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마지막 날은 안개 가득 낀 아침으로 시작했다. 다른 토요일 아침과 다를 바 없이 침대 시트를 갈고, 커피를 내리고,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올해의 책, 올해의 영화 등등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이제는 기록해 놓지 않으면 무엇을 봤는지도 금방 떠오르지 않기에 영화와 책 기록장을 봐야 한다. 가벼운 추리 소설을 제외하고, 또 공부 관련 연구서를 제외하고, 올해 본 책들 중 좋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은 (올해 나온 책이 아니라, 올해 본 책들이다), Benjamin Labatut, 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왜 이탤릭 표시가 안되는지 모르겠다 ㅜㅜ 그냥 쓴다), Edmund de Waal, The Hare with Amber Eyes,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몬 베유,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정명희, <멈춰 서서 가만히- 유물 앞에서 오래 서 있는 사람은 뭐가 좋을까>, 캐시 박 홍, <마이너필링스>, Deborah Levy, The Cost of Living,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앤 카슨, <녹스>, 올리비아 랭, <이상한 날씨>, 윤경희, < 그림자와 새벽> 이 정도인 것 같다.
시작해 놓고 끝내지 못한 책 중, Maggie Nelson, The Argonauts은 1월이 가기 전에 꼭 끝내고 싶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책 Carmen Maria Machado의 In the Dream House를 반쯤 읽었는데, 메기 넬슨의 책을 끝내고 나서 두 책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듯하다.
윤경희 선생님이 번역한 <녹스>는 올해 마음이 가장 힘들고 아무 글도 쓸 수 없을 것 같을 때, 작은 빛이 되어줬던 책이다. 연말에 나온 선생님의 <그림자와 새벽>은 짧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내게는 연구와 관련되어서도 많은 자극을 주었고,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참 아름다운 책이다.
연구서라기도 뭐하고 좀 애매한 책이긴 한데 위에 언급하지 않은 책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이었다. “‘관광객’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타자’의 철학을 구상하겠다”는 흥미로운 출발점과 달리 저자 자신이 거듭 언급하듯이 아직 정교화되지 않은 철학이기 때문인지, 뒤로 갈수록 논리가 불안해지고 많은 구멍들이 보였으며, 더 나아가 마지막에 제시한 ‘가족’이라는 개념은 아무리 그 맥락적 정의를 토대로 다시 보려 해도 턱없이 진부하게 들렸다. 게다가 곳곳에서 발견된 어떤 문장들은 저자의 어떤 세계관을 무의식적으로 반영하는 듯했는데, 이게 또 묘하게 2013년 저자의 트위터 논란과 결부되며 여전히 내게는 좀 불편하고 의심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아무튼 ‘관광’과 ‘관광객’이라는 개념을 타자와의 공존을 도모하는 새로운 철학의 키워드로 제시한 부분 만큼은 나의 현재의 관심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기에, 내년에 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계획이다.
올해 본 영화들 (역시 꼭 올해 나온 영화들만은 아닌데) 중 좋았던 것들은,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카>, 구로사와 기요시, <스파이의 아내>, 홍상수, <소설가의 영화>, Michel Franco, Sun Down , Maggie Gyllenhaal, The Lost Daughter, 박찬욱, <헤어질 결심>,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메모리아>, 조던 필, <놉>, Stephen Karam, The Humans.
재미있으면서도 이런저런 수업과 관련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던 영화는 <놉>이었고, 재미의 측면에서는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으나 결코 다른 어떤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해 주었던 영화는 <메모리아>였다. The Humans는 정말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인데, 오래되고 낡은 맨해튼 차이나 타운의 아파트라는 공간적 설정과 Thanksgiving day dinner라는 시간적 설정 두 가지의 묘한 결합에서 파생되는 ‘기이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유령적 존재 없이 유령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들의 목록에 추가될 만하다.
그 밖에 1월에 본 줄리아 뒤쿠르노의 <티탄>은 사실 전반부의 대부분을 눈을 가렸기 때문에 제대로 보았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너무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래도 볼 수밖에 없었던 (맙소사, 아직까지도 취향이 아님에도 어떤 영화들은 ‘봐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다니), 그리고 다 보고 나서는 놀랍게도 타르코프스키가 떠올랐던, 기묘하게 21세기 적이면서도, 20세기 적인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12월에 본 루벤 외스틀룬드의 Trainagle of Sadness는 감독의 전작인 Force Majeure, The Square에 비해 평범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미 기존 영화에서 가져온 모티브들이 많고,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기존 영화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감독만의 톤으로 새롭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사실 루벤 외스틀룬드의 메시지와 상징은 상당히 직설적인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 2개는 독특한 설정과 느낌이 자아내는 여백들이 있어서 매력적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것을 느끼기 힘들었다.
올해 공연은 거의 가지 못했지만, 그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의 11월 서울 공연이었고, 같은 달에 본 차진엽 collective A의 <원형하는 몸 round1>도 무척 좋았다. 우연히 본 좋았던 전시는 여름휴가 중이었던 8월 East Hampton의 Pace Gallery에서 본 아를린 셰킷 Arlene Schechet의 Mind Field 시리즈였다. 아바카 섬유 위에 스텐실 기법을 통해 표현된 스투파 Stupa의 평면도는 3차원 탑을 2차원 만달라로 변화시키며 동시에 겹겹이 쌓인 공간과 시간의 층이 평면 위에 놓여있는 느낌을 자아냈다. 같이 본 남편은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본 아피찻퐁의 영화의 <메모리아>가 단번에 떠올랐다고 했다.
그 밖에 조지 나카시마 가구 공방 Georges Nakashima Woodworkers이 내가 사는 곳에서 그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곳을 우연히, 혹은 마침내, 알게 되고, 그곳을 방문해 미라 나카시마를 만나고, 목재실과 작업실,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특별한 경험 중 하나였다.
또한 친구들과의 10월 당일치기여행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도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후가 되었지만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았고, 비도 약간 내려 축축하고 습한 겨울 날씨가 계속된다. 잠시 뒤에는 동네 식당에서 올해의 마지막 식사를 할 것이다.
2023년에는 올해 쓰지 못한 미술관과 성지에 대한 글을 반드시 쓸 것이며, 그 밖에 조금은 더 대중적인 글들도 조금씩 써 볼 생각이다. 그리고 사춘기 아들에게 조금 덜 화내고, 강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