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커진 상태에서 물혹을 발견했고 난소까지 같이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난소가 하나인 여자가 되었다. 만약 더 늦게 난소 물혹을 발견했다면 나는 <황소와 개구리>에 나오는 엄마 개구리처럼 배가 빵 하고 터져버렸을까? 어렸지만 그래도 20살이 넘은 성인이었는데 어찌 그리 내 몸에 대해 무지할 수 있었을까? 크고 무거운 물혹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는 게 아찔하고, 바보 같은 내가 부끄러워 그때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읽고 이제는 내 질병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자꾸 배에만 살이 찌고 소화도 잘 안 되고 쓸개 담즙 같은 노란 물도 위에서 올라와요”
내과 진료실에 의사와 마주 앉아서 21살의 내가 말하고 있다. 더워지고 있는 6월의 나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처럼 팔은 가늘고 배만 볼록하다. 의사는 무심하게 “살이 찌면 살을 빼야지” 라면서 촉진 한 번 하지 않고 위내시경을 하자고 했고 다음 날 위내시경 결과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내 몸이 이상했다.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배만 볼록 나오고 배를 눌려보면 아주 단단했다. 병이 생기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는, 아프지 않으니 나에게 물혹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단지 배에 살이 계속 찐다고만 생각했다. 살 빼려고 수영장에 다녔는데 어떤 여자분이 임신부냐고, 몇 개월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부끄러웠다. 당연히 나온 배를 숨기기 위해 어깨를 구부정하게 다니고 큰 옷만 입고 다녔다. 겨울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고 반소매 옷을 입기 시작하자 나온 배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를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노랗게 변해서 임신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까지 성 경험이 없었다. 내가 무슨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혼자서 임신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생리량이 적긴 했지만, 생리도 하고 있었다. 엄마를 만난 날도 생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를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가슴과 배를 보고 바로 위내시경을 한 내과로 데리고 갔다. 촉진 한 번 하지 않은 의사도 엄마처럼 내 배를 보고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바로 소견서를 써 주었고 근처 대학 병원으로 갔다. 입원하기까지 PK부터 전공의에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성 경험이 있는지, 임신했는지였다. 그 과정이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부끄러웠다.
먼저 내과로 입원했다. 내과 전공의가 난소에서 생긴 물혹이 커질 대로 커져서 다른 장기들을 다 누르고 있는 CT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전공의는 이렇게 난소물혹이 큰 케이스가 없었다면서 아마 의대생들 공부 자료로 쓰면 딱이라고 나의 무지를 놀라워했다. (실제로 내 자료는 의대생의 공부자료로 쓰였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도 이○○으로 된 CT 사진으로 의대생이 공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내과에서 산부인과로 전과되었고 응급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물혹이 너무 커서 가로로 배를 절단할 수 없어서 세로로 절단 수술을 했다. 물혹이 커서 주사기로 물을 빼내고 나서 꺼냈다고 의사가 나중에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난소 하나도 같이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술 후 몸무게가 10kg로나 줄었다. 그리고 배에 10cm가 넘는 세로의 수술 자국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다. 어찌 그리 무지할 수 있는지, 난 그때 병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난소에 물혹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보 천치였다. 아마 추측하건대 그 물혹은 한 달 두 달 자란 게 아니라 적어도 1년 이상 자란 것이었을 터인데, 어찌 그리 나의 몸에 무신경할 수 있었을까. 수술하고 나서야 학교에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을지, 정말 임신한 학생으로 보지 않았을지, 수영장에서 어떤 여자가 한 이야기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10kg가 넘었던 난소물혹은 내 몸에서 없어졌지만 아직도 나는 그 흔적을 느낀다.
그 병은 나에게 지금까지 구부정한 어깨를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20대 초반을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져 살게 하였다. 늪 속에서 살았다. 그 늪에서 떠오를 수도 더 가라앉아버릴 수도 없이 그냥 부유하는 작은 생명체 같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나는 매일매일 사라지고 싶었다. 자살이라는 것을 할 용기도 없어서 내 방 장판 위의, 손톱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까만 먼지처럼, 작은 점정도의 크기로 존재하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 이후 나는 6개월마다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아야 했고 그때마다 의사는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정상적인(그때의 정상적인 여자의 삶이랑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여자의 삶을 살 수 없겠구나 하고 체념했다. 학교도 가기 싫었고 아이들과 같이 생활해야 하는 내 미래의 직업도 싫었다.
21살에 겪은 나의 질병은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변하게 했다. 한 번씩 생각해 본다. 그때 그 큰 물혹을 배에 가지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안정되게 살고 있을까? 과연 24살에 딸아이가 생겼을 때 하던 공부를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낳는 선택을 했었을까?
더 거슬러 올라가 도대체 나의 난소에 물혹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 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난 사회 정의상으로, 정상적이지 않는 내 몸이, 또 정상적이지 않는 나의 성장 과정이,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내가 겪어 내야 했던 내 경험들이, 한 번씩 나를 무섭게 내려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가 같이 찾아오면 거기에서 헤어 나올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자신을 혐오하던 20대의 나는, 어느새 내 행위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도 그런 의심이 나를 잠식하는 날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