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안 Aug 10. 2020

나라는 사람의 모순.

뛰어난 적응력 VS 모순투성이

사람의 마음은 어디까지 합리화될 수 있을까? 

사람은 어디까지 완벽한 적응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나"라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나는 SNS에 데일리룩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아니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나의 핸드폰 이야기부터 하자면 나는 뼛속부터 우러나는 진한 애국심의 탈을 쓴 아주 미세한 기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핸드폰이란 그저 전화만 잘 걸리면 되고 인터넷 검색만 잘되면 그만인 기계인셈이다. 


하지만 SNS에 데일리룩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진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이폰 갬성"의 "아"에도 관심이 없던 나는 이래서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구나를 매 순간마다 느꼈다. 결국 마지막 인턴 월급을 탈탈 털어 25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외국물만 먹은 아이폰과 만났다. 


그러나


"아이폰을 샀다."


 단 6글자로 나의 상황을 표현하기까지 2개월 동안의 수많은 고민의 숲을 헤맸다. 몇 번이나 집 앞의 가전제품 매장을 방문해 아이폰들을 만지작 거리고,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폰 사용 관련 유튜브도 봤다. 사실 나에게 아이폰을 사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갈림길이었기 때문에 더 꼼꼼하게 알아봤다. 아이폰을 사려던 그 돈은 운전면허학원을 가려고 모아둔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따서 운전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들보다 높은지 꼼꼼하게 비교했다. 


2개월 동안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맨 결과 나의 뇌는 명령을 내렸다.

"아이폰으로 바꿀 것을 명령한다. 땅땅땅"


구매는 고민의 2개월이란 시간을 단 2초로 압축해버릴 만큼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됐고 그렇게 일요일 오후 1시. 우리 집 문 앞으로 드디어 아이폰이 도착했다. 아직 약정이 끝나지 않아 약정이 끝날 때까지 아이폰은 데일리룩 촬영을 할 때만 잠깐잠깐 사용하고 고이 서랍에 넣어 모셔두었다. 


그리고 대망의 약정이 끝나는 8월 8일. 

나는 오전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한편으론 애써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꾹꾹 눌러 외면하려던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기계에 대한 욕심이 크게 없지만 기계를 살 때 내가 보는 단 한 가지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크기"였다. 


"뭐든지 큼직큼직하게 잘 보여야 해."

나는 뭐든지 커다란 것을 좋아한다. 

소형자보다는 SUV를, 작은 화면보다는 큰 화면을 그리고 이상형을 말하자면 여리여리한 모델핏을 가진 사람보단 덩치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원래 내가 쓰던 핸드폰 화면 안으로 쏙 들어가는 아기자기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아이폰을 매장에서 만지작거리면서 많은 걱정을 했다.


'나는 큰 핸드폰들 위주로 사용했는데 혹시라도 너무 화면이 작아서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밀려오는 걱정들을 겨우겨우 마음속 깊은 기억 어딘가에 던져놓고 아이폰과 만난 나는.

다시 걱정의 늪에 빠졌지만 나는 의외로 그 늪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12시가 되고 나는 본격적으로 아이폰을 사용했고, 금세 아이폰에 적응했으니까. 


그 전 휴대폰보다 크기가 작아 가벼운 점이 너무 좋았고,

기본 앱들도 삭제를 할 수 있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앱들만 놓을 수 있는 점이 좋았고,

심도 조절로 더 나은 데일리룩 사진 퀄리티를 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좋은 점들 중, 가장 좋았던 특징은 엄청 좋고 예쁜 장난감을 가진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최첨단 기술과 심플한 외관을 갖추고 나에게 다시 나타난 기분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작은 크기의 핸드폰이어서 그런지 장난감 같은 아이폰은 어렸을 적 얘뻐했던 바비인형과 로봇을 뛰어넘는, 전화도 할 수 있고, 웹툰도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많은 기능을 갖춘 25세가 가지고 놀기에 완벽한 장난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카톡을 할 때마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카톡도 보내지네? 인터넷도 되고!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러다 문득 10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핸드폰이 너무 작아서 적응을 못하면 어떡하지?' 고민하던 나의 모습.

다시 내가 10분 전까지 쓰던 핸드폰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떻게 내가 저렇게 무식하게 큰 핸드폰을 2년 동안 들고 다녔지?' 


정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지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참 모순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야 할지


어려운 순간이었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어떤 인생을 살아가도 그 인생을 수긍하며 흘러가듯 살아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살자 라는 내 신조에 철저하게 위반되는 생각이었지만, "나"라는 사람은 항상 모순을 보여주는 사람이니 사실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발버둥 쳐야 한다는 말을 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내가 그리지 않은 삶에 스며들어 평생을 살지 않도록 말이다.

오늘도 완벽한 적응력과 나의 모순된 면을 보면서 나는 다시 내가 그리는 삶을 현실에서도 그릴 수 있도록 발버둥을 치러간다.



작가의 이전글 프리랜서 지망생 글 한 편 올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