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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Sep 03. 2020

상담받는 상담자

내가 상담했던 내담자가 떠오르는 요즘.

상담실 문 앞에서 한 참을 서성거렸다. 쉽사리 문을 열 수 없었다. 한참을 머무르다 눈을 한 번 찔끔 감고 안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따듯함이 전형적인 상담실 분위기였다. 얼굴에 ‘나 상담자요’라고 쓰여있는 온화한 인상의 상담자를 따라 방으로 향했고, 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얼마 전 맡게 된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반복되는 새벽 출근과 야근은 나를 점점 코너로 몰아세웠다. 한 사람이 고스란히 두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하는 부당함을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었다. 그저 글에 담아 흘려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잠시 물 마시러 정수기로 향하던 중 누가 심장을 움켜쥔 듯한 고통에 꼼짝할 수 없었다. 가만히 서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대로 쓰러지면 어쩌지. 그때 문득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사내 상담실이었다. 어렴풋이 정신건강 관련 체크를 해준다는 것 같았다. 무작정 전화를 걸고 점심때 가기로 했다.     


담당 선생님은 심리 검사 결과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했다. 심장이 아픈 것은 전조 증상이니 관리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했다. 그리곤 상담을 받으면 어떠냐고 했다. 순간 예전 내 모습이 겹쳤다. 내가 상담자로 활동하던 때도 결과가 안 좋거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적극 상담을 권유했었다. 그만큼 내가 힘든 상황인가 싶었다. 툭 하고 받겠다는 말이 떨어졌다.

   

전통 상담자의 길을 떠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래도 비행 청소년을 교육하고 상담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꼈다. 거기서 머물렀어야 했다. 승진의 욕심으로 그간 전혀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했다. 역시나 안 맞는 옷이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버텼다. 1년이 지나고, 이제 조금 숨 쉴 만했는데, 부당한 업무조정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안에 쌓아 놓은 것이 많았나 보다. 상담자 앞에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몸을 앞으로 내민 체 귀 기울여주는 모습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비단 회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가정, 관계, 삶까지 확장되었다. 1시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상담을 마치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휴’하고 한숨이 나왔다.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마지막에 상담자가 해준 말이 계속 남았다. 억지로 애쓰지 말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해라. 지금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자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소중하다. 그 말을 곱씹으며 상담실 밖으로 나섰다.


한낮의 태양 빛이 고스란히 가슴속으로 들어온 듯 몹시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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