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엄마에 대해 좀 더 의연해져야 한다고, 늙어 버린 엄마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상처 받고 화가 안 풀린 10살의 나는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에게 엄마가 있어야만 했던 순간들, 그 아픈 순간들에 엄마는 내 옆에 없었다.
5학년 때, 가슴이 커지기 시작했고 난 브래지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달리기를 하는데 반 친구들이 내 가슴이 덜렁거린다고 흉보듯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고 아빤 돈이 왜 필요하냐면서 물었다.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고 있을 때, 상황을 눈치챈 오빠가 브래지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아빠에게 돈을 받아서 버스를 타고 서문시장으로 브래지어를 사러 갔고 그 두 개의 브래지어를 헤지고 작아질 때까지 입었다.
6학년 때, 팬티에 똥이 묻었다고 생각했다. 왜 똥이 여기에 묻었을까 의아해하고 있다가 생리가 시작되었다. 생리대 쓰는 법과 생리에 대해서 6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고모가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슈퍼에 가서 생리대를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생리대를 붙여도 옷에 생리가 새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너무 당황했고 이런 것을 나눌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나의 이런 순간들에 엄마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대학생이 되어 물혹이 너무 커져서 큰 수술을 받고 회복하기 위해 엄마 집에서 잠시 있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집으로 오는 피부 마사지사에게 얼굴 마사지를 받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화투를 치고 술도 마시면서 편하게 살고 있었다.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나에게 엄마로 존재해야 했던 순간들을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일까? 배신감이 들었다.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자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얼마나 자식에겐 중요한 것인지 느낀다.
그런 추억의 고리가 없는 생물학적 부모, 자식 관계란 무엇일까?
지금 내가 의아해하는 것은, 엄마의 고통이 전혀 나에게 전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힘들어하면 나도 같이 힘든데, 아들의 목소리가 어두우면 내 마음이 무너지는데 엄마의 고통은 나를 더 무감각하게 만든다.
무감각하게 그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나를 버린 엄마를 위해서는 감정의 어떤 부분도 절대 주고 싶지 않은 나,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 없는 아이로서의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집착했다.
모든 순간마다 내가 있어 주고 싶었고 엄마로서의 없는 공백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역할을, 내가 엄마랑 가지지 못했던 시간들을, 내 아이들과 다시 만들어 나가듯이 엄마로서 노력했다. 엄마로의 존재해야 할 시간과 나의 욕망의 시간이 겹치면 나의 욕망을 포기했다. 엄마는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도 나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 거야.’ 엄마로서라도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난 내가 가진 트라우마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내가 이젠 아들의 트라우마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내가 그렇게 부정하던 나의 엄마처럼 나는 아들의 일상을 모른다. ‘아니야, 아들은 나처럼 초등학교 3학년이 아니고 중학교 3학년이야. 그리고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서 아빠랑 같이 있는 것이 엄마랑 같이 있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야.’
나를 합리화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올라오지만, 현실은 나는 아들과 일상을 같이 하지 못한다.
딸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고 그래도 아들이 있는 이 지역에 있기 위해서 이사할 집을 1월에 계약하고 2월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빠를 만나러 간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아빠 ◇◇으로 직장 옮긴대. 그래서 ○○이 전학한대. 오늘 확실히 결정이 났대.’ 초등학교를 3번을 전학한 아들이다. 전학할 때마다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하던 아들이었다. 그럼 아들이 중학교 전학을 해야 한다니. 아들이 힘들 것이 너무 확실해 보였다. 아들에게 전화해서 아빠랑 전학 이야기가 오갈 때 왜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중학교 전학 힘들 텐데, 아니면 중학교 3학년, 1년만이라도 엄마랑 같이 살자. 괜찮다고 아빠랑 이사하겠다는 아들에게서 나중에 배신감이 들었다.
아들이 나를 버리고 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의 이사 소식을 듣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게 밤을 보내다 모진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아들의 이사를 되돌릴 수 없다면 이제부터 나만을 위해서 살아보자. 그래, ◇◇에 가면 할머니도, 고모도 가까이 있으니 아들에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이기적이고 나랑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나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에 시간을 내어 주고 나를 위해 돈을 쓰고 그렇게 살아보자고. 다음 날 아들에게 네가 선택한 전학이니 잘 적응하라고, 힘들겠지만 잘 이겨내라고 말했다.
고통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한다고 했던가.
지금의 나는 고통이 소거되어 버린 것일까.
너무 잠잠해져 버린 일상,
그래서 나는 현실을 인식할 수가 없다.
나는 링에 오르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는데 링이 없어져 버려서, 쓰일 곳을 잃어버린 권투선수 같다.
딸로서도 아버지를 모시지도 못하고
철저히 현실에 부딪히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처럼,
아들의 엄마로서도 내 돌봄 노동의 몫이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나를 정의하고 세워야 하나?
내가 나를 이해시킬 언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나를 그나마 현실에 붙잡아두고, 살만한 사람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던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언어화할 수 없는 나,
나를 흐릿하게조차도 그릴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많은 나의 트라우마들,
그런 트라우마를 나를 닮은 아들에게 다시 주고 있는 원인 제공자, 가해자가 되어버린 나.
항상 괜찮다고 말하는 아들도, 자기의 고통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게임으로 먹는 것으로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엄마인 나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계속 묻고 아들이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