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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안 Aug 16. 2020

자연스러움도 연습이 필요해

"나"를 보여주는 게 여전히 어색한 나

최근에 데일리룩을 시작했다. 

원래부터 옷을 워낙 좋아하고 시간이 조금 남는다 싶으면 망설임 없이 옷장에서 이 옷, 저 옷 모두 꺼내어 방바닥에 어질러 놓고 나 혼자 패션쇼를 즐겨하곤 했는데 옷을 입은 나의 모습이 항상 거울 속에서만 짧게 존재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동생이 말했다.

"누나, 누나 오늘 코디 진짜 이쁜데 누나 옷 잘 입으니까 인스타 데일리룩 해봐."


그렇다. 내가 누구냐. 또 행동력 하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요안 아니던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하지도 않던 SNS의 계정을 만들고, 이번 주 주말에 어떤 옷을 찍을지 생각하고 포즈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눈 빠지게 기다리던 주말이 되고 나는 미리 봐 두었던 푸릇푸릇함이 잔뜩 묻어나는 우리 집 앞 미니 오솔길에서 데일리룩을 촬영했다. 처음엔 포즈 잡는 것도 너무나도 어색하고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괜히 부끄러워 가자기 핸드폰 보는 척을 하고 했었는데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어느 상황에서나 옳은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 포즈도 자연스러워지고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촬영에 열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데일리룩을 찍고 나니 정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쪽 얼굴이 사진을 더 잘 받는지,

나는 어떤 포즈가 잘 어울리는지,

내가 즐겨 입는 코디는 어떤 코디인지 등등 말이다.


사실 초반엔 협찬을 받자! 는 목적으로 데일리룩을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내가 평소에 입는 코디가 영원히 사진으로 남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데에 푹 빠져버렸다.  역시 나는 관종끼가 바글바글하다는 걸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사계절을 담은 룩북을 만들자는 나의 목표도 추가됐다.


아마 3개월쯤 운영을 했었을까, 첫 번째 작은 위기가 나를 찾아왔다. 

위기는 단순했다. 

"옷이 없다"는 것이 위기였다. 

돌려 입기도 점점 끝을 보이는 듯했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서 옷을 살 돈은 없고 그리고 날씨도 곧 있으면 가을로 넘어갈 날씨라 여름옷을 사기에도 애매했다. 


고민하다 주 5회 업로드를 주 4회로 줄이기로 결정했고 8월 셋째 주의 마지막 콘텐츠를 올렸을 때 이제 돌려 입기가 끝나간다라는 멘트를 함께 스윽 넣어 업로드했다. 


돌려 입어도 예쁘다, 코디가 너무 잘 어울린다 등등 따뜻한 말들을 많은 분들이 해주셨지만 

유난히 진심이 담긴 댓글들이 들어왔다. 


"예쁘게 입는 것 말고 그저 일상에서 입는 옷들을 올려줘도 괜찮으니 꾸준히만 올려주세요."라던가

"어떻게 입어도 다 요안 님의 매력이 느껴지니 괜찮다 그저 행복하게만 있어주세요 :)"라는 댓글들을.


"뎅~"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나는 솔직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인스타를 시작했을 때는 분명,

 나는 내가 입는 모든 옷들을 가감 없이 올릴 거야.

내 취향이 가득 담긴 내 코디들로 사람들이랑 소통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조금 더 꾸며진 코디만을 올리고 있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 나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과 만난 셈인 거였다. 진짜 "나"는 가면 속에 철저하게 숨긴 채로. 


심플하면 심플할 수 록 옷보다는 그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 눈빛 등이 그 사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셈이니

정말 일상의 옷들이야말로 나의 매력들을 그대로 발산해주는 아이 들일 텐데 나는 꾸며진 나의 분위기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던 셈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자연스럽게 "어떤 옷을 입어야 하지?"라는 고민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저 내 일상, 슈퍼마켓 가는 룩, 야밤에 남자 친구와 산책하는 룩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진정한 나를 보여주는 것일 테니 그런 코디들은 돈을 쓸 필요도 없이 언제든지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이 작은 일을 계기로 나는 나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진짜 내가 아닌 꾸며진 나의 모습만을 선별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됐고, 어쩌면 정말 "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가장 인위적인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나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내가 평소에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하고, 어떤 옷을 입는지 관찰해야 남들 앞에서도 100% 나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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