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의 삶

by 실배

우리는 맞벌이 부부이다. 각자 아이를 담당하는 요일이 있다. 아내는 월, 화, 목. 나는 수, 토. 금요일, 일요일은 공통이다.


아내는 프리랜서로 놀이 치료를 하고 있다. 그래서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에는 시간을 조율해서 아이들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놀이 치료는 토요일이 가장 바쁘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 6시가 넘는다. 그럼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벌써 이 생활이 7년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참 많이 힘들었다. 나는 나름 가부장적인 집안의 막내이자 장남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부엌 근처에 올라치면 남자는 이런 곳 오는 것 아니라고 성을 냈다. 그러니 결혼할 때까지 라면 정도 간신히 끓이고, 청소와 빨래는 남의 나라 일이었다. 결혼 후 그나마 빨래와 청소는 단련이 되었다.

처음 5살 아이와 이제 막 돌이 지난 막내와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가장 큰 문제는 먹는 것이었다. 매 번 외식할 수도 없고, 집에 있는 반찬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레시피 보고 조금씩 연습해서 지금은 간단한 국정도는 끓일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주변 사람들과 농담할 때 결혼해서 그나마 사람 형태를 갖추었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사람 만들어 볼 생각이다.

하필 그 시절 주말에 출근해야 할 일이 자주 생겼다. 일요일은 교회 때문에 갈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유모차를 챙겨서 카시트에 둘째 앉히고 함께 출근했다. 유모차에서 간신히 둘째를 재우면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가끔 같이 출근한 여자 계장님께서 똥 기저귀도 갈아주시고, 애들 간식도 챙겨주셔서 참 고마웠다.


경조사도 문제였다. 사회생활하는데 안 갈 수도 없고. 애 둘 데리고 가면, 간신히 얼굴 비치고 밥 먹고 오는 것이 다였다. 서른 넘어서부터 취미 붙인 등산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어떠한가. 결혼 전 잘 다니던 정규직 상담센터는 첫째를 낳고 퇴사했다. 아이를 좀 더 키우고 싶은 상황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하던 공부도 중도에 포기했다.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토요일에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8~9 케이스 치료하고 있다. 집에 올 때면 물에 젖은 빨래처럼 축 처져있다. 불규칙한 식사 때문에 만성 위염도 앓고 있다. 어느새 아내는 직장인, 엄마, 아내로 슈퍼 맘이 되어있다. 둘째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치료를 조금 줄이려고 했지만, 늘어나는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오히려 일을 늘리고 말았다. 가끔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싶다고 하지만, 외벌이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넋두리로만 남는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천근만큼 무겁다. 주머니 속이 뻔히 보이는 평범한 회사원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 삶을 선택한 것일까. 진정 우리를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결국 아이들 때문이다. 하나라도 좋은 것 주기 위해 오늘도 고된 하루를 살아간다.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걱정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세상이 이렇게 힘든데 참. 그럼 팍팍 도와주던가. 요즘 젊은 사람이 결혼도 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은 상황을 과연 뭐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커 준 것이다. 주말에 엄마 없이 부족한 아빠 옆에서 불평 없이 잘 지내주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아빠와의 추억을 아이들과 원 없이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아마 우리는 당분간 이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아니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아이를 위해서 열심히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아내가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나도 지금 마음속에만 품고 있는 꿈을 놓치고 싶지 않다.

천천히 걸어가자. 언젠간 만날 이 길의 끝을 위해.


이전 07화부적 감정이 다가올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