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에리세의 영화
어제 드디어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 close your eyes(2023)> 를 봤다. 요즘, 영화가 세계에 대한 믿음을 찍어야 한다는 들뢰즈의 말,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일이죠 라는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말을 앞에 두고 글을 쓰고 있는데,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너무나도 이런 말들과 상응하는 영화였다. 내가 사랑하는 <벌집의 정령 (1973)> 뿐만 아니라 <남쪽 (1983)> 등 이전 영화의 흔적이 곳곳에 놓인, 그러면서 사라져 가는 '시네마'의 시대를 애도하는 영화. 하지만 기억이 사라져도, 우리가 늙고 모든 것이 변해가도, 어떠한 것들은 결국 우리의 감각과 정서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러한 기적이 여전히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해주는 영화. 2시가 45분에 달하는 긴 러닝 타임이고 누군가에는 너무 느린 호흡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보고 나면 정말 모든 장면들이 아름다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흔히 빅토르 에리세의 이전 영화들 속 은유와 상징들을 그가 프랑코 정권 시절 정치적인 것들을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방식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그는 영화가 본질적으로 시적이고, 시적인 것은 또한 정치적이라고 (마치 파솔리니처럼) 믿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아나 토렌트가 "Soy Ana 나는 아나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벌집의 정령>에서 주문과도 같았던 그 말은 이 영화에서도 역시 주문 같은, 혹은 시 같은 성격을 지닌다), 어두운 실내에 한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배우의 클로즈업된 얼굴에 생긴 깊은 음영과 콘트라스트 (마치 빛과 어둠이 한 사람의 얼굴에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눈을 깜빡이는, 클로즈업된 배우들의 얼굴과 표정. "인간의 영혼이 명백 하고 궁극적인 계시의 확고한 현상으로 결정화되는 곳은 오로지 얼굴" 뿐이라던 짐멜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 "부분이자 전체이며 또한 자율적인" 클로즈업된 얼굴들.
영화 속 편집자 막스는 "칼 드레이어 이후 영화의 기적은 없다"라고 말하지만, 칼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을 떠올리게 하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클로즈업된 얼굴들은 영화의 기적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네마의 시대는 분명 끝나가지만, 시네마의 기적은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변하지만, 어떤 것들은 여전히 감각과 느낌 속에 여전히 지속된다. 눈을 감았다 뜨는 그 순간. 어쩌면 모든 것은 그대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나 역시 그러한 것들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