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갔다. 사우디에서 3년을 일했던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온지 한 달여 만이었다. 아빠가 3년 동안 착실히 보낸 월급은 남은 게 없었다. 그렇게 아빠가 중학교 1학년인 오빠와 초등학교 3학년인 나를 키우게 되었다. 우리의 생활은 비참했다. 밥을 따뜻하게 두려고 플라스틱 밥통을 아랫목 이불 아래에 두면 쥐들이 와서 플라스틱 뚜껑과 같이 갉아먹었다. 오빠는 가출을 했다 돌아와서 고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생리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신당을 차리고 무속인이 되어 있었다. 같이 사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때는 나는 이제 곧 성인이 될 테고 이제 부모의 영향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엄마를 여자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른 결혼을 하고 25살, 어린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만난 날에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엄마랑 연락을 끊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딸아이에게 해주는 것들에서, 내가 받지 못한 관심과 행위를 인지하고 과거의 내가 불쌍했다. 생리를 처음 시작하던 날, 언제부터인가 준비해 놓았던 직접 만든 면 생리대를 선물하고 케이크에 초를 켜서 딸의 생리를 축복했다. 그리고 나의 첫 생리를 떠올렸다. 생리가 뭔지도 몰랐는데 시작한 생리 때문에 너무 당황했던 기억들. 생리대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 처음 브래지어가 필요해서 아빠에게 돈을 달라고 할 때의 당혹감, 정말 엄마가 필요할 때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엄마가 미웠다.
그런 엄마를 최근에 다시 만났다.
엄마는 폐암 1기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고 나는 남편과의 별거생활이 2년쯤 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때까지 내가 결혼 생활을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2년 동안 나는 경제력을 만들고 못다 한 공부를 마치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다. 그리고 공부를 마무리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엄마를 만나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만나려 간다고 약속을 하고 나는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말들을 써 보았다. 쓰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그리고 엄마를 만났다. 막상 엄마를 만나니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냥 밥을 챙겨주고 먹으라고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는 엄마의 모습에, 나에게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이상하고 생소한 감정과 함께 그냥 좋았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신내림을 받은 할머니가 엄마의 친할머니라는 이야기, 외할머니가 교회를 가기 위해 조상 단지를 못에 버렸고 그 못에 큰 외삼촌이 빠져 죽을 뻔해서 엄마가 구한 이야기, 결국 그 못에서 6살 이었던 둘째 외삼촌이 죽은 이야기. 그때부터 엄마는 학교 가다가도 그 못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20살이 되어 첫 선을 보고 아빠랑 결혼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외할머니가 막내 외삼촌을 낳아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누군가의 딸이었다. 그리고 엄마도 나처럼 외할머니를 원망하는 말을 했다.
그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엄마가, 나의 엄마로서 너무 밉다.
오랜 방황과 채울 수 없는 외로움과 내 존재의 빈약함이 다 엄마에게서 기인한 듯하다. 그래서 엄마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을 찾는다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들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