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받고 글을 쓴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첫 글을 발행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주변이 온통 글 잘 쓰는 작가로 가득 찼다. 이런 곳이구나. 그저 소소한 일상을 담는 내 글이 초라해 보였다. 발을 잘 못 들인 걸까.
평소 써 놓았던 글 중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을 퇴고해서 올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렸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아는 지인 몇몇이 방문했을 뿐 썰렁했다. 그리고 다음 글, 그다음 글도 그랬다. 메인에 빵빵 터지는 글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때부터 다른 작가님들 글을 보기 시작했다. 오. 개성 있는 문체와 생각지도 못한 영역의 글까지 끝도 없이 깊은 바다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 길을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지겠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나 다운 글을 쓰자였다.
그냥 묵묵히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썼다. 그러다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상상 못 할 조회수도 맛보고 간혹 인기글에 선정되는 기쁨도 찾아왔다. 매주 브런치에서 보내주는 글을 받아보며 언제쯤 내 글도 이런 기회를 얻을까 했는데 직장생활과 걷기를 연결한 '하정우가 왜 걷는지 이제야 알겠네.'란 글을 보내겠다는 브런치팀의 연락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겠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일도 있구나.
글을 쓰면서 조금씩 소통하는 작가님도 생겼고 서로의 글을 응원하며 전우애를 쌓았다. 글은 사람 마음을 여는 마법의 힘이 있다. 어떤 글을 쓰겠다는 부담감은 줄었고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며 그 자체를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지난주 잠시 점심때 회사 주변을 산책했다. 브런치 특유의 드르륵 하는 알람이 울렸다. 누가 새 글을 올렸나 하며 보았더니 작가에게 제안하기였다. 메일을 열어보니 맙소사 출간 제의였다. 내가 발행한 매거진이 출판사의 글의 방향과 맞아 출판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몇 번의 연락이 오가고 급히 미팅이 잡혔다. 이번 주 월요일 담당자분이 직접 회사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여나 내가 쓸 수 없는 글을 원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기우였다. 마흔이 넘어 맞이한 전과 다른 일상을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담고 싶은 것이 기획 의도였다. 지금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쓰고 싶은 글 길이었다. 계약 조건도 생각하는 범위 안에 있었다. 미팅 말미에 담당자분은 기획 의도에 맞는 글을 한편 써서 보내달라고 했다. 마지막 테스트인가 싶었다.
집에서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진전이 없었다. 분명 내가 써왔던 글인데 왜 이러지. 그런 나를 옆에서 보던 아내가 '힘 좀 빼'라고 한마디 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뭐 내가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편하게 마음을 먹으니 그제야 글이 써졌다. 글을 완성해서 메일로 보냈다.
다음날 바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의자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담당자분께 연락이 왔다. 계약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메일로 세부 계약서를 보내니 검토해달라고 했다. 순간 구름에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간 공저로 출간한 적은 있지만, 오롯이 나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계약서에는 세세한 부분까지 잘 적혀 있었다. 계약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렇게 최종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저 브런치에 글을 썼을 뿐인데,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글을 쓸까 하는 걱정이 비집고 나타났지만, 잠시만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브런치 생활 1년, 출판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