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의 날

by cuniculus


남편과 나의 공통된 취향 중 하나는 바로크- 고음악에 대한 애정이다. 연말 연초에 갈 만한 공연이 있을까 이곳저곳 검색하다가 우연히 프린스턴 신학교 채플에서 하프시코드 연주자 샤를로트 매택스 모어쉬 (Charlotte Mattax Moersch)가 작은 공연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무료 공연.

그래서 오래간만에 프린스턴에 갔다. 신학교 도서관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으나 채플은 처음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예배당이었다. 정 중앙의 파이프 오르간과 양 옆의 크고 긴 창들이 인상적이었으나, 천장의 샹들리에를 제외하고는 수업시간에 프로테스탄트의 전형적인 ‘iconoclastic’ 한 느낌의 예배당의 예로 보여주는 것들을 상기시킬 만큼, 거의 아무런 이미지와 장식도 없는, 절제되고 소박한 공간이었다.


모어쉬는 이 날, 잘 알려진 프랑수와 쿠프랭(1668-1733) 외에도, 루이 쿠프랭(ca. 1626-1661), 아르망-루이 쿠프랭(1727-1789) 등 쿠프랭 일가의 클라브생 음악과, 끌로드 발바스트르(Claude Balbastre, 1724-1799), 쟝 앙리 당글베르(Jean Henry D’Anglebert, 1629-1691), 쟝- 밥티스트 앙트완 포르크레(Jean-Baptiste Antoine Forqueray, 1699-1732), 그리고 프랑스 사람은 당연 아니지만,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 특히 쟝 앙리 당글베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JS 바흐의 하프시코드 음악 두 곡을 연주했다.


공간을 압도하지 않는, 차분하게 저 밑에서부터 조용히 울려 나오는 듯한 클라브생 소리와, 곡 중간중간 연주자의 설명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긴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빛의 기울기가 변해가고 밖에 서서히 깔리던 어둠이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순간들이 겹쳐지면서 겨울 오후의 시간이 저물어갔다.


연주된 곡들 다 좋았지만, 특히 아르망-루이 쿠프랭의 모음곡 중 La Chéron 이 아름다웠다.이 곡은 파리 오페라 감독이기도 했던 당대의 하프시코드 연주자 앙드레 셰론(André Chéron)에게 바쳐진 곡이라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nYxVgjee9Y


이날 마지막으로 연주한 아르망-루이 쿠프랭의 곡, Le Blanchet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하프시코드 제작자 프랑소와-에티엔느 블랑셰의 딸이자 하프시코드 비르투오소였던, 그리고 이후 아르망 루이 쿠프랭의 부인이 된 엘리자베스-앙트와네트 블랑셰(Elisabeth-Antoinette Blanchet)에게 바쳐진 곡이었다. 이처럼 잊혀진 과거의 여성 음악가, 연주자의 존재를 다시 환기시켜준 것도 좋았다.


포스터 한 장 달랑 채플 앞에 붙어있던, Early Music America 웹사이트를 제외하곤 어디에도 공연 정보조차 찾을 수 없던, 숨은 공연이었지만, 이런 공연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이 있다. 물론 처음 이런 공연에 갔을 때는, 마치 영화에서 보던, 집에서의 사적인 음악회 - 영화 <허공에의 질주>에서 마사 플림튼이 자기 집에서 열린 음악회에 대해 리버 피닉스에게 냉소적으로 말하던 그런 느낌, 즉 아는 사람들, 있는 사람들 만의 거들먹거리는 공동체에 어색하게 끼어든 불편함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불편함을 그냥 무시한 채 음악과 공간에만 집중하고 나온다. 물론 그런 불편함의 정서, 그리고 그 불편함의 원인이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면,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여기에 온 이유가 명확해지니까. (<허공에의 질주>에서 리버 피닉스가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음악을 들으러 가고 곡이 끝났을 때 어색하게 그러나 힘을 줘서 박수치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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