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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09. 2020

비 오는 밤, 맥주와 재즈 그리고 영화

- 영화 A Rany Day in New York 중 -


비가 끝도 없이 온다. 아내와 아이들은 드라마 본다고 방으로 사라졌다. 거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책을 읽었다. 몸은 비를 맞은 듯 푹 가라앉았다. 그래. 맥주가 필요해. 아내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 온 세계 맥주  개 중 하나를 꺼냈다. 맥주잔을 찾다 보이지 않길래 눈에 보이는 와인 잔을 선택했다. 맥주를 따르며 와인 잔이 자줏빛이 아닌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면이 묘했다. 그 효용을 떨어뜨리는 미안함 반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한 설렘 반.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에일 맥주 맛을 느끼며 이제 막 책이 세계로 들어갈 무렵 뭔지 모를 부족함을 느꼈다. 아. 맞다. 핸드폰에서 멜론을 켜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갔다. 이런 날은 재즈가 정답이지. 6월 29일 자로 저장한 ‘비와 맥주 한잔 그리고 감성 재즈 보컬’의 첫 번째 곡을 틀었다. 은은한 재즈 음악이 비 오는 창문 너머로 넓게 퍼졌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책을 덮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발에 수갑을 채운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감성 충만한 날은 영화가 보고 싶다. 발길을 돌려 냉장고에 가서 기네스 흑맥주 한 캔을 꺼내 들고 의자에 앉았다. 핸드폰 검색창에 ‘비, 재즈, 영화’를 쳐보았다. 제목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A Rany Day in New York’ 우디 알렌의 영화였다.

어릴 때 우디 알렌의 영화를 참 좋아했다. 그의 영화 속에 표현되는 뉴욕은 내 마음 한편에 동경이란 이름을 새겼다. 오래전 출장으로 뉴욕에 갔을 때,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장면을 거닐며 얼마나 흥분했던지 동행한 일행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사생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곤 그의 영화는 나에게 사라졌었다.      


  ‘I got lucky in the rain’이란 흥겨운 재즈 보컬의 목소리로 영화가 시작한다. 이어지는 주인공 개츠비(티모시 샬라메)와 애슐리(엘르 패닝)의 수다 향연.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올랐다. 대학에서 학생 기자로 활동 중인 애슐리는 유명한 영화감독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겨서 남자 친구인 개츠비와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은 개츠비의 고향이기도 하다. 츠비는 애슐리와의 로맨틱한 하루를 상상하지만, 기대와 달리 일은 계속 꼬여가고 그러던 중 우연히 예전 연인의 여동생 챈(셀레나 고메즈)을 만나게 되고 둘 간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사실 내용은 별것이 없다. 개츠비는 비를 맞으며 뉴욕 도시 곳곳을 배회하고, 애슐리는 선망하는 감독, 작가, 배우와 차례로 엮인다. 그나마 개츠비와 이 만나는 장면이 특색 있다랄까. 오래간만에 본 우디 알렌의 영화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늘 우연 속에 필연을 가장한 클리셰적 구성이다. 그럼 뭐 어떠랴. 비, 뉴욕, 재즈, 사랑만으로도 다했는 걸. 특히 개츠비가 셀레나의 호텔방에 놓인 피아노에 앉아 재즈 ‘Everything Happens To Me’를 부르는 장면은 중년 아재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오늘 잠은 다 잤네.


노래를 마친 개츠비가 피아노 건너편에 서 있는 챈과 대화를 나눈다.      



“영화를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회색빛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리고, 옆은 안개가 내린 뉴욕. 연인이 6시에 보기로 했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안에 시계 밑에서 만나는 것이 어때?”


“나도 그런 영화 좋아하지만 밖에서 만나는 것은 더 좋아.”


“아. 알겠다. 시계 아래서 만나게 하자.”


“무슨 시계?”


“델라코트 시계 있잖아. 센트럴 파크 동물원 근처에”


“그거 좋지. 오래된 영화에서 자주 나온 장면.”      

    


과연. 그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츠비가 'everything happen to me '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노래부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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