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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08. 2020

이러다 죽는다고요!

누가 내 심장을 손으로 꽉 잡았다.

갑자기 심장을 누가 손으로 쥐어짠 듯 아팠다. 점심도 못 먹고 일처리 하다 잠시 물 마시러 정수기 앞에 서있을 때였다. 심한 고통으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러기를 수 분. 서서히 고통은 사라졌고,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왜 이러지. 나 어떻게 되는 것 아냐. 불안, 공포가 코 앞까지 다가왔다.


하긴 한 달간 내내 무리했다. 새벽 7시 반에 출근해서 밤 11시가 넘어 퇴근했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4~5시간도 겨우 잤으려나. 최근에 한 사람분의 업무가 고스란히 넘어오면서 미칠 듯 바빴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었다. 며칠 전 회사 상담센터에서 심리 건강 체크해준다는 홍보 문구가 떠올랐다. 무작정 전화를 걸고 예약을 잡았다.


상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푸근한 인상의 선생님이 나를 방으로 인도했다. 나에게 몇 가지 묻고 컴퓨터와 연결된 집게를 내 왼쪽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곤 설문지를 작성하라고 했다.

1. 마음이 불안하고 힘든가요
2.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요.
3. 일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가요.
4. 때때로 화가 날 때가 있나요.
5. 잠을 잘 이루지 못하나요.
6.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자책할 때가 있나요.
7. 머리가 아플 때가 있나요.
.
.
.
.

내 손은 연신 맨 오른쪽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바빴다.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매우 그렇다.'


설문지를 마칠 때쯤 컴퓨터로 내 결과가 나왔다. 한눈에 빨간 그래프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급성 스트레스 위기 상황'이었다. 선생님의 얼굴이 급 어두워졌다. 검사 결과를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지금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고 있고, 신체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 바싹 긴장 상태라고 했다. 나는 최근에 심장이 아팠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주말에는 걷거나 뛰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들은 선생님은,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요! 당장 운동을 그만두세요."


아니 운동을 그만두라니. 그거라도 안 하면 정말 죽은 것 같은데. 선생님은 놀라는 나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운동도 몸의 에너지가 적정할 때 하는 거예요. 지금 과도하게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서 무리를 하다가는 쓰러질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예전에 상담했던 사례를 이야기해주었다. 복직 후 과도한 업무로 그날도 주말에 출근한 내담자는 쉴 때 운동한다고 계단에 오르다가 그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순간 뒷 목이 찌릿했다.


선생님은 몇 가지 이완 훈련을 알려주었다. 앞에 보이는 사물 중 색깔이 있는 것을 답해 보라고 했다. 노란색 연필, 파란색 우산, 빨간색 전화기 등을 답하며 몸 안에 긴장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과하게 집중된 상황을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을 크로스로 끼운 체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게 만들어 양쪽 가슴을 번갈아 두드리라고 했다. 잠시 눈을 감고 '심장아 괜찮아.'를 마음속으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 동작을 반복하면서 눈 꺼플이 한없이 주저앉았다. 선생님은 풀린 눈을 보며 이제야 몸이 제대로 이완된 것 같다고 했다. 몸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왔다.


선생님은 얼마 전 심장이 아픈 것이 전조 증상이라고 했다. 몹시 걱정되는 얼굴로 일을 조정할 수는 없냐고 물었다. 나는 어렵다고 답했다. 그래. 지금 나는 한 사람이 하기엔 비정상적으로 많은 일을 맡고 있다. 부당함에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조정될 기미는 안 보인다. 떠나야 한다. 방법은 그것뿐이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사냥꾼 타입이 적합해요. 실배씨는 사냥해온 음식을 사람들과 도란도란 나눠 먹으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 맞는 사람 같아요. 그런데 지금 사냥꾼 역할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렇다. 승진 한번 해보겠다고 본부에 올라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일은 그렇다 치고 하루에 말 한마디 하기 힘든 경직된 사무실 분위기 속에 점점 시들어갔다. 그까짓 승진 좀 늦으면 어때. 지금보다 훨씬 여유로운 일선으로 돌아가  삶을 챙겨야지.


상담실에서 나오며 결심이 섰다. 올해 말에 본부 근무를 마치고 내려와야겠다. 이러다 쓰러지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적당한 때에 인사 담당자와 면담을 해야겠다.


상담실을 찾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이대로 계속 무리를 했다면 지금쯤 어느 바닥에 누워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밖은 갑자기 햇살이 환하게 비췄다. 기분 탓 일까. 유난히도 밝게 느껴졌다. 이제 그 빛을 뒤로한 채 어두운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크게 한 숨을 내쉬며, 그래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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