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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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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06. 2020

어느, 여느 직장인.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살짝 발 뒤꿈치를 들고 얼른 씻으러 화장실로 향한다. 아침은 간단히 선식으로 때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스 푸르무레한 하늘 아래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앞 뒤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까지 쓰니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얼른 구석 자리를 비집고 잡아 나만의 글쓰기 시간을 가진다. 핸드폰 조그만 자판으로 조몰락거리다 보면 어느새 배시시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누가 볼세라 얼른 주변 사람 표정을 짓는다.


대충 글이 마무리 질 때쯤 회사에 도착한다. 아침부터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메일과 메모들로 현실을 마주한다. 벌써 직장 14년 차, 이제는 일도 익숙하고 편해질 만도 하련만. 일이란 존재는 당최 적응 불가다. 박차고 나가서 꿈을 이뤄 보리라 하지만, 마음 안에서만 열심히 헤엄친다.


들이 소위 말하는 철밥통 안에 들어가 굴러 먹은 지도 오래도 되었다. 조직이 싫다면서 누구보다 조직적이었다.  글쓰기를 만나기 전 이곳은 전부였다. 승진, 성공, 회사가 만들어 놓은 온갖 기준에 나를 맞추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저 나는 그 안에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글쓰기를 시작하고, 주중 000, 주말 실배란 이름으로 살아보겠다고 다짐했건만, 000이 자꾸 영역을 침범한다. 벌써 토요일의 반을 잠식했다. 이러다 먼지처럼 사라질까 두렵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허겁지겁 밀린 일을 처리했다. 하나 둘 사라진 사무실에 나 홀로 남아 서류 정리를 하며 문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재미없이 늙어가는 것일까. 생각과 다르게 손은 분주했다. 미쳐 다 처리하지 못한 일을 남겨두고 서둘러 컴퓨터를 껐다.


어두 컴컴한 밤하늘은 갈 길을 재촉했다. 이번에 지하철을 놓치면 자정에 도착이다. 조금 뛰었더니  습기를 가득 먹은 몸뚱이가 찝찝했다. 다행히 냉기 가득한 에어컨 바람에 몸을 식힌다.


별 반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연속이다. 언제쯤 반짝거리는 해를 보고 퇴근하는 날이 올지. 그래도 어김없이 주말을 다가온다. 실배로 짠하고 변신할 주말을 몹시 기대하며 고된 하루 속에 나를 흘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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