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부인

마이클 커닝햄의 <디 아워스>를 읽고- 2019년 3월에 쓴 글

by 재나



영화 디아워스.jpg 영화 [디 아워스] - 영화도 소설도 너무 좋다.



[디 아워스]를 읽으면서 나는 브라운 부인 이야기에서 나를 보았다. 미국의 1949년에 살았던 브라운 부인은, 2000년대를 살았던 나와 닮아 있었다. 딸을 뱃속에 품고 있으면서 나란 인간이 엄마가 되어도 될까 내내 나를 의심했다. 배가 불러오고 뱃속에서 이질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가 너무 이상했고, 그런 감정을 품는 내가, 모성도 없는 것 같은 나를 의심했다. 딸을 낳고 나서도, 딸과 분리되어 생각되는 나란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 엄마로서 나를 의심했다. 아들을 낳고 나서는 아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여지지가 않을 때마다 모자란 나의 모성을 의심했다. 아이들을 다 떼어버리고 나 혼자로 존재하고 싶어서 방에 문을 잠그고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던 날에는, 모든 순간 아이들을 위해 존재할 수 없는 내가 이상했고 그런 행동을 한 내가, 나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의심했다.


학대받고 방치되는 아이들의 기사가 나오면 학대하고 방치하는 그 엄마의 마음의 끝자락을 알 것 같은, 그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은 내가 무서워서 엄마로서 나를 의심했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존재할 수 없는 나의 자아를, 그러나 아내로 엄마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나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2016년 1월, 포항으로 남편을 따라 이사를 왔다. 남편을 따라 대구에서 전라도로, 다시 대구에서 경기도로, 또 대구에서 포항으로 이사를 다녔지만 남편이랑 같이 산 날을 따진다면 17년 결혼생활 동안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새로 마련한 아파트, 많은 돈을 들여 최신 유행으로 인테리어 한 집은 내가 고른 바닥재, 가구, 벽지로 꾸며져 있지만 그 속에 있으면 숨이 막혔다. 그가 인테리어를 해야 한다고 했고 아내로서 나에게 소소한 결정을 강요했다. 벽지와 바닥재를 잘 고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난 그 집이 감옥 같았다. 내가 인테리어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그곳에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부엌의 냉장고가 들어갈 공간에, 모두들 반대했지만 나만의 책상을 넣었다. 책상 때문에 수납공간이 부족했고 인테리어 업자도 남편도 이상하다고,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책상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집에 책상만큼의 공간은,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거기서 설거지를 하다 커피를 마시고 밥을 하다 책을 읽었다. 그 집에서 나는 책상 크기만큼의 결정권을 가지고 책상 크기만큼의 자유가 허락된 듯하였다.


이사하고 집을 정리하다 슬라이드 도어에 손을 다쳤다. 밤 동안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참다 참다 아침에 병원에 갔더니 엄지손가락 뼈에 금이 갔다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다친 손가락이 아팠지만 열심히 밥을 차렸다. 손을 다쳤을 때 걱정보다는 화를 내면서 그가 한 말 때문이었다. “이사 와서 밥 며칠 차려줬다고 다치니, 다치기를”

그래, 나는 밥으로 정의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밥으로 밖에 정의되지 못했다. 그 말이 너무 서운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나의 의미를 알게 되어서 나는 금이 간 엄지손가락으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에게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의 아침을 꼭 차렸다. 그는 내 아픈 손가락을 걱정하지도 설거지 한 번 도와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하기에 생활비를 받는 나는, 전업주부였던 나는, 손가락이 불편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p62 로라 브라운은 스스로를 놓아버리려 하고 있다. 아니, 그건 딱 맞는 표현은 아니다. 그녀는 또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는 입구를 찾으면서도 자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포항으로 이사 와서 아이들 방학이라 남편과 아이들의 밥을 삼시세끼 챙기면서 나는, 물이 모자라 말라죽는 식물처럼 그렇게 조금씩 시들어 가고 있었다. ‘내 삶은 이렇게 밥으로 정의되다가 없어질 것이다. 그가 나에게 내린 나에 대한 정의에 맞추기 위해서 나는 살아야 한다.’ 그를 좋은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같이 골프연습장에 가고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골프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같이 TV 골프 프로그램을 보아야 했다.


그가 나에게 주는 집과 차(나 혼자 살고 나 혼자 타고 다니는 차도 아니었는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야 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내가, 직업도 친정도 변변치 못한 내가 누리는 경제적 안락함에 그에게 감사해야 했다. 그가 출근하고 나면 잠시 나로 존재하다가 아이들이 오고 그가 오면 난 다시 행복한 척 연기를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연기도 점점 힘에 부쳤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지고 지독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아내로, 엄마로, 예전에 나를 지탱해 주던 행위를 다시 해도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지 못했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이 굴욕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우울함 빠져 있던 나를 그도 보기 힘들었을까. 그가 다시 일하려고 하는 나를 모성애가 없는 엄마로 몰아가고 부끄러운 엄마로 만들었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집에 더 있었으면 내가 나를 해치고 말 것이란 것을 나는 알았던 것 같다. 아들에게는 떨어져 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보다는 존재하는 엄마가, 더 나을 거라고 나를 합리화하면서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서, 살려고 그 감옥 같은 집을 나왔다. 그래, 그가 나를 밀어내지 않았어도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나왔을 것이다.



p302 나는 한 남자의 마누라인 척하느라 여기 이렇게 영원히 갇혀 지내는데 말이야. 그녀는 오늘 밤을, 그리고 내일 아침을, 그리고 또다시 이 밤을 이 곳에서, 이 방들 안에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견뎌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남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계속 그래야 한다.


그는 치열한 30대를 보내고 40대에 안락하고 편한 삶을 원했다. 이렇게 일하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자립해 나가면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난 이제까지 아이들 키운다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안락한 삶의 부속품으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기 일을 위해 치열한 20대와 30대를 보낼 때 나는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그를 고마워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나 또한 치열하게 엄마로서 살았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밥으로 밖에 남지 못했다. 난 그렇게 정의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런 선택이 딸과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아이들의 앞으로 삶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표현되어 나올지 걱정스럽고 두렵다. 그래도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모습으로라도 이 세상에서 존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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