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외로움, 그것이 고독이 되었을 때

by 재나

p226 타인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는 건 해방이었다. 그리고 힘이었다. <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김선형 옮김, 살림>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하루 만에 읽었다. 이렇게 가독성 있게 읽은 책은 오랜만이었다. 팟빵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듣고 그냥 따뜻한, 재미를 추구하는 책인가 보다 하고 잊고 지냈는데 지인 추천으로 빌렸다가 일요일 아침,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들었다가 책에 푹 빠져버렸다.




이 책은 카야의 외로움에 관한 책이고 카야가 자신을 지켜내는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배경은 미국 남부의 늪지대, 삶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든 마을, 거기에서도 더 외딴곳에 있는 오두막에는 상이군인인 아빠, 엄마와 5남매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빠의 폭력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엄마가 떠나고 언니와 오빠들도 아빠를 피해서 떠나버린다. 7살 카야는 아빠와 함께 집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카야는 살기 위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연이 주는 위안과 수수께끼를 풀면서 살던 카야는 테이트에게 글을 배우고 책을 세계로, 고립된 삶 속에서 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처음으로 믿고 의지하던 테이트가 떠나 돌아오지 않고 외로움에 텅 비어 버린 카야는 나쁜 남자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지만 체이스를 만나게 된다. 결국 체이스에게도 배신을 당하고 그러던 어느 날, 체이스가 늪의 소방망루 밑에서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고 카야가 살인 용의자가 되면서 소설을 시작된다.


참 매력적인 소설이다. 카야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누가 살인자인지 찾아가는 법정소설이기도 하고, 미지의 늪지대의 생태를 묘사한 자연 소설 이이도 하다. 그러나 하나로 정의해야 한다면 외로움과 고독에 관한 소설이다.




p108 이렇게 깊은 정적은 귀했다. 심지어 까마귀들마저 고요해서 자기 숨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p179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 됐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p200 마음 깊은 곳에서, 카야는 자기 역시 체이스에게 해변의 예술작품 같은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모래밭에 휙 던져버릴 신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존재. 그러나 카야는 계속 걸었다. 사랑에는 이미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지금은 그저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을 뿐이었다. 심장에 울타리를 쌓되 외로움을 덜고 싶었다.


p205 말도 안 되는 갈망인 줄 알고 있었다. 비논리적 행위로 공허를 채우려 해 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고독을 좇는 대가로 얼마나 큰 값을 치러야 할까?

p231 카야는 체이스에 대한 자기 마음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제 외롭지는 않았다. 그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텅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카야의 마음이 나에게 전이되는 듯했다. 설명되지 않는 자연의 섭리로 잘 생기고 체격이 좋은 체이스에게 끌리는 카야의 마음. 두려움보다는 외로움이 더 커서, 계속 걸어가는 카야의 마음이.

말도 안 되는 갈망인 줄 알면서도 고독을 좇는 대가로 그 값을 치러야 할 것을 알면서도 체이스를 향해 걸어가는 카야의 마음이.


p300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그리고 그런 관계조차도 타인과의 연결이었다는 것을. 타인의 기척을 기다리는 않는 것은 해방이고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데려다 놓은 감옥이 될 수도 있음을.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감옥.


p448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유전자에 남아서 전이되는 어떤 것, 그리고 그것이 생존하게 하는 어떤 것이라면.


며칠 동안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