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에 일찍 출근한다. 요 며칠 계속되는 ‘일찍 눈 떠짐’ 현상으로 인하여 새벽 5시면 일상이 시작된다. 사실 회사에 가면 좋은 점이 많다. 근무 시작 전까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조용한 가운데 책을 보거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끄적거린다.
회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 길 한편에 모여 있는 한 무대기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배달 오토바이 여러 대가 어지럽게 서 있었고, 그 앞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네 명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깔깔대고 있었다. 그중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이번 주 우리 반에서 교육을 받는 A였다. 나는 A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잔뜩 짜증 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 씨 x 뭐야?” “뭐긴. 나다. 이놈아.” 순간, A의 당황한 모습이 내 눈에 비쳤다. 잔뜩 구겨진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짝 펴졌다. 눈은 반쯤 풀렸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나는 사무실로 A를 데리고 들어왔다. 분명 어제 목이 터져라. 교육을 했건만,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에 화가 났다. A와 대화를 나누었다. A는 친구들과 밤새 집에서 술을 마시다 잠시 바람 쐬러 밖으로 나왔고, 하필 그때 나와 마주친 것이다. “너는 꿈이 뭐냐?” “작년까지 꿈이 있었는데, 다 사라졌어요.” “왜?” “꿈이 체육 교산 데요. 먼저 체육 교사가 되려면 대학을 가야 되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중퇴를 했는데, 검정고시를 보려고 이것저것 다 알아보았거든요. 그런데, 실천이 안 돼요. 학원도 등록하려 했는데 시기를 놓쳤고.” “그럼, 지금 뭐 하고 지내는데?” “작년 말까지는 일했었는데. 그만두어서 지금은 그냥 집에 있어요. 가끔 친구들 만나고. 사실, 저도 불안은 한데. 그게 제 생각대로 잘 안 되니깐 답답해요.” 대화를 마친 후 약간의 훈계를 하고 A를 교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나는 비행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매주 규칙이나 법을 어겨 학교, 검찰, 법원 등에서 의뢰된 학생이 나를 찾아온다. 이 교육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교육을 수료하지 못하면 엄중한 법적 처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19살이 되는 A는 교육만 벌써 3번째이다. 가정에서의 관심과 지원도 이미 멀어진 상황이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면 맨몸으로 정글 같은 세상에 던져진다. 그래서 더 걱정된다. A가 이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갈 수 있을까. 한때 나는 비행을 예방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로나 꿈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원빈의 유명한 대사 '난 오늘만 산다.'처럼. 오늘만 살고 내일을 꿈꿀 수 없다면, 비행의 검은 손짓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교육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가정과 사회 모두가 함께 싸워야만 그 반복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내가 처음, 이 직장에 들어왔을 때 퇴직을 앞둔 선배 한 분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신 선생. 내가 벌써 이 일을 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내가 가르친 그 수많은 아이 중 단 한 명이라도 바른길을 찾아갔다면, 나는 성공한 것 같으이.”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일일인 것 같다. 그만큼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있을 순 없다. 바위에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 체육 교사의 꿈이 사라진 푹 꺼진 A의 검은 눈동자가 계속 떠오른다. 그에게 내일을 꿈꾸게 하고 싶다. 나는 계속 넘어지고, 부딪쳐도 묵묵히 그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