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프다.

- 그런데 슬픈 게 아니라 화가 난다, 2018년 12월에 쓴 글

by 재나

엄마가 아파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엄마를 위해 아직 돈도 쓰고 싶지 않고 마음도 내고 싶지 않다. 조금 풀리려고 했던 엄마에 대한 마음이 토요일 엄마가 다쳤다는 아저씨의 전화 한 통에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엄마이기 때문에 이전까지의 받았던 아픔은 없었던 것처럼 하고 자식으로서 행동해야 하는지? 나는 싫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 엄마에게 내어 줄 마음이 없다. 또 같은 의문에 갇힌다. 나는 그냥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 없는 사람인가? 그런 것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인가?

모든 인간관계는 용서와 화해로 끝내어야만 하는가?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는 나는 옹졸한 사람인가? 생물학적으로 엄마라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자식을 키우면서 살기 위해 애써 덮어두었을 뿐, 하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 그 상처들이 나를 다시 10살짜리 아이로 만든다. 그때 하지 못했던 투정과 그때 울지 못했던 울음과 그때 묻지 못했던 의문들이,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서 나를 누른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랑 어깨가 골절되어 수술해야 된다는 아저씨( 엄마랑 같이 사시는 분)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기분이 나빴다. 이제 엄마랑 연락하고 지낸다고, 당연히 나에게 자식의 도리를 요구하는 듯한 전화가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그녀의 생물학적 딸이지만 마음의 딸이 아니다. 나는 그녀를 객관적으로, 감정 없이 보려고 노력하고 거리감 있는 지인 정도로의 감정으로 그녀를 볼 수 있지, 엄마와 딸이라는 감정으로 그녀를 본다면 나는 화산처럼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이제 대학생이 되는 딸이 있는, 40대 중년의 나는, 이제 그만 엄마를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식의 도리를, 도리가 있다면 그런 것들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쁘고 벌 받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10살의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작별도 없이, 친구 집에 숙제를 하려 간 사이에 영영 집을 나가 버린 그녀부터 벌 받아하지 않는가? 친구 집에 숙제를 하러 가지 않았다면 엄마가 집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책하던 어린 나, 집 나간 엄마를 알고 싶어, 그녀가 남긴 짐을 뒤지면서 그녀를 느끼고 싶었던 어린 나는, 아직도 내 안에서 아파하고 있는 어린 나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듯이, 남편에게도 버림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작아지고 우울해지고 못나지던 결혼 생활 속의 나는, 다시 돌아갈 곳이 없어서 어떻게라도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던 나는.


나이 들고 약해지고 아프다고 그런 것들이 없어져야 하는지. 그녀가 집을 나가기 전부터 방치되었던 기억들은 그녀의 나이 듦과 병듦으로 무마되어야 하는지.


그냥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 그냥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던 시간들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피붙이라도 받은 추억이 있어야 줄 수도 있다고, 난 받은 게 없어서 당신께 줄 것이 없다고, 어떠한 것도 주고 싶지 않다고.



유년을 생각하면서 썼던 시


운동회


운동회를 하기 전에 엄마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운동회 날까지 엄마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어.

도시락은 어떻게 하고, 친구 엄마들은 오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오늘은 기분이 최고다. 엄마도 돌아오고, 운동회도 하고


엄마, 친구 집에 숙제하고 올게. 이거 가지고 가서 나눠 먹고 숙제 다 하고 올게

그래, 잘 갔다 오렴. 오늘따라 엄마가 따라 나와서 손을 흔들어 주네.


오늘은 기분이 최고다. 엄마도 돌아오고, 운동회도 마치고 엄마가 손도 흔들어 주고

빨리 숙제를 마치고 집에 가야지. 엄마가 기다릴 집으로 가야지


엄마, 나 왔어. 엄마, 나 왔다고

엄마가 없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는 없었어.


에이, 바보 같은 년, 숙제하러 가지 말고 집에서 엄마를 지키고 있을 걸.

네가 엄마를 지켰으면 엄마가 집 나가지 않았을 텐데.

네가 지키지 않아서 엄마가 집을 나간 거야,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잘못한 거라고


그러다 그러다 네가 잘못된 거라고, 너는 존재가 잘못된 거라고.

넌 너를 아프게 다그치고 있어. 지금까지 그러고 있어.

'넌 잘못된 거야'라고.


빨간 코트


엄마, 난 그 코트가 좋아.

많이 크긴 하지. 하지만 좋아. 내가 빨리 클 거야.

제발 코트 바꾸지 마. 내가 입을 수 있어.

내가 빨리 클 거라고.


그때 그 빨간 코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다른 어떤 코트로도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그 코트는 어디에 있을까?



팬티


여름날, 교회에서 뒷산으로 산보를 갔어.

난 엄마가 나간 뒤, 옷 더미에서 찾은 작아진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


교회 선생님이랑 언니, 오빠들이랑, 친구들이랑 산보를 갔어.

한 참 걷다가 오줌이 마려웠어

화장실 갔다 올게요,

오줌 누고 팬티를 올리다 오래되어 삭아진 팬티 고무줄이 끊어졌어

화장실에서 나는 하나님을 찾았어

하나님, 이제 어찌해야 되나요?

팬티 없이 원피스만 입고 집에 가야 하나요?

고무줄 없는 팬티를 어찌 입고 있어야 하나요?

끝내 하나님은 대답이 없었지.

나의 하나님은 그때 이후로 없어졌어, 사라졌어


C 발, 고무줄 없는 팬티처럼, 내게서 술술 벗겨지던 팬티처럼

그때부터 내 삶도 술술 벗겨지고 삭아버리더군


난 이제 팬티 따윈 필요 없어

팬티 없이 작아진 원피스를 입고 살고 있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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