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뜬금없는 질문이 고개를 내밀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아내와 여행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와 달리 아내에게 내 의견을 고집했다. 조용한 섬에 가고 싶었다. 아내도 좋다고 했다. 며칠 뒤 아내는 전남 신안에 있는 리조트를 보여주었다. 더 깊숙한 곳의 민박집을 떠올렸으나 생각에만 그쳤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내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닌가.
신안으로 바로 가기엔 거리가 부담되었다. 첫날은 군산에서 하루 머무르기로 했다. 군산은 3년 전 아들과 둘이 여행을 다녀온 곳이다. 반가운 공간을 다시 만나 들뜬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내와 딸에게 추억을 설명하느라 바빴다. 아쉽게도 아들은 기억에서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군산 근대화 거리에서 초원 사진관을 구경하고 히로쓰 가옥으로 이동했다. 나는 가옥보다 아들과 머물던 게스트하우스가 더 궁금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이웃’. 옥상에 조그만 테라스가 있어, 일정을 마치고 밤에 고즈넉한 히로쓰 가옥을 보며 나는 맥주 한잔, 아들은 음료수를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 한 가지를 찾았다. 바로 ‘추억을 발견하기’
둘째 날, 고추 짜장으로 유명한 지린성에 들러 아점을 하고 바로 신안으로 떠났다. 근처에 도착하니 ‘슬로 시티’라는 커다란 간판이 우릴 반겼다. 슬로 시티는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 나는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느림의 삶을 추구하자.’라는 뜻이다. 내 마음이 그 안에 모두 담겼다.
리조트의 외관은 마치 외국에 온 듯했다. 울창한 자연 속에 이국적인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프라이빗 해변이 있어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둘러 짐을 풀고 바닷가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긴 했으나 우리의 발길을 막을 순 없었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보드라운 촉감이 내 중추신경에 침입하여 ‘기분 좋음’을 마구 전달했다. 어느새 손에 놓여있던 우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비를 흠뻑 맞으며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그간 나를 옥죈 짐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어느덧 바다는 푸른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변했다. 하늘도 조금씩 어두운 기운이 돌았다. 바닷물은 금세 차가워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찾아왔다. 온몸 가득 모래를 잔뜩 묻은 체 자줏빛 모래사장을 터벅터벅 걸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거센 것을 보니 떠나는 우리가 못내 아쉬운가 보다.
나는 오른손을 아들 허리춤에 끼고, 아내는 딸의 손을 꼭 잡고 리조트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우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내내 깔깔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