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처럼 이 세상에 철저히 혼자이고 싶어요.

- 도리스 레싱의 [19 호실로 가다]를 읽고

by 재나

권여선의 <이모>를 팟캐스트인 라디오 문학관에서 처음 들었다. 들으면서 내 안에 스며드는 생소한 기분, 언어로 표현되지 않지만 내 안에 분명히 생겨났던 무언가가 이상해서, 책을 찾아서 읽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안의 감정과 마주했다.


내가 권여선의 단편 [이모]에서 느낀 감정은 envy였다.


나도 이모처럼 피붙이랑 인연을 끊고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 난 철저히 혼자인 당신이 부러워 미치겠다.


나는 이런 내 감정에 당황했다.


나는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외롭고 고립된 이모의 생활이 불쌍하게 여겨야 될 것 같은데 내가 느끼는 시기의 감정. 이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를 이해해야 하는지.



그렇게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생소한 감정을 나는 [디 아워스]의 브라운 부인에게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에게서 다시 보았다.

p305 “미스 타운센드, 저는 몇 시간 동안 혼자 있고 싶어서 이 호텔을 찾아왔어요. 내가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이고 싶어요.” 수전은 머릿속으로만 이 말을 하면서, 노처녀인 미스 타운센드의 얼굴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표정을 역시 머릿속으로만 그려보았다. “미스 타운센드, 우리 네 아이와 남편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아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런데 당신 눈에서 히스테리의 기운이 번들거리고 있네요. 오로지 외로움을 간신히 참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눈빛이죠. 그걸 보니 제 삶이 곧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 그대로라는 걸 알겠어요. 하지만요, 미스 타운센드, 저는 그런 삶을 전혀 원하지 않아요. 원하신다면 제 삶을 가져가세요, 미스 타운센드. 저는 당신처럼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


p319 하지만 한없이 공상에 잠기며, 아니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방황하고, 깜깜하게 어두워져서 공허함이 피처럼 혈관을 따라 즐겁게 도는 것을 느끼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 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같이 나와서 운동을 하고 근처 구립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의 칸막이 책상 앞에 앉으면 살 것 같았다.


거기서 책도 읽고 필사도 하고 공부도 했다. 물론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많았다. 그렇게 있다가 작은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 1시간 전에 집에 가서 청소를 하고 간식을 준비했다.


어쩌다 동네 지인들이랑 의미 없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아이가 올 시간이 되어 집에 오게 되는 날은 미칠 것 같았다.


나에겐 나로서 존재하는 칸막이 책상이 필요했다.


내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전문직 남편, 공부 잘하는 딸, 나에게 기쁨을 주는 아들, 밖에서 봤을 때 나는 행복해야지, 아니 행복할 수 없다면 만족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지.


항상 무언가 텅 빈 것 같은 공허가 나를 더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나를 탓했다.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내가 이상하다고.


그러다 [디 아워스]의 브라운 부인과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을 책 속에서 만났고 나를 이해시키는 언어를 찾았다.


나의 24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었다.


조각조각 나뉘어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기능해야만 했다. 위태로운 결혼생활에서 사랑받는 아내가 될 수 없다면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엄마로서는 존재해야만 했다. 그런 것으로 나를 채워야 했다.


이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아내로,

모성신화가 지배하는 사회 안에서 엄마로서, 자식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효를 강요받는 며느리로 살기를 강요받았던 내가,


그 부조리를 몸으로 느끼지만 언어화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벗어날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나라는 여성이 계속 개인적인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를 탓했다.

타인이 보지 못하는 도서관 칸막이 책상이 주는 자유는 수전이 프래드 호텔 19호실에서 느끼던 것과 같았다.


수전은 자살을 택했고 나는 나를 이 세상에서 없애지 않기 위해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 내 잘못 같았던 결혼생활의 실패의 원인을 나에게서


가부장제 사회와 모성신화를 강화시키는 사회문화,

그리고 며느리에게만 강요된 효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한 나만의 정당성을 찾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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