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연말 의례 - '올해의' 무엇들

by cuniculus

연말 연초에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 조금 민망하다. 매번 올해는 좀 더 여기에 글을 써봐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일상의 흐름에 묻혀서 이런 공간에 글을 쓰지 않게 된다. 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 연말 의례'라는 말로 포장하고 그래도 몇 자 끄적이면서 올 한 해를 정리해 본다.


올해의 책들 (올해 나온 책이 아닌, 올해 읽은 책 중)

- Carmen Maria Machado, In the Dream House (회고록이면서 동화, 민담서들을 각주로 사용하는, 일종의 "자기이론" autotheory 적인 형식. 연인 관계 속에서 일어난 학대와 폭력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저 단순하지 않게, 그 순간순간들에 언어화되기 힘든, 미묘하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상당히 시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 카를로 레비,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 (무솔리니 정권 시절 반파시즘 활동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 벽지로 유배된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책. 민중의 삶에 놀랍도록 가까이 가 있는 묘사들. 척박하고 거친 삶들에 대한 묘사들 속에서 갑자기 이상한 아름다음이 불쑥 끼어들기도 하고, 또 기독교와 더불어 공존하는 오래된 이교적 믿음들 신앙 행위들에 대한 매우 사실적인 묘사들이 보인다.)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Grace M. Cho, Taste Like War: A memoir (그레이스 조, <전쟁 같은 맛>, 한국어 번역본이 올해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또 막상 책은 번역본이 아닌 원어로 읽었다. 이 책 역시 '자기이론'에 가까운 책, 무엇보다도 '음식'과 문화, 젠더, 등에 관한 저자의 관심과 통찰이 저자의 삶을 관통하며 서술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멋진 부분)

-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도서관 환상들> (아비 바르부르크의 '좋은 이웃의 법칙'을 키워드 삼아 도서관 큐레이션의 다양한 가능성을 논의하는 흥미로운 책)

- 니콜라 부리오, <플래닛 B. 기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숭고> ('숭고'를 이렇게 또다시 이야기하게 되다니)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가스 냄새를 감지하다> (디디-위베르만 책 번역이 나오면 언제나 감사)

- Ian Bostridge, Song and Self (이안 보스트리지는 훌륭한 테너이면서 동시에 좋은 작가라 생각한다(물론 계속 연구를 했으면 훌륭한 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책 역시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문장들로 음악이라는 텍스트와, 공연의 수행성 performativity에 대해 논의한다.)


올해의 영화들 (역시 올해 나온 영화가 아닌, 올해 본 영화들 중)

- 사라 폴리 Sarah Polley, Women Talking (한국에 개봉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종교와 여성의 문제를 다룰 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

- 스티븐 스필버그, < 파벨만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한 이유를 나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영화와, 카메라와 우리 삶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해주는 영화)

- 마틴 맥도나, <이니셰린의 벤시>

- 클라우디아 폰 알레만, <리옹으로의 여행> (1981년 작, 이 오래된 영화를 올해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19세기 사회주의자 플로라 트리스탄의 흔적을 찾아 리옹으로 떠난 역사학자 여성의 이야기. 리옹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19세기의 리옹의 소리와 냄새와 건물의 촉감과 이 모든 것들을 상상해 보는, 아름다운 이야기)

- 조안나 호그 Joanna Hogg, <The Eternal Daughter> (올해 조안나 호그의 영화들을 소개받아서, Exhitbition(2013), Unrelated (2007)등을 같이 찾아보았다. 2022년에 나온 가장 최근작 The Eternal Daugther는 (내가 좋아하는) 슬픈 느낌의 고딕 호러 풍 영화)

- 크리스타인 페촐트, <Afire>

- 파니 리에타르, 제레미 트루일, <가가린> (2020년 작) (이제 공간과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 영화를 반드시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 알리체 로르와커, Le Pupille (어린 소녀들) (로르와커의 귀여운 단편, 로르와커의 영화답게 역시 수녀님들이 나오고 종교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이 영화 역시 이제 나의 '크리스마스 영화' 컬렉션에 들어갈 것 같다)

- 이혁래, <노란 문: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갑자기 옛날 생각이 마구마구 들게 한 영화. 중간에 잠깐 나온 봉준호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looking for paradise>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페촐트의 <Afire>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에는 둘 다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나온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영화 속에서 지니는 힘을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역시 올해의 책 중 하나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전시 등 잡다하게 가고 본 것들.

