은 취미를 만들어가자고 생각한 시작이 바로 '영화 보기'인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영화는 ≪타짜≫, ≪살인의 추억≫, ≪포레스트 검프≫ … 등에 속한다.

나는 지금껏 평단의 찬사와 대중적 흥행을 얻은 이름있는 영화들 조차도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쨌든 어떤 영화를 골라 잡아도 처음이고, 또 해당 분야에 대해 영 문외한이니 어떻게 보아도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위 영화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할까? 이미 세상에 수천 개의 기록물들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 내 마음을 대변하고도 남을 문장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좋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시작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보는 기준점이 대략 높아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스러움과 그로 인해 앞으로 리뷰하게 될 ≪이미테이션 게임≫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글을 한마디 더 끄적이게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미테이션 게임≫을 선택한 계기는 약간의 충동이었다.

여느 때처럼 넷플릭스를 돌아다니다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듯한 (그러나 딱히 끌리진 않아서 보지는 않았던) 제목의 영화가 보여 줄거리를 읽어보니 시대도, 소재도 흥미가 제법 당기는 것이었다.

줄거리만 보았을 땐 앨런 튜링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실존 인물에 대한 실화 기반 영화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보니 베네딕트가 연기하는 주인공이 '바로 그 앨런 튜링'이다.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말해보자면, '튜링 테스트'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공학이나 인공지능에 대해 조금이라도 발을 담가본 사람은 교양적인 지식으로라도 알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 중요한 한 획이며 특히나 GPT의 도움을 받는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재조명 받을 수 밖에 없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있는 해당 인물에 대한 지식은 미미하지만.)

아무튼 그런 사람에 대한 영화이다 보니 내가 모르는 튜링에 대한 업적이나 생애의 일면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참으로 애석하게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말보다는 나은 말을 찾지 못하겠다.

사실 영화의 전반적 내용을 조금 폄훼하는 문장으로 일축해 보자면, 우정과 성장과 사랑과 신파를 모조리 섞고 흔든 국내산 짬뽕 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의문이 들었던 부분은, 튜링이 정말 이렇게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었는가였다.

감상이 끝난 후 찾아보니 영화적 각색이 들어가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제법 비판을 받은 모양이다.

만약 감독이 대부분 '천재' 라고 한다면 떠올리는 어떠한 이미지―개인주의자에다 일말의 협동심이라고는 없으며 성과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비범한 인간―를 그려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성공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제로 극 중반부까지 베네딕트가 연기하는 튜링은 그러한 모습이었고 동료들과는 갈등을, 본인의 성과에는 양해와 이해를 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결국에는 튜링이 집단에 스며들게 되긴 하는데, 그 계기가 바로 여주인공 클라크다. 그러나 클라크와의 만남과 호감을 쌓는 모든 흐름이 자연스러웠는가 하면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는 (앞선 혹평에 대한 가책 및 미안한 감정으로 옹호를 해보자면) 이해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클라크의 프로젝트 투입부터 유대감을 쌓는 경위를 연출하는 방식이 제법 급박하게 진행되었다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주어진 러닝 타임내에 풀어내야 할 꼭 필요한 장면이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라크가 들어온 이전과 이후의 극 중 흐름은 판이하게 다르다. 튜링은 모든 동료들과 협력하게 되었으며 가시적인 성과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클라크와도 결혼하여 잘 끝나는 줄 알았는데 …. 갑자기 전개의 초점이 튜링의 동성애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우울 및 스트레스로 바뀌면서 종국에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자살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어떤 창작물을 볼 때, 특히 그것이 기존의 실존 인물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2차 각색을 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것을 얼마나 훼손하였는지가 초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사극을 그리는 경우 종종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솔직히 말하면 그간 드라마나 영화를 잘 안 봤던 입장으로서 한 발짝 떨어져 다소 의례적인 감정으로 불쾌히 여겼던 문제였었다.

그런데 오늘에야 이 영화를 보고 그간 대중들이 실제 우리가 사랑해 오던 역사와 인물들의 가치를 훼손했을 때 느끼는 분노를 알게 되고 또 공감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감독과 작가의 사심이 크게 반영된 작품이며, 심지어 그것을 연출하는 방법조차 서툴고 어색하다. 때문에 만약 다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면 하는 생각과, 러닝타임을 조금 길게 해서 타이트하게 풀어낼 수 밖에 없던 이야기들을 완만하고 부드럽게 연출해내었다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볼 수 밖에 없게된다.


끝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주관적 감상으로는 영화 종반부까지 크게 감동하지 못했었는데, 끝나기 직전의 병자를 연기하는 몸의 떨림과 불안함, 그리고 비관과 포기를 보여준 부분에서는 공감을 끌어내는 연기였다고 감히 평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몸이 아파본 사람이고, 또 지금도 간혹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내 생을 포기하는 그 순간에 묘한 희망과 절망의 양극의 교차 감정을 알고 있다. 그것을 '연기해 낸' 배우에 대해 감탄의 박수를 보내며 더할 나위 없는 연기력이 있는 그에게 완벽한 대본과 연출이라는 영광이 주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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