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95 평생에 걸친 자기혐오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나 보다, 서서히 치유해 가는 방법 말고는
p202 평생을 시달려온 열등감과 자기혐오를 깨부수고 던져버리기 위해 지난 세월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아직 찌꺼기가 남아 있다. < 해릴린 루소의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중>
유년기 때 내가 처음 기억하는 책은 엄지공주이다.
오빠가 보고 나서 나한테 왔는지 동화책은 이미 많이 낡아 있었고 초록색 테이프로 간신히 책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외가에 짐과 같이 맡겨져 있었고 그 짐에는 엄마가 방문 판매원에게 사놓은 책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죄다 두꺼운 세계 전집이었고 7살인 내가 볼 수 있는 책은 그 책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나는 엄지공주 동화책을 들고 창고방 안에 있던 내 몸이 딱 들어가는 상자 안에 들어갔다. 거기서 엄지공주를 읽으면 그렇게 좋았다. 어려서 그 느낌을 좋다는 정도로만 기억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잠시 내가 엄지공주가 되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것 같다. 엄지공주의 들쥐 엄마는 부자 두더지에게 엄지공주를 시집보내려고 하는 나쁜 엄마(?)일 수도 있지만 나는 들쥐 엄마가 있는 엄지공주가 부러웠다. 또 자기 아들과 결혼시켜주고 싶을 만큼 두꺼비에게 예뻐 보인, 두더지가 결혼하고 싶어 한, 누군가가 관심 가져 주고 사랑해주는 엄지공주가 부러웠나 보다.
챙겨주고 간섭하는, 옆에 누군가가 있는 엄지공주가 부러웠다.
장사하는 부모랑 떨어져서 외가에 맡겨져 있던 난 엄마가 매일 보고 싶었다. 학교에 다니고 있어 부모랑 같이 지내는 오빠에 비해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나는, 나를 가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엄마랑 같이 살게 되고 나서 엄마한테 착한 딸, 인정받는 딸,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어서 학교 숙제도 혼자서 잘하고 집안일도 돕고, 엄마의 맘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존재로만은 사랑받을 수 없으니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아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가셨고 혼자 있는 엄마는 항상 불안해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빚쟁이가 와서 엄마를 찾았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엄마가 없었다. 빚쟁이들이 집안을 뒤졌고 장롱 안에서 엄마가 발견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어른이라 커 보였던 엄마가 장롱에 숨어서 빚쟁이를 피하려고 하다니. 엄마도 믿을 수 있은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던 나는, 나 또한 믿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도 엄마가 학교일에 관심이 없으니 나 또한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이런 일도 떠오른다. 학교에서 교실에 달 거울을 사 오라고 했다.(나의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이런 일이 일상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교실을 채울 무언가를 가져오게 했다.) 엄마는 거울 직접 가져다주지 않고 오빠와 내게 들고 가라고 했다. 꽤 먼 거리를 걸어 다녔던 우리는 거울을 힘겹게 들고 갔다. 그런데 교실에 가서 거울의 포장의 뜯어보니 거울이 깨져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잘 사는 집 애들을 유난히 편애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 날 이후로 관심 밖의, 무얼 해도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5학년 때 IQ시험을 봤는데 반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 새로 부임하셨던 담임선생님은 나의 그 전 학교 생활을 잘 몰랐고 객관적인 수치로 나를 높이 평가하고 방학 동안 영재과학반에 추천도 해주고 북돋아 주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잘 하는 것이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칭찬이 성적이 좋아서 받는 칭찬이었다. 그 이후로 학교와 성적은 나의 사춘기를 버텨주었다. 매일 학교를 갔고 인정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왔다.
그런 인정 욕구에 의지해서 살았던 나는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사람이었는지.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버스를 타면 대구의 자갈마당(성노동자 거주지)을 지나갔다. 지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 있는 사람과 나의 차이가 종이 한 장이라는 생각, 나 또한 한 발짝 다른 곳을 디뎠다면 저기에 있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너무 자기 연민에 빠진 생각이었지만 그때, 믿을 수 있는 어른도, 나를 지탱해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세상과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자기 부정과 자기혐오는 결혼을 해서도 계속되었다. 남편과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내가 문제가 있으니 문제가 있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받아들이고 참아야 된다고.
그리고 자기 부정과 자기혐오가 가득한 나는 엄마로서는 너무도 부족했다.
내가 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그런 자각들,
그런 나의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자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를 바꾸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들.
그런 생각들이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아이들 학교에 교육에 모든 것은 건 집념의 엄마로 나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하나의 인격체인 아이들의 인생으로 나를 증명하려고 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인지한다.
자기 부정과 자기혐오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부정하는 나도, 나를 혐오하는 나도, 그냥 바라봐 주고 싶다. 이것들은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는 한 평생을 나와 같이 가야 하는 친구일 테니까.
그 친구들이 갑자기 찾아와서 나를 흔들 때마다 ‘너 좀 힘들구나, 세상에서 상처 받아서 아프구나’라고 어루만져 줄 내 안의 긍정과 사랑이 더 많아져서 부정과 혐오의 감정들을 안아 주길.
“내 친구 자기부정아, 안녕. 자기혐오야, 안녕. 너희들은 항상 나와 같이 있구나. 이젠 너희들도 내가 안아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