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영화

3년전 기록

by cuniculus

시기가 조금 늦어졌지만, 아직은 크리스마스 시즌이기에, 3년전 겨울 계절 학기를 오래간만에 진행하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유했던 글을 올린다. (언제나 연말 연초에만 브런치에 글을 쓰게된다. 이것도 나의 일종의 새로운 '의례'일까).


"여러분 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다들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나요? 크리스마스는 휴일이기에 오늘 수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겨울 계절 학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크리스마스라는 흥미로운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내긴 좀 아쉬워서 몇가지 간단히 이야기하고 또 몇몇 영화들 이야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소위 크리스마스 영화, 홀리데이 무비라 불리는 것들이 소환됩니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성탄절 영화라는 것은 예수 탄생과 관련된 영화겠지만, 실상 크리스마스 무비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예수 탄생보다는 다른 것들과 관련된 영화들이 많습니다. 즉, 산타클로스와 관련된 이야기라든지, 혹은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이 상징하는 어떠한 가치들- 가족애, 사랑 등등을 다룬 영화들이죠. 특히 서구에서처럼 크리스마스가 가족 명절로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출시되는 영화들은 주로 로맨스 영화들인 것 같습니다.이는 크리스마스가 예수 탄생이라는 기독교 명절 및 의례와 연관된 것은 분명하지만, 또한 오늘날에는 ‘기독교 밖의 크리스마스 의례’ 역시 지배적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 즉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지만 ‘기독교 밖에 존재하는 크리스마스’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선 산타클로스라 할 수 있지요. 잘 알려져 있듯이 산타클로스는 3세기 동로마 제국의 성인 니콜라우스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 이미지는 19세기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러한 산타클로스가 널리 알려지고 또 현재와 같은 이미지로 자리잡는 데는 산타클로스와 관련된 여러 상업적 이미지 - 대표적인 것으로 코카 콜라의 산타클로스 이미지- 등이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산타클로스와 관련해서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1898년 만들어진 산타클로스 영화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c3ei1tseeM

영화의 시작기, 뤼미에르 형제와 조르쥬 멜리아스의 영화들과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최초의 산타클로스 무성영화입니다. 1898년 유럽 사람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산타의 이미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알 수 있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산타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또하나의 산타클로스 영화 <34번가의 기적> 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한 산타가 등장합니다. 전통적으로 1947년 만들어진 것이 유명하지만, 아마도 여러분 세대들에게는 1994년의 리메이크가 더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1947년작에서는 메이시스(Macy’s)라는 실제 백화점이 배경인데-에서 성탄절 산타 역할을 하는 이가 스스로를 산타클로스라 주장하며 생기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죠. 이 영화는 사실 산타클로스 자체보다도, 종교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고 ‘믿음’이 우리 삶에서 끼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는 점에서 종교와 관련해서 한번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iypbCFV7Ao (1994년작 <34번가의 기적> 트레일러)



한편 크리스마스는 우리 삶 속의 어떤 특별한 의례의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많은 영화 속에서 이러한 특별한 비일상적 시간을 구축하는 배경으로 채택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비일상적 시간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처럼 자신의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고, 영화 <멋진 인생>에서 처럼 때로 힘들고 비루하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삶도 사실은 다 하나 하나 그 의미가 있는 것을 알게 해주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브렌트 플레이트의 글에서처럼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는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 또다른 비일상적 의례의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하죠.


저에게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몇몇 영화들 중 하나는 지난 시간 잠깐 소개한 적 있었던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화니와 알렉산더>(Fanny and Alexander, 1982)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연극에 종사하는 에카달 집안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3ESgz6F0c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오프닝)



https://www.youtube.com/watch?v=vrFpkSRIYX0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_



이날 이후 화니와 알렉산더의 아버지 오스카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죠. 이 영화에서 에카달 집안의 화려하고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따스한 크리스마스 파티/의례는 이후 화니와 알렉산더의 새아버지 목사의 집에서 느껴지는 삭막하고 강압적/폭력적인 차가운 세계와 대조를 이루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베르히만은 영화 속에 종교인들- 특히 개신교 목사를 자주 등장시키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목사의 세계는 특히나 부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죠.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생각나는 여러 영화들 중 또 하나는 존 패트릭 세인리의 <다우트>(Doubt,2008)입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미국 브롱크스의 한 가톨릭 교구 학교를 배경으로 한 신부가 한 남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의심이 퍼져나가면서 이를 두고 학교 교장인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가 대립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가톨릭 사제의 성폭력 고발 영화와는 다른 지점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결코 분명히 말해주지 않으며 단지 어떠한 사건을 두고 의심과 확신이 교차하며 흔들리는 심리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이처럼 흔들리고 모호한 의심과 확신이 증폭되어가는 배경에 바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12월의 여러 가톨릭 교구의 행사들이 자리잡고 있고(영화 속에서 알로이시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크리스마스 연극에 세속 캐롤을 사용하는 문제로 대립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알로이시스 수녀가 제임스 수녀와 대화할 때 배경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널리 알려진 크리스마스 성가입니다.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심과 확신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셋팅과 음악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AOUtgdcjik

간단히 이야기한다고 하고 말이 너무 많아졌나요. 아무튼 오래간만에 겨울 계절을 진행하면서 크리스마스 영화와 관련되어 떠오른 몇 가지 단상들을 적어보았습니다. 1965년 <찰리브라운 크리스마스>에서 크리스마스가 도대체 뭔지 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찰리 브라운에게 라이너스는 루가 복음 2장 8절 14절의 예수 탄생과 관련된 구절을 낭독해줍니다. 그러나 이 장면 때문에 이 단편이 단지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장면 이후 모두가 비웃었던 가냘프고 못생긴(?) 찰리 브라운의 전나무를 다시 가져오고 모두가 이 보잘것 없는 나무 둘레에 모여 장식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끝나는 것에 사실 이 단편의 더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arqNUEexI&list=PLkLimRXN6NKzQXG5_xOffMKzyRYkiv_3t&index=6



여러분들의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파티나 의례 따위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20대에도 그저 그런, 아무일도 없는, 혹은 심지어 평소보다 더 우울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영화이든 그 어떤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기쁨을 줄 무엇인가와 함께하며 잠시나마 여러분의 ‘비일상적 시간’을, 여러분만의 ‘의례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랍니다.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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