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인터폰으로 확인을 하고 서둘러 나는 밖으로 나간다.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3명의 손님.
“막막님, 혼란님, 불안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오셨어요?”
“허허 언젠 우리가 연락하고 찾아왔었나?”
나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집 안이 보이지 않도록 문을 슬쩍 닫으며 말한다.
“오늘은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어때요? 제가 전시회 할인 티켓이 있어서요.
괜찮은 전시회 같던데, 다 같이 보고 저녁 먹어요!”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세 분. 우리는 곧장 ‘호안 미로’ 전시관으로 향했다. 함께 전시회를 보던 중
나의 감각에 이상함이 와 닿는다. 항상 당당한 자태를 잃지 않았던 이 세 분에게 불편한 기색을 담는 램프가 더는 꾹꾹 눌러 담길 수 없다는 듯 조금씩 새어 나와 나에게 느껴졌다. 그들의 불편함은 한 작품 앞에 서자 더 강하게 느껴졌다.
“흠흠... 우리가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나서 이만 가보겠네!”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정 형제들은 갑작스레 자리를 떴다.
3년 전, 이렇게 나는 나의 몇 안 되는 전시회 방문 중 가장 소중한 전시회와 만났다.
아마 전시회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전시회 비싸지 않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대중적인 문화 생활인 영화와 비교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요즘 상영관에 따라 10,000원~35,000원까지 치솟은 영화 티켓 가격
과 평균 15,000원 정도인 전시회 티켓값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얼리버드 구매나 다른 다양한 방식의 할인을 이용하면 최대 반값까지 가격이 내려간다. 내가 호안 미로의 전시회에 가게 된 것도 식당 앞에 있는
판넬을 사진으로 찍어가면, 호안 미로 전시회 티켓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문구 덕분이었다.
할인을 받고 기분 좋게 이 작가는 어떤 창의적인 관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시각화했을까 기대하며 전시장 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작품 앞에 섰을 때 나는 여태껏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내 안에서
요동침을 느꼈다. 그것은 행복을 넘어 나를 치유하고 지탱하는 감정들이었다.
4년 8개월 전, 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해외 유학을 갔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고 떠난 유학 생활은 도피처가 아닌 또 다른 도망쳐야 할 곳이었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생각하긴 했지만, 전제는 뚜렷한 목표가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21살의 나는 목표도 열정도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유학을 떠났고, 결과는 앞서 말한 대로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요인들 때문에 나는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현실을 피해 도망친 안식처도 사실은 안식처가 아니라는 절망감에 또 한 번 고통 받았다. 나는 이 생활이, 이 학교가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미래에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생활이 맞는지 날마다 고민했다. 혼란스러움, 막막함, 두려움이 나를 숨 쉴 구멍 하나 없이 치밀하게 덮어갈 때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방학이 다가왔고 한국에 잠깐 돌아왔을 때 나는 호안 미로의 전시회에 갔다.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그림을 감상하던 중 눈에 한 그림이 들어왔다.
바로 “무제/Untitled” 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호안미로 작, untitled(무제), Oil on canvas(캔버스에 유채), 92x73cm, 1978년 c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19
‘무제’라고 적혀있는 제목과 그의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림을 마주하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8년 동안 항상 그려왔던 꿈, 매주 빵 굽는 향기로 채워진 집
과 떠오르는 레시피 아이디어로 채워진 노트, 어시스트로 일하면서 느꼈던 좌절, 꿈을 포기한 뒤
나를 채운 공허함과 목표 없이 방황하며 불안과 막막함으로 흘려보낸 날들 그리고 내가 나에게
그어버린 선. 무제는 지나간 8년의 세월에서 좌절, 불안, 막막함, 공허함과 나에게 그은 선만을
골라내어 묵묵히 하얀 물감으로 덮다가 내가 그어버린 선에 다다랐을 때 여러 번 덧대어 칠하면
서 말을 건넸다.
‘미리 그어진 선 따위는 없어. 이제 수많은 갈림길 중에 겨우 하나를 선택해 걸어온 거고, 이제
다른 길을 걸어갈 때가 온 것뿐이야.’
나는 한동안 무제 앞에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나의 감정들이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진 후에도.
그날 나는 출구에 다다르면 다시 무제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반복해서 작품을 감상했다. 아픔을
호소하는 발에 못 이겨 결국 나가긴 했지만. 무제가 건넨 위로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에 그 당시 인
생을 살면서 겪지 못했던 큰 슬픔과 사건들을 마주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제를 떠올리며 나는 내 앞
에 놓인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호안 미로의 작품에서 더 나아가, 더 많은 그림을
보며 나의 불안함이나 막막함을 잘 달래곤 한다.
여러분들도 갑작스레 ‘부정 형제’를 맞이했을 때, 한 번 전시회를 가보는 건 어떨지 추천해본다.
어떤 말로도 채워지지 않고 어떤 모양으로도 구멍 난 마음을 메울 수 없었던 마음에 약간의 헐렁거
림이나 모양이 맞지 않는 곳 없이 알맞은 위로의 모양을 건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