4월에 본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전시가 좋았고, 원불교 교당에서의 요가 체험도 SBNR과 관련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체험이었다. 마우리지오 카텔란 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고, 뮤지엄 산의 안도 타다오 전시와 제임스 터렐관의 colorful night는 현대인의 성스러운 공간으로서의 뮤지엄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8월 중 친구와 뉴욕에서 만나 우연히 본 칼릴 지브란 전이 생각 외로 좋았고, 뉴 뮤지엄에서 본 베트남 작가 투안 앤드류 응우옌의 필름과 설치 작품들도 좋았다. 미국 집 근처에 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시나고그, 베스 숄롬 시나고그를 뒤늦게 방문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아들과 뉴욕 루빈 뮤지엄에 갔다가 코로나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가을에는 리움에서 김범의 전시를 봤고, 친구들과 사유원에 갔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봤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는데, 갈라 포라스-김, 권병준, 이강승 등이 내 작업과 관련해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 주었다.

겨울에 미국에 돌아와서는 역시 집 근처인 Bryn Athyn의 Glancairn Museum을 방문해서 크리스마스 전시를 봤고, 가족과 Dia Beacon에 가서 리처드 세라와 마이클 하이저 등 기타 여러 작가의 작품을 봤다. 브린 애신은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을 따르는 새 교회(New Church)( 혹은 새 예루살렘 교회(General Church of the New Jerusalem)라 불리는 교회)에 의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마을인데, 이 종교 공동체 일원으로 이곳의 학교와 성당 등을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한 부유한 사업가 존 피트캐런 John Pitcairn 집안의 집과 땅들이 이제는 교회에 헌정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있다. 글렌캐런 뮤지엄은 원래 존 피트캐런의 아들 레이먼드 피트캐런의 집이었는데, 현재는 종교 뮤지엄으로 사용하고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피트캐런 집안의 크리스마스 컬렉션과 관련된 전시만 하고 있는데, 나중에 한번 더 찾아가 볼 예정이다.


전반기에는 학회에서 미술관과 성스러운 공간에 관한 발표를 했으며 이를 발전시킨 논문을 학술지에 실었다. 봄에는 내가 관여하고 있는 한 학술 잡지에 간단한 서문을 썼다. 캐롤 던컨의 책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글을 하나 썼는데 아직 교정 중이고, 책은 아마도 2025년에 나올 예정이다. 가을에는 학회에서 기조연설에 관한 간단한 논평문을 쓴 거 이외에는 글을 쓰지 않았다. 현재 2024년 1월에 완성해야 할 전시비평글이 하나 있다.


쓰고 보니 이것저것 읽고, 보고, 돌아다닌 것에 비해, 생산한 것이 너무 적은 한 해가 아닌가도 싶다. 그래도 한국과 미국사이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가르치고, 아이와 강아지도 돌보고, 살림도 해가면서 무사히 한 해를 보냈다.


올해의 마지막 날은 강아지와 긴 시간 산책을 하며 시작했고, 이렇게 한 해를 마치는 글을 쓰고 나서 잠시 뒤에는 역시 연말 의례의 장소가 된, 동네 레스토랑으로 한 해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예정이다.


한 해가 지나면서 내가 하지 못한 것, 안한 것, 이루지 못한 것, 앞으로도 이룰 수 없어 보이는 것들 때문에 슬퍼하고 후회하기보다는,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이나마 완성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새해 계획이라는 것은 어차피 지켜지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또 무엇인가의 리스트를 만들어볼 것이고. 어쨌든 새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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