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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12. 2020

두발자전거를 탄다고요?

숱한 실패 끝에 얻은 달콤한 열매

갈지자로 비틀거리는 모습을 뒤에서 애가 타게 바라보았다. 페달에 왼발을 얹고 이제 오른발로 치고 나가면 되는데, 또다시 발이 땅에 닿았다. 에고. 왜 안 될까. 슬슬 애간장이 분노로 길을 건널 판이다.
 
아내의 부탁으로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들이 10살 때 한 번, 11살 때 두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라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했다. 벌써 13살이나 되었는데 아직도라니.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아들과 둘이 자전거로 한강까지 가기였다. 내 오늘 기필코 이루리라.
 
근처에서 따릉이를 빌려 안양천으로 향했다. 내가 잡아주겠다는데 혼자 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얼굴에는 굳은 의지가 비쳤다. 아들은 자전거에 올라타 나름 힘차게 나간 듯 보였으나 똑바로 가지 못했다. 문제는 손잡이를 잡은 손이었다. 넘어질까 봐 겁이 나 자꾸 손을 놔버렸다. 도저히 안 되겠어 내가 뒤를 잡아주기로 했다. 아들 허리춤을 잡고 가보라고 했다. 내 양팔에도 힘이 꽉 들어갔다. 아들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다는 믿음 때문인지 제법 나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순간 균형을 잃고 옆으로 고꾸라졌다. ‘쾅’하는 소리가 적막을 찢었다. 놀라 달려가 보니 손이 조금 까졌을 뿐 괜찮았다. 다행이었다. 아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서 까마득한 기억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주변 친구들이 슬슬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발자전거를 탔다. 커다란 바퀴 옆에 앙증맞게 붙어있는 조그만 녀석이 신경 쓰였다. 자전거를 마당 한구석에 두고 타지 않았다. 어머니께 두발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더니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얘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오매불망 아버지만 기다렸다. 그 당시 지방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1년에 몇 번 얼굴 보기 힘들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얼마 뒤 아버지가 서울 본사로 출장 올 일이 생겼고, 며칠 동안 집에 있기로 했다. 아버지가 집에 오자마자 자전거 이야기를 꺼냈고, 주말에 알아보겠다는 답을 얻었다.
 
주말이 왔다. 아버지는 발자전거를 보더니 보조 바퀴만 빼면 되겠다고 하면서 새 걸 사주지는 않았다. 아쉬웠지만,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마음에 상관없었다. 자전거를 끌고 동네 공터로 향했다. 아버지는 나 혼자 자전거를 타보라고 했다.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가보려 했으나 계속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균형 잡기 어려웠다. 몹시 속상했다. 마음은 이미 힘차게 앞을 향해 가고 있는데, 몸은 계속 제자리였다. 반복되는 실패에 분했다. 눈물까지 송글 맺혔다. 그렇게 혼자 낑낑거릴 동안 뒤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안 되겠는지 나를 불렀다. 뒤에서 잡아 줄 테니 천천히 가보라고 했다. 아버지의 큼지막한 손이 등에 닿았다. 팔에 힘을 주고 공터의 빈 곳을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다소 흔들렸으나 이내 중심을 잡았다. 한 발, 두 발 신기하게도 나는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아버지를 불렀으나 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는 저만치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잡아주다 이내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신나게 전진했다. 결국, 아버지의 전략으로 그날부터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아들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팔은 멀리서도 벌벌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1시간이 넘었다. 따릉이 대여 시간이 지나 초과 요금이 부여된다는 문자가 왔다. 아들은 30분만 더 연습하겠다고 했다. 한편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려는 모습이 어딘가. 그래도 조금씩 자전거 위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잠시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아들의 비명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와. 아들이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인도 신나 소리를 친 것이다. 운동장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나는 연신 아들 어깨를 두드렸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돌아오는 길, 각자 나름의 뿌듯함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평소 표현 적은 아들이 조잘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기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아들의 두 발 자전거 타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마주칠 수많은 실패 속에서 이런 자그마한 성공이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연습하겠다는 아들에게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가을이 찾아오면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까지 갈 수 있겠지.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슬쩍 아들 옆구리에 손을 넣고 발걸음에 내 발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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