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 없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무서움.
글을 쓰기 전 느낀 나의 유일한 감정이다.
나의 특기 중 하나는 바로 "상상력"이다.
물론 이 상상력은 좋은 곳으로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나의 걱정을 꼬리에 꼬리를 물도록 하는 부작용도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라는 말들을 듣지 않을까, 더 심한 질책을 받지는 않을까 나의 상상력이 나를 걱정의 무한한 대륙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진짜 "나"를 보여주는 연습을 하고자 자판기를 두드린다.
(사실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나를 감싸고 있던 껍질이 벌써부터 벗겨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인턴으로 일하던 스타트업은 평일보단 주말이 더 바쁜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정말 좋은 사람들, 자유로운 분위기 모든 게 완벽한 곳이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어딘지 모르게 점점 더 회사와 함께 걷는 길에서 혼자 샛길로 퐁 떨어진 것 같았다.
함께 맞춰가는 퍼즐에서 나만 계속 모서리 부분이 둥글어 양 끝이 네모난 자리에 맞지 않는 퍼즐만 찾는 그런 느낌.
벌써 주말이야? 가 아니라 벌써 5월이야? 를 말할 만큼 일에 집중했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시각적으로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보여줄 수 있었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은 점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본인만의 색들이 강한 사람들과 있어서 “나”를 잃어버리고 그들에게 흡수되고 있었던 건지, 처음 일을 해봐서 그런 건지 지금까지도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점점 공기처럼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일이 바빠진 6월에 스케줄을 담당하는 분이 나에게 요청을 했다.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주말에 혹시 일을 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숨이 턱 막혀왔다.
주말까지도 회사에서 일을 한다면 정말로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나를 이루고 있는 탑에서 조각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와 탑의 가장 밑부분까지 무너져내리다 주말이 되면 가까스로 “나”라는 탑을 다시 쌓아 완성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주말까지 일을 하게 된다면..
나는 그나마 남아있던 탑의 밑부분에 누군가 폭탄을 놓아 탑을 다시 쌓을 수도 없게, 탑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릴 거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뇌를 점령했다.
"음…. 그때는 제가 못할 거 같아요."
1초간 정지해있던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어 답했다. 이 말밖에는 내뱉을 수가 없었다.
"꼭 주말에 본가로 가셔야... 하나요?"
평소 굉장히 말을 돌려서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게 말씀하던 분이었는데 다시 나에게 꽤 직구로 의견을 여쭤봤다.
전날에 물어볼 만큼 정말 회사가 바쁜 건 알지만, 나의 몸도 바쁘게 반응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진하게 내 귀를 울리고, 내 혈관을 도는 피들이 어느 때보다 위급하고, 선명하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진짜로 네가 잡아먹힐 거야"라는.
나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결국 빈자리는 다른 직원분이 채웠다.
"하라면 해야죠." 나는 뒤돌아 있었지만 나의 뒤통수를 보며 답하는 게 느껴졌다.
2명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 머물렀고.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도 왜 헛웃음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
퇴근을 하고 나는 본가로 돌아갔다.
내 방 침대에서 천장을 보며 나는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내가 다시 하나로 맞춰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느꼈다.
그리고 드는 확신.
오늘도 일했으면 난 진짜 내가 사라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다.
사실 주말에 일한다고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을 일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하는 시간은 2시간.
고작 120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2시간은 나에게 짧게 스쳐 지나가는 120분이 아닌 나를 형체도 없이 집어삼킬 "120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적이었다.
나는 날카로운 이빨로 나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릴 천적 앞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친 것이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죄송하다.
정말 바쁠 시기에 그저 본가를 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빠졌으니.
하지만, 나는 내가 먼저다. 우선 내가 존재해야 한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그분들에게 나는 정말 이기적인, 눈치 없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도 내가 정말 이기적이라는 걸 다시 한번 정확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확신했다.
“아 나는 정말 회사생활이랑 안 맞는구나”라는 사실을.
사실 고작 한 회사에서, 고작 6개월 정규직도 아니고 인턴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리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모든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까.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항상 프리랜서가 될 거야 다짐했던 나에게 옳거니 인턴으로 있었을 때 이런 일들이 있었으니까 난 역시 프리랜서가 맞아.라는 식의 끼워 맞추기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니까. 결론도 내 방향대로 내려고 한다.
인간 요안이라는 탑이 무너지고 다시 쌓고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인간 요안으로서의 탑을 계속 쌓을 수 있는 그런 일을, 그런 프리랜서가 되어야겠다는 결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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